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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Aug 30. 2021

그렇게 모아서 국 끓여먹을 거니?

이산화탄소를 포집해서 묻는 대신 이용하는 방법(CCU)

고3 때 담임 선생님은 화학 과목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화학이라고 하면 지금도 지긋지긋하게 싫어요 -_-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선생님도 예민한 사춘기 수험생 소녀들을 데리고 얼마나 힘드셨을까 안쓰럽지만(?), 그 당시에는 담임 선생님이 괜히 미워서 그분이 가르치는 과목마저 너무나 쪼잔하고(!) 지겹게 느껴졌지요.


그런데 요즘에야 느끼는 거지만, 화학이야말로 정말 인류의 삶을 너무나 크게 바꿔놓은 학문인 것 같아요. 그야말로 연금술이죠. 오늘 써 볼 주제도 화학을 좀 더 잘했으면 이해가 쉬웠을 텐데, 아쉽게도 저는 도통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많습니다. (선생님, 죄송해요ㅠㅠ

 


지구 온난화의 주범 이산화탄소, 대기로 빠져나가기 전에 붙잡는 기술(CCUS) 

올해 여름도 참 더웠죠. 얼마 전 읽어보니 아시아만 그런 게 아니고 유럽에서도 더위가 극심해져서 산불과 폭염 피해가 심각하다고 합니다. 1981-2010 장기 평균 기온에 비해 무려 1.9도가 높아졌다고 해요. 이게 다 공장 굴뚝과 자동차 꽁무니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 때문에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죠.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당장 우리에겐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화석 연료 쓰는 것을 당장 멈출 수 없단 게 문제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고심해서 생각한 것이 바로 탄소포집 및 저장(Carbon Capture and Storage, CCS) 기술입니다. 신재생 에너지를 사용하면 이산화탄소 자체가 배출되지 않는 것에 비해, 이 기술은 일단 화석 연료를 사용하여 이산화탄소를 생성하되, 대기 중으로 들어가 지구를 데우기 전에 잡아 챈다(?)는 아이디어입니다. 


아직은 대규모 상용화가 요원한데도 불구하고, 이 기술이 꾸준히 주목받는 이유는 현재로서는 유일한 사후 감축기술(일단 배출한 뒤 감축한다는 소리죠)이기 때문입니다.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도 4년간 탄소 포집 기술 경연대회에서 1 기가톤의 탄소 포 집 기술을 개발한 팀에게 1억 달러 상당의 기부금을 내걸기도 했습니다. CCS와 CCUS에 대한 기본적인 이야기는 이미 아래 글에서 한 적이 있습니다.


1탄(?)은 여기:

https://brunch.co.kr/@yjeonghun/33



묻지 말고 활용하면 어때?

사실 CCS는 '잡는 것'도 문제고 '묻는 것'도 문제입니다. 너무너무 비쌀뿐더러 어디에다 묻는지, 새어 나오면 어떻게 할지 등 많은 문제가 있죠. 아니, 생각만 해도 이상하지 않나요? 이산화탄소를 잡아서 땅에 묻는다뇨. 특히 한국에서는 묻는 게 더 문제가 큽니다. 왜냐하면 산유국인 미국이나 노르웨이 등은 원래 석유를 개발할 때 석유를 빼내고 빈자리에 이산화탄소 같은 기체를 주입하는 경험이 전부터 있는데, 한국은 그럴 일도 없었고요. 대중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고요. (대체 어디다 묻을 거냐고)


아무튼 이런 와중에 몇 년 전부터 화두가 되는 것은 탄소포집 및 활용(Carbon Capture and Utilization, CCU)입니다. 활용하고 남는 건 묻어야 할 수도 있지만, 아무튼 이왕 잡은 거 그걸 시장성을 부여하여 활용해 보자는 거죠. 개똥도 약에 쓸 수 있다, 뭐 이런 스피릿? 


그런데, 붙잡은 이산화탄소 가지고 뭘 할까요? 


(여기서 제가 싫어하는 화학이 들어옵니다.)


