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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Aug 22. 2021

진짜 진짜 중요한 보고서

IPCC의 여섯 번째 보고서(AR6)가 나왔다

저는 어떤 분야든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전문가의 말을 찾아보고 그걸 따르는 편입니다. 물론 과학이나 의학은 나날이 발달하기 때문에 무조건 신봉할 순 없겠지만요. (예전에 태어났으면 태양이 지구 주변을 돈다는 ‘전문가(?)’의 말을 믿었을지도 몰라요.) 특히 한두 명이 아니라 많은 수의 전문가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하면 아무래도 문외한인 저보다는 그것이 사실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하죠.


요즘 기후변화 분야에서 커다란 뉴스가 있었어요. 혹시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바로 국제연합(UN) 산하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라는 집단이에요. 이름은 복잡하지만 그냥 여러 UN 회원국들의 여러 사람들이 모인 단체?기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기후변화 관련 자료를 찾다 보면 “IPCC 자료에 따르면…”이라는 말이 지겹도록 나오는데, 바로 이 기구를 지칭하는 거죠. 지지난 주에 IPCC에서 여섯 번째 보고서를 발간했는데, 이게 향후 기후변화 분야의 국제, 국내 정책에 엄청 큰 영향을 끼칠 겁니다. 그만큼 가장 포괄적이고 객관적인 자료이기 때문이죠.


국제기구에서 발간한 보고서 하나 가지고 뭘 이리 유난을 떠나 싶지만, 그게 아닙니다. IPCC는 1988년 처음 생긴 이래 이제까지 다섯 번의 보고서를 발간했어요. UN 195개국 회원국의 수많은 과학자들이 그간 기후변화에 대한 각종 연구 결과를 취합하고 요점 정리(?)를 해서 정책 결정자들에게 전달할 목적으로 보고서를 발간하는 거예요. 전문가들이 “우리가 이런저런 연구들을 알아보니 결론이 이렇더라. 그러니까 너네는 이런저런 정책을 만들면 좋을 것 같아”라고 말해주는 거죠.


근데 이게 정말 방대한 분량입니다.


이번 여섯 번째 보고서에서 참고로 한 논문만 해도 14,000건이 넘는데요(저는 단 1개만 읽어도 잠들 것 같은데요), 어중이떠중이 같은 것도 다 포함한 게 아니라 관련 분야 전문가 심사(peer-reviewed)를 받은 학술지 논문들의 양이예요. 물론 한 명이서 그걸 다 작성한 건 아니고, 700명이 넘는 세계 각국의 전문가들이 함께 작성했습니다. 가장 최신의 과학적 발견과 이론을 집대성한 자료라고 볼 수 있죠. 보고서는 완성된 형태로 나온 것이 아니라 1부(?)만 일단 나왔는데요, 2부와 3부는 올해 말에서 내년 상반기까지 걸쳐서 나올 겁니다.


제가 편의상 1부라고 지칭했지만 IPCC 보고서는 워킹 그룹(Working Group)으로 나뉘어 있는데요, WG1기후변화의 과학적 근거에 대해 논하고, WG2는 그 영향과 적응 방향, 취약성을 분석하며, WG3완화 방안에 대해 논의합니다. 이번에 나온 건 정책의 방향성보다는 과학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볼 수 있죠. 정책 제언을 하려면 과학적 근거가 우선이니까요.



기후변화, 인간 탓임이 “명백”하다!

아무튼 이렇게 중요한 보고서이기에 여기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느냐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요, 이번에 미디어에서 가장 주요하게 다룬 보고서의 결론은 바로 이것이었어요. <인간이 지구를 덥게 한 것은 명백하다>는 것이죠. (변명하지 말라고) 영어로 다음과 같은 단어가 사용되었는데요.


Unequivocal


‘명백한, 절대적인’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죠. 이전 보고서만 해도 이렇게까지 확신에 찬 어조는 아니었거든요. 2007년 네 번째 보고서에서는 인간의 영향에 대해 “very likely”라는 표현을, 2013년의 다섯 번째 보고서에서는 “extremely likely”라는 표현을 썼었습니다. 이제는 “unequivocal”이라니, 점점 더 확신에 찬 과학자들의 어조가 보이죠. 인간의 영향보다는 자연의 순환 때문에 이렇게 더워진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어서일까요?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쐐기를 박는 표현입니다.     


실제로 어떻게 인간이 기후변화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 있죠?!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아래 그래프에 있어요. 시간에 따른 기온 변화를 나타낸 그래프인데요, 붉은 부분이 인간의 온실가스 배출, 초록색이 자연 자체에서 야기되는 원인입니다. 인간의 탓이 월등히 크다고 볼 수 있죠.

이번 보고서에서는 인간이 지구를 덥게 하고 있으며, "광범위하고 빠른(widespread and rapid)" 추세로 지구의 해양, 빙하, 지표면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결론짓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의 상당 부분(특히 해양, 빙하와 해수면) 되돌릴  없다(irreversible) 경고하고 있죠. 이번 보고서 바로 전에 나온 다섯 번째 보고서는 2013-14년에 출간되었는데, 그때의 결론을 뒷받침할 뿐만 아니라 상황이 더 심각해졌습니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색깔만 봐도ㅠㅠ 1900-1980년(80년 간)의 상태에 비해 1981-2020년(고작 40년!)의 변화가 얼마나 급격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지금이라도 온실가스 배출량을 열심히 줄인다고 해도, 2030년 초에는 지구 기온이 1.5도 상승하는 것은 막을 수 없습니다. (10년 남았는데!?) 아직 채 1도도 오르지도 않은 지구에서는 곳곳에서 산불에 폭염에 난리인데요, 십 년 후에는 어쩌죠? 1.5도가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사실 지구 평균 기온이 그만큼 오른다는 것은 엄청난 재앙인데요, 저도 전에 이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1도 더워지는 게 뭐 대수라고) 1도, 2도 오르다 보면 지구 상 살고 있는 동식물의 대부분은 견디지 못하거든요. 우리야 ‘아이고 더워’ 하면서 에어컨 온도를 낮추면 그만이라지만, 식물이 죽으며 동물들의 먹이와 서식지가 파괴되고, 생태계 자체가 완전히 교란되기 때문이죠.



