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탄은 여기에:
https://brunch.co.kr/@yjeonghun/3
후후, 1탄을 썼을 때만 해도 저는 참... 귀여웠군요. 고작 3-4개월 코로나를 겪고 힘드네 어쩌네 하는 걸 보니 말입니다. 저 때로 되돌아 갈 수 있다면 전 스스로에게 한 마디 해줄 겁니다. '포기해...'
글로벌 전염병의 시대를 처음 겪는 지구촌 사람들은 지금쯤 되니 점차 이 뉴 노말에 익숙해진 듯합니다. 마스크를 쓰는 것도, 강박적으로 뿌려대는 손 소독제도 이제는 생활의 일부가 되었으니까요. 이 곳 홍콩에서는 초반에 두루마리 휴지가 동나는 등 사재기 현상이 극심했는데요, 휴지에 쓰이는 원자재가 모두 마스크 생산으로 가고 있다는 루머가 돌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마스크도 풍부하고, 줄을 서지 않아도 두루마리 휴지를 살 수 있습니다. (당연한 거잖아)
아무튼 홍콩에 처박힌 지도 어언 1년 하고도 절반이 되어 가는 지금. 그동안 몇 번의 대유행을 겪은 후 지금은 상당히 안정적인 추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출처 불명의 지역 감염은 꽤 오랫동안 0건을 유지하고 있지요.
조금이나마 숨 돌릴 여유가 생긴 지금, 지난 글을 쓴 지 1년 만에 2탄을 써보려고 합니다.
빡세고 빡세다: 홍콩의 코로나 대응
1년 반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겪어 보니, 홍콩 정부의 코로나 대응은 무척 빡센 편인 듯합니다. 아마 서구권에서는 기절할 만큼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사례도 굉장히 많지요. 하지만 아이를 키우며 사는 입장에서는 정부가 엄격하게 규제를 해 주고 전염병을 비교적 잘 관리하는 것이 믿음직스러운 측면이 있기도 합니다.
홍콩 입국 시 강제 격리 21일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제가 한국에 못 가는 이유가 한국 입국 시 자가격리 14일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건 별로 두렵지 않습니다. 그보다 걱정되는 건 홍콩에 다시 입국했을 때 호텔 격리를 21일 해야 하기 때문인데요. 작년 하반기까지만 해도 격리 기간은 2주였으나, 변종 바이러스의 경우 잠복기가 3주까지 길 수 있다는 걸 이유로 3주로 늘어난 지 반년입니다.
게다가 자가격리면 할만할 것 같은데, 지정 호텔 격리를 해야만 해요. 물론 비용도 자기 부담이고요. 홍콩은 땅이 좁다 보니 호텔 객실도 굉장히 좁은 편이라, 3주간 아이와 함께 격리를 하는 건 사실 불가능에 가깝지요. 최근에는 백신을 접종한 경우 호텔 격리 2주 + 자가에서 모니터링 1주일로 정책을 바꾸겠다고 발표했으나, 백신을 맞지 못하는 어린이와 함께 여행을 하는 가족이라면 여전히 3주 격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최근 홍콩에 입국하신 한국 엄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7살, 3살 아들 둘을 데리고 3주 격리를 하셨다고 합니다. 제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어땠냐고 여쭤보니 부처님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어요. "세상에 불가능은 없더라고요 ;)"
미 출처 케이스 발견 시 새벽 급습 - 격리시설 수용
가끔 지역감염 케이스 중 어디서 감염되었는지 불분명한 출처 불명 사례가 발견되곤 합니다. 이 곳에서도 외국에 갔다 온 적도 없는 사람이 어디선가 변종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례가 있었는데요, 변종 바이러스가 지역사회에 퍼진 것은 아닌지 걱정되는 시점이었지요.
그런데, 정부는 새벽에 그 확진자가 사는 아파트 한 동 전체를 봉쇄합니다. 그리고 강제로 450여 가구 전원을(!) 강제 수용 시설로 데려가서 3주간 격리시켰지요. 그 아파트는 한국 교민들도 많이 사는 곳이었는데, 열악한 시설에서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해요. 한 번만이 아니고 여러 차례, 이런 식으로 아파트 한 동을 봉쇄하고 격리시설로 이동시키는 사례가 많아지자 드디어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식당이며 술집, 헬스장도 닫으라고 하면 군소리 없이 닫고 별다른 불만을 토로하지 않아 신기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정도가 지나쳤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심지어 어떤 격리 시설에서는 식사가 엉망이었을 뿐 아니라 집단으로 식중독까지 발병해서, 결국 정부는 3주 격리를 취소하고 귀가 조치를 취했어요. 제가 사는 곳 바로 옆 동네에도 이런 사례가 있어 불안 불안하던 차에, 그나마 다행이었지요.