이산화탄소도 분명 어딘가에 쓸모가 있는 녀석이잖아요? 크게 다음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어요.


- 화학적으로 전환시켜서 활용: 연료, 화학 제품, 건설 소재 등

- 전환 없이 그냥 그대로 활용: 공업용 원료, 식음료용, 농업용 재료 등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현대오일뱅크는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활용해서 탄산칼슘 제조에 활용하기 시작했고, 롯데 케미칼은 폴리카보네이트(PC) 제품의 생산 원료로 사용하거나 드라이아이스, 반도체 세정액 원료 등으로 만들어 인근 중소 화학사에 판매하고 있다고 해요. 어차피 이산화탄소가 필요한 공정이라면 대기 중으로 빠져나가는 녀석을 붙잡아서 쓰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죠.  


유럽에서도 이미 박차를 가하고 있는 사안입니다. 노르웨이 같은 나라는 '활용'보다는 '저장'에 중점을 둬서 북해 바다 밑에 이산화탄소를 묻는 노던 라이츠(Northern Lights) 프로젝트를 추전 중인데요, 이와 대비해서 다른 나라들은 활용에 눈을 돌렸어요. 예를 들어 독일의 플라스틱 생산 기업 코베스트로(Covestro)는 포집한 탄소를 활용해 폼 매트리스를 만들고요, 영국의 카본8(Carbon8)은 건설용 자재를 생산한다고 합니다. 


Covestro의 CO2를 이용한 플라스틱 제품 생산 설비 (이미지: Covestro)


특히 이런 아이디어는 기존의 더러운(?) 산업들, 즉 시멘트와 철강에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이런 산업들은 워낙 배출량이 큰 산업들인데 또 엄청 중요하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어떻게든 배출량을 줄여서 생산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시멘트의 경우 '탈탄소 시멘트'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요, 시멘트 제조 과정에서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재활용해 건설 현장에서 사용하기 전 다시 시멘트에 주입하는 기법이 이용되고 있어요. 아직은 배출량 전체를 많이 줄이지는 못하고 10% 감축에 머무른다고 하지만, 하나의 감축 방식이 될 수 있겠죠. 


제철의 경우, 스웨덴의 철강 회사 싸브(SSAB)는 수소환원 제철 공법으로 2026년까지 화석 연료를 전혀 쓰지 않는 '그린 스틸(green steel)'을 내놓겠다는 게 목표입니다. (수소환원 제철 공법이 뭔지 알고 싶지만 여기서 화학이 또 발목을 잡습니다

세계 최초의 화석연료 제로 철강 생산을 발표하는 SSAB (이미지: SSAB)



아직은 걸음마 단계지만..

아무튼 아직은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나오곤 있지만 상용 공정의 2% 수준의 시범 단계에 머무르고 있기는 해요.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것부터가 일단 비용이 엄청나게 드는 사안이기 때문에 상용화 자체가 매우 어렵죠. 이산화탄소를 잡아서, 모아서, 이동시켜서, 활용하든지 묻든지 하는 산업 자체를 완전히 새롭게 창출해야 하는데, 그게 말이 쉽겠냐고요. 포집 설비, 파이프 라인, 압축 시설, 저장 시설, 활용 공정... 엄청난 인프라가 필요합니다. 


게다가 CCS(모아서 묻는 거)와 CCU(모아서 활용하는 거)는 엄밀히 말하면 다른 사안으로, 구체적인 시행 방법도, 정책 목표도 다릅니다. 그만큼 각각의 장단점을 이해하고 이에 맞는 정책을 고안하는 게 중요하죠. 일단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더라도 묻을 곳이 없는 한국 입장에서 활용 쪽에 눈을 돌리는 건 당연하겠지요. 당장 신재생 에너지 100프로를 달성할 수도 없는데 CCUS는 아예 버릴 수는 없는 옵션이니까요. 너무 기대하지는 않되 꾸준히 연구하고 투자하는 것. 이것이 CCUS 기술의 현실이자 한계인 것 같습니다. 



*표지 이미지: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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