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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름바름 Aug 14. 2021

두 소녀

성냥팔이 소녀, 대한민국 소녀 '설이'를 만나다.

1. 거리 (저녁/외부)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추운 어느 겨울날, 눈발이 매섭게 휘날리는 어두운 거리를 한 소녀가 서성거리고 있다. 맨발에 빛바랜 빨간 털모자를 썼다. 소녀의 낡은 앞치마에는 한 무더기의 성냥이 있다. 온종일 성냥을 팔았지만, 성냥을 사는 사람은 없다. 긴 금발 머리카락 위로 눈송이가 떨어진다. 소녀는 무표정하다.     


2. 귀퉁이 집 처마 밑 (저녁/외부)     

 집집마다 창문에서 따스한 불빛이 새어 나온다. 거위 구이를 굽느라 분주한 주방도 보인다. 소녀는 처마 밑에 가만히 앉는다. 걱정 가득한 얼굴이다. 추위로 꽁꽁 언 손을 마주 비빈다. 앞치마에서 성냥을 한 개 꺼내서 켠다. 성냥이 치직 소리를 내며 켜진다.     


3. 여관 (저녁/내부)     

 엄마는 일하러 가고, 여관에 혼자 남은 소녀 ‘설이’다. 텔레비전이 켜져 있고 명작 만화가 방영되고 있다. 낮은 오르골 소리가 나는 데 ‘설이’는 관심이 없다. 엄마 화장품을 꺼내 립스틱을 바르고, 눈 화장도 하며 논다. 세계지도가 그려진 유아용 공부상에 케이크가 놓여있다. ‘설이’는 폭죽과 성냥을 만지작댄다. 성냥 한 개를 꺼내 켠다. 치직 소리가 난다.     


4. 귀퉁이 집 처마 밑 (밤/외부)     

 캄캄한 밤 거짓말처럼 처마 밑만 환하다. 어디선가 오르골 소리가 난다. 성냥을 켠 소녀 앞에 여관방에 있는 ‘설이’가 나타난다.     


소녀           (놀라 벌떡 일어서며) 거기…! 누구야?

설이           (놀라 엉덩방아 찧으며) 그러는 넌 뭔데?

소녀           너도 춥니?

설이           난 안 추워, 심심한데 잘됐다. 난 ‘설이’야.

소녀           배고파, 넌?

설이          (포크로 케이크를 떠서 주며) 이거 먹을래? 

                오늘 내 생일이거든.     

 

 소녀가 포크를 잡으려고 손을 내미는 순간 성냥이 꺼진다. 주변이 캄캄해진다. 오르골 소리가 멈춘다.     


5. 귀퉁이 집 처마 밑 (밤/외부)     

 소녀는 새 성냥개비를 꺼내 벽에 긋는다. 환한 불꽃이 타오르면서 벽을 비춘다. 벽이 베일처럼 투명해지더니 ‘설이’의 여관방 안이 들여다보인다. 오르골 소리가 다시 들린다.


6. 여관 (밤/내부)    

  ‘설이’가 케이크를 뜬 포크를 소녀에게 내민다. 소녀는 케이크를 순식간에 먹어 치운다. ‘설이’가 케이크 위에 놓인 별 모양 장식을 보여준다.     


소녀           예쁘다. 생일 축하해. ‘설이’

설이           너 우리말 잘한다.

소녀           ‘설이’ 어디에 살아?

설이           나, 여기 서울…. (망설이다) 여관이야. 

                 엄마가 돈 많이 벌어서 근사한 집에서 

                 살게 해준다고 했어.

소녀           좋겠다. 난 성냥을 하나도 못 팔아서 집에 못 가. 

                 아빠한테 혼쭐 날 거야.

설이           난 여기서 나갈 수가 없어. 

                 엄마가 꼼짝하지 말라고 했거든.

소녀           (미안한 표정) 케이크 또 줄 수 있니? 

                집에 동생 갖다 주려고.     


 ‘설이’가 케이크를 뜨려는데 손이 맘대로 안 움직인다. 케이크가 떠지지 않는다.

순간 성냥 불빛이 흔들린다. 텔레비전 만화 영화 주인공이 갑자기 큰 소리로 운다. 성냥이 꺼진다.     


7. 귀퉁이 집 처마 밑 (밤/외부)     

 성냥이 꺼지고 오르골 소리도 멈춘다. 두껍고 차가운 벽뿐이다. 소녀는 또 하나의 성냥개비를 꺼내 불을 붙인다. ‘설이’의 여관이 다시 나타난다.     


8. 여관 (밤/내부)     

 여관 창문 밖으로 교회 첨탑이 보이고 알록달록 성탄을 축하하는 전등이 켜져 있다. 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진다. 소녀와 '설이'가 동시에 외친다.     


두 소녀       별똥별이다.

소녀           누가 죽어 가나 봐!

설이           울 할머니인가? 시골 할머니가 아프시거든.

소녀           우리 할머닌 돌아가셨어. 

                 나도 좀 데려가라니까 혼자 갔어.

설이           산 사람은 살아야 한대…. 울 엄마가 그랬어.

소녀           나를 사랑해준 분은 세상에서 할머니뿐이야. 

                 따라가고 싶어.

설이           내가 있잖아. 케이크 또 먹을래?

소녀           아니 됐어. 이제 성냥도 한 개밖에 안 남았어. 

                 할머니를 부를 거야.     

 

‘설이’가 다급하게 성냥을 초에 갖다 댄다. 촛불이 환하게 켜진다.     


설이           가지 마, 가지 말라고.

소녀           너도 이제 엄마 찾아 가. 여긴 눈이 펑펑 내려.

설이           (창문을 본다) 와! 여기도  눈이 오네! 

                 눈사람 만들고 싶다.

소녀           나가 밖으로.

설이           난 여기서 나갈 수 없어.

소녀           문을 열면 되잖아.

설이           그럼 너는 문을 열고 들어가. 

                어디라도 따뜻한 곳으로.     


 소녀가 빨간 털모자를 벗어 ‘설이’에게 준다. 촛불이 거의 다 녹아 꺼지려고 한다.  


소녀           생일이라고 했지. 받아 선물이야.

설이           괜찮아. 추운데 너나 써.     


 소녀가 ‘설이’에게 모자를 씌워준다. 촛불이 꺼진다. ‘설이’가 소녀의 손에 뭔가를 쥐여 준다. 오르골 소리가 흐르다 멈춘다.     


9. 귀퉁이 집 (아침/내부)     

 하얀 눈이 소복이 내린 새해 첫날 아침, 처마 밑으로 햇살이 쏟아진다. 소녀가 눈을 뜬다. 처마가 있던 귀퉁이 집 안 침대다. 전날 밤, 얼어 죽어가던 소녀는 귀퉁이 집 문을 두드렸다. 다행히 맘씨 좋은 아주머니가 소녀를 데리고 들어가 따뜻하게 해 주었다. 소녀가 ‘설이’를 만나 얼마나 행복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소녀의 손에 별 모양 케이크 장식이 쥐어져 있다.     


10. 여관 건물 밖 (아침/외부)     

 ‘설이’가 엄마와 함께 눈사람을 만들었다. 눈사람은 낡았지만 더 없이 사랑스러운 빨간 털모자를 쓰고 있다. ‘설이’가 노래를 흥얼거린다. 소녀와 함께 들었던 오르골 소리다.               



제 13회 공유 저작물 창작 공모전 2차-글 부문 응모작 #성냥팔이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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