사실 이게 처음이 아닙니다. 올해 초, 외국인들이 많이 다니는 헬스장에서 집단 감염이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국제학교 선생님이었어요. 정부는 가차 없이 그 교사를 비롯하여 한 반 전체를 강제 격리시설에 3주간 몰아넣어 버렸지요. 만 8-9세의 어린아이들이다 보니 정서적 충격을 고려하여 교장 선생님이 나서서 어떻게든 중재하려 했지만, 결국 3주간 격리를 했다고 합니다. 그나마 부모 중 한 명은 함께 격리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 외: 모든 가정부 2주마다 강제 검사, 앱으로 트래킹
홍콩에는 많은 수의 헬퍼들이 살고 있는데요, 이들은 일주일에 한 번 쉬는 날인 일요일에 길거리에 모여 앉아 휴식을 즐기곤 합니다. 물론 친구들을 만나고 쉬는 것은 좋지만, 전염병의 시대에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수다를 떨고 음식을 먹는 건 위험할 수 있지요. (홍콩의 헬퍼 이야기는 아래 글 https://brunch.co.kr/@yjeonghun/13)
그래서 정부는 2주마다 한 번씩 홍콩에 있는 가정부 전원에게 강제 검사 명령을 내렸습니다. 저희 집도 헬퍼가 있어서 갑작스러운 명령에 검사 예약을 잡아 주느라 고생을 했어요. 2차까지 백신 접종을 한 이후로는 이제 검사를 안 해도 되지만, 한편으로는 정부가 백신 접종을 강제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또한, 모든 식당과 쇼핑몰, 공원 등 공공장소에 갈 때마다 앱으로 QR 코드를 스캔하여 동선을 기록해야 합니다. 입국 후 3주 격리를 할 때도 별도의 앱으로 이탈하지 않는지 감시하고요. 이런 건 아마 다른 국가들도 많이 시행하고 있을 거예요.
홍콩의 백신 상황: 쌔고 쌨는데 안 맞으려 든다
현재 홍콩에는 두 종류의 백신이 들어와 있으며, 전통적인 방식의 시노백(중국산)과 mRNA 방식의 바이오앤텍(독일 개발, 포선 위탁 생산한 제품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는 '화이자'와 동일 제품)이 그것입니다. 인터넷 예약 시스템을 통해 예약이 가능하며, 홍콩 전역에 백신 센터가 마련되어 있어 가까운 센터를 선택하면 되지요. 백신 접종 원칙은:
- 16세 이상 모든 성인 접종 가능(외국인 포함)
- 무료 접종
- 백신 종류 선택 가능
쉽게 말해 아무나 원하면 다 놔줍니다. 두 종류 백신 모두 굉장히 많이 확보하였기 때문에 어서 맞으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지요. 그런데 문제는...
외국인들은 다들 맞는 추세인데, 현지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정부에서 이러다 구해 놓은 백신 폐기 하게 생겼으니 제발 좀 맞으라고 호소하고 있어요. 현재 2차까지 접종을 마친 인구는 전체의 10% 남짓이니, 풍부한 자원에 비해 너무 접종률이 낮지요.
홍콩 시민들은 2019년 시위 이후 정부에 대한 불신이 상당히 커졌는데,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생체 정보나 개인 정보를 빼 갈 거라고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아까 언급한 Leave Home Safe 같은 트래킹 앱도 같은 이유로 거부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습니다. 저 같은 외국인은 다른 곳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화이자를 공짜로 놔 주니 얼씨구나 하고 맞고 있는데, 현지인들은 좀 더 추세를 지켜보는 듯합니다.
그래도 학교는 연다
작년과 가장 다른 점이 있다면 아이들이 제한적으로나마 학교를 다닌단 겁니다. 저희 아이도 올 1월부터 주 2-3회씩 오전 수업을 다니기 시작하다가, 요즘은 매일 등교하고 있어요. 원칙상 점심은 먹을 수 없어서 작은 스낵을 두 개 싸 갑니다. 아이에게 물어보니 스낵을 먹을 때도 교실에 앉아 먹지 않고 아이들이 번갈아 가며 복도에 나가서 혼자, 또는 두 명이 멀찍이 떨어져서 먹고 들어온다고 해요.
교직원들은 2주마다 테스트를 하거나 백신을 맞는데, 백신이 강제는 아니지만 국제 학교의 경우에는 많은 교사들이 자원해서 맞는 추세입니다. 아직 풀타임으로 학교를 가는 건 아니지만, 작년에 비해 아이들이 대면 교육을 받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정부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아서, 코로나 확진자뿐 아니라 유사 증상의 다른 질병(호흡기 질환) 사례가 발견되면 5일간 학교를 닫고 전교생이 코로나 테스트를 받도록 합니다. 동네 친구들이 어느 날 갑자기 등교하지 않고 테스트 센터를 방문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지요.
아이들은 이제 마스크를 쓴 일상이 아무렇지 않은가 봐요. 놀이터에도 마스크를 쓴 땀범벅의 어린이들이 행복하게 뛰어놀고, 영어 학원이며 축구 교실도 예전처럼 진행되기 시작했으니까요. 어른들은 꾀를 부려 운동할 때 마스크를 벗기도 하지만, 항상 코까지 마스크를 잘 쓰는 아이들을 보며 어찌 보면 새로운 일상을 누구보다도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건 어린이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끝은 언제일까
오랜 시간 이 전염병과 함께 하며 진지한 의문이 듭니다. '끝은 언제일까? 아니, 끝이 있을까?' 한 때는 집단 면역에 도달했다고 하던 인도에서 천문학적인 숫자의 확진자가 나오고, 청정 지역이라고 내내 확신하던 대만도 엊그제부터 심상치 않은 걸 보면 지구 상 안전지대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백신이 나오며 분명 작년과는 달라진 양상이지만, 과연 완전한 종식으로 이어질지는 장담하기 어렵죠. 분명한 건 코로나 전과 후는 아주 다를 거라는 사실입니다. 또 모르죠, 1년 후 또 '코로나 속 홍콩 풍경' 3탄을 쓰고 있을지..ㅎㅎ (제발 아니길 바랍니다 제발 제발)
*표지 이미지: scm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