티핑 포인트와 넷 제로

보고서는 기후변화와 관련된 수많은 자료를 모아 놓다 보니 단순히 ‘기온’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와 관련된 강우 패턴, 해수면 상승, 빙하의 변화 등 수많은 자연계의 현상을 분석하고 예측하고 있어요. 기후변화가 참 복잡 미묘한 것이, 지금 미국 서부에서는 가뭄이 너무나 극심해서 정원에 물을 주거나 강물에서 물을 끌어다 쓰는 것에 호된 벌금을 부과할 만큼 물 절약을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하고 있는데요. 반대로 동부에서는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침수 피해가 심해서 고민입니다. 똑같은 ‘물’인데 기후변화 때문에 양쪽에서 난리인 것이죠. 넷플릭스 <Brave Blue World>라는 다큐멘터리에도 나왔듯, “마실 수 있는 물은 점점 고갈되어 가는 반면, 마실 수 없는 물은 재해가 되어 인프라를 무너뜨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는 것도 문제입니다. 기온이 상승하는 것에 대해 상상을 해 보고 시뮬레이션을 돌려 볼 수는 있어도, 실제로 지구의 시스템이 얼마나 복잡 미묘한지, 언제 어떤 변화가 올지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기후 시스템에 어떤 티핑 포인트를 지나 버리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한국 정부도 그렇고 많은 국가들이 그래서 지금 늦었지만 온실가스 넷 제로(net zero)를 선언하고 있습니다. 온실가스 순 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단 겁니다. 중요한 건 배출량이 당장 내일 0으로 줄더라도 기존에 배출한 온실가스가 대기 중에 존재하기 때문에 당분간 온난화는 지속될 겁니다. 그래도 시간이 좀 지나면 균형을 찾고 최악은 피할 수 있겠죠. 그래서 배출량을 0으로 만든다는 목표는 절대적입니다. 이번 보고서에서도 ‘당장 줄이면 최악은 피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넷 제로를 달성하면 지표면 기온이 안정화되거나 심지어는 기온을 내릴 수도 있다. (Net-zero does work for stabilising or even reducing surface temperatures.)



지금으로서 무엇이 가장 안전한 선택일까

현재까지 알려진 과학적 사실과 전문가의 의견이 절대적 진리란 건 아닙니다. 새로운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기존의 믿음은 폐기되기도, 강화되기도 하니까요.


요즘 코비드 백신 접종 여부를 놓고도 과연 맞아야 하냐 아니냐 갑론을박을 벌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전문가들도 조금씩 입장을 달리하는 경우가 보이고요. 제가 살고 있는 홍콩의 경우는 임산부에 대해서 굉장히 조심스러운 입장이라, 미국에서는 임산부 접종을 강력히 권고하는 와중에도 백신 센터에서 임산부에게 접종하지 않고 되돌려 보내곤 했습니다.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접종을 완료했을 경우의 이득이 잠재적 위험보다 크다고 몇 달 전부터 말해 왔지만, 바로 지난주에서야 정부에서도 정식으로 임산부 접종을 권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기후 과학은 지난 수십 년간 이미 같은 말을 해 오고 있습니다. 몇몇 과학자들만 목소리를 높이던 문제가 이제는 사실상 과학계 전체가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지요. 그 이유는 제반 분야에 과학적 사실이 밝혀지면 밝혀질수록 너무나 명백하기(unequivocal) 때문입니다. 게다가 기후변화는 주어진 시간이 너무나 적습니다.


곧 큰 지진이 온다고 해서 모두 대피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짐을 열심히 싸서 대피했는데 예상보다 지진의 규모가 너무 작거나 아예 느껴지지도 않은 경우, 좀 번거롭고 짜증은 날 겁니다. 하지만 이것은 실제로 지진이 크게 났는데 예상을 믿지 않아 대피하지 않은 것의 피해에 비하면 정말 별 것 아닙니다. 게다가 화석 연료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지구의 자원을 낭비하는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은 사실 기후변화가 아니어도 개선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환경오염이 나날이 심각해져 가니까요. 결국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을 믿고 따르는 것이 지금으로선 가장 안전한 선택 아닐까요?



덧.

아래 유튜브 비디오는 인터넷에 돌아다니다 보았는데, 비교적 쉽고 재미있게 기후변화에 대해 접근할 수 있어서 소개할게요.


https://youtu.be/5cgxk9iBc8M


*표지 이미지: Unsplash.com

참고자료:

https://www.carbonbrief.org/in-depth-qa-the-ipccs-sixth-assessment-report-on-climate-science?utm_campaign=Carbon%20Brief%20Daily%20Briefing&utm_content=20210810&utm_medium=email&utm_source=Revue%20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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