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 처방 VS 근원적 치료
“일을 더 잘하고 싶다.”
우리 대부분의 아침을 깨우고, 밤늦게까지 책상에 붙잡아 두는 이 생각. 어쩌면 우리를 가장 강력하게 움직이는 엔진일 겁니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만들고, 내 능력을 증명하고, 이 치열한 세상에서 내 자리를 단단히 지키고 싶은 마음. 이건 너무나 자연스럽고 건강한 욕망이죠.
그래서 우리는 이 욕망을 해결책으로 삼습니다. 마음이 불안할수록, 미래가 막막할수록, 우리는 ‘더 잘하는 것’에 매달립니다. 더 완벽한 보고서를 만들고, 더 높은 실적을 내고, 한 단계 더 높은 직책에 오르면 이 모든 불안이 해결될 거라 믿으면서요. ‘성장’과 ‘성취’라는 이름의 강력한 진통제를 스스로에게 처방하는 셈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지점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우리를 달리게 하던 바로 그 엔진이 과열되기 시작하는 거죠.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잘해야만 한다’는 압박이 되는 순간, 계기판 한구석에 슬며시 주황색 경고등이 켜집니다. 하지만 우리는 애써 외면합니다. 이 불안을 잠재울 유일한 방법은 더 세게 액셀을 밟는 것뿐이라고 믿으니까요. 시끄러운 음악으로 엔진의 소음을 덮어버리고, 깜빡이는 경고등 위에는 검은 테이프라도 붙여버리죠.
그리고 실제로, 이 방법은 꽤 오랫동안 먹힙니다. 일에 몰두해서 얻는 성취감, 주변의 인정, 통장에 찍히는 숫자는 아주 강력한 진통제거든요. 내면의 소란스러움을 잠재울 만큼 달콤하고 효과적이죠. 그래서 우리는 종종 착각합니다. ‘일을 더 잘하는 것’,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이 이 모든 문제의 유일한 답이라고. 사회는 그런 우리를 ‘성실하다’, ‘열정적이다’라며 칭찬하고요.
하지만 이상합니다. 그렇게 라디오 볼륨을 높여 잠시 평온을 되찾아도, 문득 찾아오는 정적의 순간이면 어김없이 그 덜컹거림은 다시 고개를 듭니다. 검은 테이프 틈새로 새어 나오는 주황색 불빛은 더 집요하게 우리를 괴롭히죠. 왜일까요?
그건 우리가 ‘에너지의 분산’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한정된 에너지가 수십, 수백 갈래로 찢어져 버리는 거죠. ‘일도 완벽하게 해내야 해’, ‘후배에게 좋은 선배여야 해’, ‘가족에게도 소홀하면 안 돼’, ‘아, 근데 사실은 다 때려치우고 쉬고 싶어’. 이 수많은 ‘해야 한다’와 ‘하고 싶다’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우리를 잡아당길 때, 우리는 내면의 소란스러움, 즉 고통을 느낍니다. 마치 여러 채널의 라디오를 동시에 켜놓은 것처럼, 어떤 소리 하나에도 제대로 집중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상태. 그것이 바로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 공허함의 실체입니다.
이것을 ‘에너지의 누수’라고도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의 에너지를 양동이에 가득 찬 물이라고 상상해 봅시다. 건강한 상태는 이 물을 내가 원하는 곳에, 원하는 만큼 쓸 수 있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에너지의 방향이 분산된 우리는, 양동이 밑바닥에 사방으로 구멍이 숭숭 뚫린 채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회의 시간에 부당한 지시를 받고도 화를 꾹 참아내는 데 에너지 한 바가지. 퇴근 후에도 ‘내일 보고서 잘 써야 하는데’ 걱정하느라 또 한 바가지.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거절하지 못하고 억지로 웃는 데 또 한 바가지. 이렇게 내 안의 진짜 감정과 욕구를 억누르고, 끊임없이 나 자신을 검열하고, 내면의 ‘나’와 ‘보여지는 나’가 싸우는 데 엄청난 양의 물, 즉 에너지가 줄줄 새어 나가고 있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번아웃과 공허함의 진짜 정체입니다. 양동이에 물이 바닥나고 있는데, 우리는 구멍을 막을 생각은 않고, 더 많은 물을 채워 넣으려고(더 열심히 일하려고) 애쓰고 있었던 거죠. 그러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아무리 성공하고 인정받아도 갈증과 허기는 채워지지 않았던 겁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말합니다. 그냥 다 내려놓으라고. 욕심 없이, 그저 이완하라고. 하지만 이건, 꽉 쥔 주먹을 펴는 것과, 아예 손을 못 쓰게 힘을 빼버리는 것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말일 수 있습니다. 불필요한 긴장을 푸는 것은 분명 필요하지만, 삶을 살아갈 최소한의 에너지마저 놓아버리는 것은 우리를 무기력으로 이끌 뿐입니다. 치료란, 흩어진 에너지를 없애는 게 아니라, 그 에너지의 방향을 바로잡아 내가 원하는 곳에 힘껏 쏘아 보내는 것이니까요.
