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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Mar 08. 2021

애인이랑 헤어졌다고 아무나 만나지 말란 말이야

에너지 효율의 <Rebound Effect>

제 또래에선 안 본 여자들이 없다는 미드 <섹스 앤 더 시티>. 역시 연애 얘기는 재미난 법이죠. 초반 에피소드 중 남친과 헤어진 주인공 캐리가 어쩌다 뉴욕 양키즈 팀의 신인을 만나서 데이트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양키즈 팬인 캐리의 절친 미란다는 기가 막혀서 이렇게 말하죠. 


Nobody rebounds with a Yankee!
(애인이랑 헤어지자마자 새로 만난 사람이 양키즈 선수라니, 그런 게 어딨어!)


야구장에서 리바운드 가이로 양키즈 선수를 만나는 캐리.

애인이랑 헤어진 다음 다가오는 아무 사람이나 만나본 경험은 누구나 있을 텐데요(또 나만 그래..?), 그때 만나는 그 "아무나"를 "rebound guy"라고들 하지요. 평소엔 관심도 없던 찌질한 남자나, 얼굴도 잘 안 보이는 어둑한 클럽에서 만난 아무나를 만나 데이트를 하곤 합니다. 


이렇듯 사람은 모든 일에 이성적으로 대응하는 게 아닙니다. 애인에게 차이고 나서 "아, 나를 더 가꾸며 기다리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나야겠다"라고 생각해야 하는 걸 누가 모를까요? 하지만 반드시 그렇게 행동하는 건 아니죠. 



연애에만 리바운드가 있는 건 아니다

예전에 비해 기술이 좋아진 요즘은 가전제품도 효율이 무척 좋아졌습니다. 똑같은 시간만큼 사용해도 에너지를 적게 잡아먹고, 그만큼 전기료가 덜 나온단 소리죠. 그런데 예를 들어 집안을 밝히는 "전구"를 생각해 보세요. 효율이 높은 전구는 오래 켜도 에너지를 적게 소비해서 부담이 적습니다. 이때,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죠. 


A: 오, 돈도 에너지도 아낄 수 있군! 예전만큼 쓰고 아껴야지. 

B: 예전과 같은 돈으로 훨씬 많이 사용할 수 있구나. 전구를 더 사서 달고 밤새 켜놔야지!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할 건가요? (이미지 출처: DHgate.com)

이렇듯 에너지 효율의 증가가 에너지 절약, 나아가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로 이어지는 대신에 오히려 에너지 소비 증대로 이어지는 역설적인 현상을 에너지 효율의 리바운드 효과라고 부릅니다. 


아까 말한 것처럼 전구를 효율 높은 것으로 바꾼 다음에 오히려 더 많이 사용하는 직접 효과도 있지만, 간접적인 효과도 있습니다. 즉, 집에 있는 가전을 죄다 효율적인 제품으로 바꿔서 에너지 비용을 확 절약했다고 칩시다. 하지만 그 돈을 다른 물건을 사는 데 펑펑 써 버린다면 경제 전체의 에너지 소비나 온실가스 배출 측면에서 봤을 때 전혀 바람직하지 않겠지요. 


애인에게 차였다고 다른 아무 사람이나 만났다가 더 큰 상처와 후회를 남기는 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


사람이 갖는 경제력과 에너지 소비는 대개 양(+)의 상관관계를 가지는데요, 그래서 GDP와 에너지 소비량을 그래프로 나타내면 주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요. 돈이 많으면 에너지도 많이 소비하는 게 당연하겠지요. 하지만 에너지 소비가 "GDP가 는 만큼" 똑같이 느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이유는 경제가 발달할수록 에너지를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이죠.

G7 국가의 연도별 경제 성장과 에너지 소비 (그래프 출처: Reddit)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는 것은 기후변화 대처에서 중요한 한 축입니다. 비용 효과적이면서도 개개인의 행동 변화를 촉구하기 때문이지요. IEA도 온실가스 감축에서 핵심은 최종 소비 단계에서 연료 효율과 전력 소비 효율을 개선하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는데요, 신재생 에너지를 늘리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보고 있는 것이죠. 


에너지 효율에 대한 이야기는:  https://brunch.co.kr/@yjeonghun/15


하지만 리바운드 효과가 존재한다는 말은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더라도 이것이 100% 온실가스 감축으로 반영되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리바운드 효과가 얼마 정도인지 모델링을 하여 계산하는 연구도 많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고연비 차량을 구입한 뒤 신이 나서 더 뽈뽈거리면서 돌아다닌다 해도, 그 수준이 연료 효율 개선을 상쇄할 만큼 엄청나지만 않다면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그래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것이니까요. 



아무나 만나지는 않는 우리가 되자

2020년 상반기는 코로나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극적으로 줄었었죠. 하지만 작년 하반기에는 오히려 살짝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특히 얼마 전 중국의 에너지 소비에 대해 분석한 자료를 보니 작년에 유일하게 경제가 성장했을뿐더러, 이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량도 4%가량 늘었다고 합니다. 


코로나 이후의 "보복성 소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벌써 나옵니다. 여행이며 쇼핑이며, 너나 나나 그간 억눌렸던 소비를 맘껏 하면 아무래도 환경에 좋지 않겠죠. 


리바운드 연애나 리바운드 소비나, 모두 인간이 가진 욕망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생각 없는 리바운드는 안 해도 될 감정 소모를 가져다 주기 일쑤죠. 지구를 상대로 땡깡을 부리기보다는 에너지 효율 개선이라는 선물을 100% 현명하게 이용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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