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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Jul 14. 2021

올해 여름도 홍콩에 머뭅니다

홍콩에서 맞는 네 번째 여름. 습기와 더위에 익숙해지진 않고, 그냥 참는 법에 익숙해진다. 에어컨 바람을 싫어하는 나지만, 24시간 냉방을 하지 않으면 견딜 도리가 없다. 바닷가인데다 무려 43층의 고층에 살아서 겨울철에는 그토록 매섭게 바닷바람이 불더니, 지금 창문을 넘어오는 바람은 고장난 히터 바람처럼 뜨뜻하고 매가리가 없다.



작년에 이어 홍콩에 처박힌 여름이지만, 그래도 올해는 조금 낫다. 아이의 방학이 겨우(?) 6주 남짓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정작 별 생각 없을지 모르지만, 외동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이의 시간을 즐겁게 채워 주어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이 들곤 한다. 친구들과 플레이데이트를 잡고, 박물관이나 트램폴린장을 찾아가는 계획을 세워야 하는 기간이 예년보다 많이 짧아졌다.


홍콩의 대부분의 국제 학교들은 미국처럼 여름 방학이 두 달 이상으로 길다. 대신 겨울 방학은 12월 마지막 2주 정도만 쉰다. 홍콩은 여기에 더해 구정과 부활절 때 열흘 가량을 쉬고, 가을에도 중추절 즈음에 일주일 정도 학교 문을 닫는다. 하지만 어쨌든 여름 방학이 가장 길다. 내가 어렸을 때는 방학이면 철없이 기쁘기만 했는데, 이제야 비로소 집에서 노는 두 딸과 긴긴 하루를 보냈던 친정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이 기나긴 공백을 무얼로 채워야 한단 말인가.


작년까지만 해도 여름 방학은 10주에 가까웠다. 학교마다 다르지만 이르면 5월 중순에서 6월 하순에 방학을 하고, 개학은 주로 8월 중이나 9월 첫째 주에 하곤 했으니 말이다. 그 시간 동안 보통 국제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다닐 수 있도록 써머 스쿨을 개설하는 경우가 많다. 본교 재학생 말고도 다른 학생들을 받아주기 때문에, 좋은 프로그램을 찾아서 새로운 학교에 보내 보는 부모들도 많다. 하지만 써머 스쿨은 주로 4주가량으로, 방학의 첫 절반만 채울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종일반이 아니라 3시간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경우가 태반이라, 오후는 다른 사교육으로 채우곤 한다.


홍콩의 어린이들 역시 한국처럼 학원을 많이 다닌다. 특히 영어는 필수라고 인식하는지, 어린이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 영어 학원은 한 블록에도 두세 개씩 눈에 띌 만큼 많으며 체인으로 운영되는 학원들도 많다. 만 3세 정도부터 다닐 수 있는 놀이 위주의 학원도 있고, 한국의 눈높이(Eye Level)와 일본의 구몬도 종종 보인다. 개인 과외도 많이 하는데, 특히 영국 원어민 선생님들은 아주 인기가 좋아서 꽤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항상 스케줄이 빡빡하다.


영어, 수학, 중국어 등 학습 위주 학원을 제외하고도 이곳에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술, 발레, 태권도, 피아노 등이 인기다. (생각해 보니 나도 이 모든 걸 한 번씩은 시켜 보았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여름에는 수영이 제격이다. 신기하게도 이 더위에도 테니스나 축구 교실은 그대로 여는데, 얼굴이 새빨개진 아이들을 보면 왠지 안쓰럽다. 우리 아이도 원래 축구 교실을 다니다가 5월쯤 그만두었다. 얼음물을 꽉 채워 두 통씩 챙겨가도 마스크가 흠뻑 젖게 뛰는 아이에게는 부족해 보였다. 반면 수영은 여름에 할 수 있는 (내가 보기에는 유일한) 스포츠다. 홍콩에는 아파트마다 수영장을 갖춘 경우가 많고, 주민 복지 차원으로 지역마다 공공 수영장도 실내, 실외로 제법 잘 조성되어 있다. 우리 아파트도 연중 내내 수영장을 운영하기 때문에, 입주민은 소정의 금액을 내고 들어가서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여름의 일상도 코로나 전 얘기다. 원래는 수영장에 다른 곳에 사는 친구들이나 강사를 초대하여 같이 놀거나 레슨을 받을 수 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입장 인원에 제한이 생기고 외부인도 드나들 수 없게 된 것이다. 게다가 백신도 안 맞은 어린이가 마스크를 벗고 수영장에 가는 것 자체가 찝찝해서, 마음 편히 레슨을 시작할 수가 없다. 오전에는 써머 스쿨, 오후에는 수영 레슨을 시키려던 나의 계획도 올해는 이렇게 물거품이 되었다.


원래 같으면 써머 스쿨이 있는 한 달가량을 이렇게 써머 스쿨과 학원 뺑뺑이(?)로 돌리고 나면, 남은 한 달은 주로 본국에 돌아가거나 여행을 하는 시간이었다. 국제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외국인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방학 때 본국에 돌아가서 친척들을 만나거나 여행을 다니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7월 말부터 8월 중순까지는 홍콩에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고 조용했었다(…라고 들었다. 나도 홍콩에 없었으니 알 도리는 없다). 나도 첫 번째와 두 번째 여름에는 여행도 다니고 한국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난 아이의 한국어도 쑥쑥 늘었다. 한국도 홍콩 못지않게 덥고 습했지만 맛있는 냉면과 막국수가 있어서인지 묘하게 견딜 만했다.


하지만 작년부터는 누구나 다 홍콩에 머무르고 있다. (원래 당일치기로 다녀오던 마카오 방문마저 지금은 야심찬 소망이 되어 버렸다.) 아니면 아예 홍콩을 떠났거나. 이 좁고 붐비는 섬이 더 덥게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일까.



대부분의 국가들이 백신 접종률 상승과 더불어 해외여행을 조금씩 허용하는 듯하다. 한국은 얼마 전 해외에서 백신을 맞은 사람들도 격리 면제를 해 준다고 하여 수많은 동포들이 고국 땅을 찾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 사는 친정 언니도, 유럽에 사는 아가씨네도, 그리고 해외에 거주하는 많은 지인들도 모두 여름의 한 조각을 한국에서 보내고 있다. 하지만 홍콩 정부는 전염병 대책만큼은 세계에서 가장 보수적인 것 같다. 백신을 맞지 못하는 어린이와 함께면 호텔 3주 격리 방침이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또 아이가 취학 연령이기 때문에 한국에 가서도 사실상 격리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그보다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임신 중인 나는 백신도 1차밖에 맞지 못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임산부도 권고해서 맞게 한다는데 여기서는 세상에 이런 무모한 임산부가 어디 있냐는 듯, 나를 엄청난 별종 취급하며 2차를 놔주지 않았다. 1차는 실수로 놔준 듯)


그래서 나는 오늘도 홍콩에 머물러 있다. 못 본 새 부쩍 커버린 언니의 딸과 시누이네 세 남매는 지금 못 보면 또 몰라보게 자라 있을 텐데. 다음에 한국 가는 길엔 우리도 식구가 하나 더 늘어 있겠지. 뱃속에서 꿈틀거리는 작은 발길질을 느끼며 아쉬움을 달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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