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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Nov 14. 2020

돌 안에 담긴 예쁜 마음

11월 중순. 이 곳 홍콩에서는 최고의 계절입니다.


더위가 가시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 요즘이야말로 바지런히 나가서 돌아다녀야 할 시기죠. 그래서 오늘도 시큰둥한 아이를 붙잡고 집 근처 하이킹 코스로 향했습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한 친구와 엄마도 동행했지요. 홍콩에서 아이를 키우며 이렇게 일상적으로 자연 속에 들어올 수 있을지는 몰랐는데, 누군가 이사를 오 꼭 해 줘야겠습니다.

(hongkonghikinglover)

꼬마들은 오르막이 시작되자 힘들다고 퉁퉁거렸지만, "누가 먼저 세 가지 색 나뭇잎을 찾는지 보자. 빨강, 노랑, 초록. 어때?"하고 금방 눈에 불을 켜고 나아가기 시작합니다. (아이를 키울수록 늘어만 가는 엄마의 잔머리) 노랑과 초록 나뭇잎은 몇 개씩 찾아 손에 쥐었는데, 빨간색은 좀처럼 보이지 않아 두리번거리는 아이들. 그때, 아이의 친구가 "Red!"라며 부리나케 달려갑니다. 정말 빨간색이긴 한데... 나뭇잎이 아니라, 물감으로 새빨갛게 칠해진 돌멩이입니다. 심지어 한쪽에는 초록색으로 꼭지가, 몸통에는 거뭇거뭇 씨까지 그려진 딸기 돌이었어요. 누군가 실수로 두고 간 건 아닐까, 하고 고개를 갸웃하는데 앞서 걷던 우리 아이도 "엄마! 저기 봐!" 하며 달려갑니다.


꺾어지는 길목에, 쉼터 울타리 위에, 또 그냥 무심코 지나칠 법한 바닥에 알록달록 돌멩이들이 웃고 있었어요. 둥그스름한 타원들은 크기도, 작기도 했지만 하나같이 바다색, 다홍색, 반짝이는 금색과 진한 보라색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저마다 귀여운 그림이 그려져 있기도, 힘이 되는 다정한 말이 쓰여 있기도 했어요.


You are special.

When one door closes, another opens.

You got it!

Imagine the possibility.

You matter.

You rock!

세상에. 어느 누가 돌을 주워서, 집에 가져가 정성껏 색칠한 후, 문구를 적고 그림을 그렸을까요? 물감이 마르기를 기다려서 가방에 가득 넣고 하나하나 보물찾기 하듯 놓아둔 건 누구일까요? 멩이들이 자리를 잡은 모양새를 보니, '이 정도면 눈에 띄겠지?' '이것도 찾을 수 있으려나?' 하는 고민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어요.


아이들에게 물어봤어요. "얘들아, 누가 이런 멋진 일을 했을까?" 아이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Ms. K가 하셨나 봐! 그치?" 친구도 "아, 맞아! Ms. K인가 봐!"라며 좋아했어요. 학교 미술 선생님 Ms. K.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는 선생님인데, 예쁜 색깔과 그림을 보고 자연스레 생각났나 봅니다. 순수한 마음에 슬며시 웃음이 났어요.


헨젤과 그레텔이 남긴 것처럼 돌멩이들은 우리에게 끝까지 길 안내를 해 주었고,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제일 맘에 드는 돌을 몇 개씩 챙겼습니다.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삶을 포기하려는 사람에게도 우연히 찾아온 말 한마디는 큰 용기를 준다는데, 예쁜 돌을 놓아둔 사람도 단 한 사람의 마음이라도 진심으로 위로해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tigergraph.com)

우리는 땅에 놓인 다른 돌멩이도 여럿 주워 왔어요. 집에 가서 색칠하고 글씨를 써서 다음 주에 같은 길에 놓고 오려고요. 엄마들의 배낭은 무거워서 축 쳐졌지만, 돌멩이에 담긴 예쁜 마음 덕에 발걸음만큼은 가벼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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