그렇다고 당장 하던 일을 멈추고 보닛을 열어 엔진을 해부하는 것만이 답일까요? 어쩌면 문제는 차가 아니라, 그 차를 운전하는 우리 자신일지도 모릅니다. 경고등은 사실, 운전자가 다쳤다는 비상 신호였던 거죠.
응급처치와 근본적 해결 둘 중 뭐가 정답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전에도 언급했듯이(정신과 병원에 갈까, 심리상담센터에 갈까?) 언제나 답은 "둘 다" 입니다. 상황에 따라 전자와 후자가 각각 정답이라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지혜를 발견합니다. 다친 사람을 치료하는 과정과 같다는 것을요.
1단계: 응급 처치 - 일단, 피부터 멈추자.
사고 현장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사람에게 “왜 다쳤는지 원인부터 분석해 봅시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상처를 세게 눌러 피를 멈추게 하는 ‘지혈’입니다. 지금 마음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다면, 가장 먼저 필요한 건 바로 이 응급 처치입니다. 원인을 따지기 전에, 일단 고통의 강도를 줄여야 합니다. 오늘 하루는 아무 생각 없이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잠시 모든 걸 잊어도 괜찮습니다. 이것은 회피가 아니라, 과다출혈을 막고 생명을 구하기 위한 가장 현명하고 긴급한 조치입니다.
2단계: 상처 소독과 진단 - 상처를 제대로 들여다보기.
지혈이 되어 극심한 고통이 가라앉으면, 비로소 상처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흙이나 유리 조각이 박혀있지는 않은지, 얼마나 깊이 찢어졌는지 살피고 소독해야 하죠. 이 단계는 스스로에게 다정한 질문을 던지는 시간입니다. “그렇게까지 인정을 받고 싶었던 건 왜였을까?”, “그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고 나면, 내가 진짜로 얻고 싶었던 건 뭐였지?”, “그렇게 힘든데도, 나는 왜 ‘싫다’는 말을 못 했을까?” 이 질문들은 내 상처의 깊이와 원인을 파악하고, 덧나지 않도록 마음을 소독하는 과정입니다.
3단계: 근본적인 수술과 재활 - 흉터를 넘어 새살이 돋도록.
상처 안에 깊이 박힌 이물질이 발견되었다면, 결국엔 그것을 꺼내는 ‘수술’이 필요합니다. 조금 아프고 두려울 수 있지만,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상처는 계속 곪을 테니까요. 내 안의 깊은 상처나 오래된 믿음을 마주하는 용기가 바로 이 수술과 같습니다. 그리고 수술이 끝난 뒤에는 꾸준한 ‘재활’이 필요하죠. 흉터 주변의 근육을 부드럽게 움직여주고, 다시 건강하게 걸을 수 있도록 연습하는 시간. 이것이 바로 흩어져 있던 에너지를 하나의 강력한 물줄기로 모아,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을 향해 다시 걷는 연습을 하는 과정입니다.
행복이란, 한 번도 다치지 않는 무균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행복은, 상처 입었을 때 스스로를 비난하는 대신, 기꺼이 피를 닦아주고 상처를 돌볼 줄 아는 ‘자기 치유의 기술’에 가깝다는 것을요.
당신의 마음에도 혹시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나요?
그렇다면 오늘은 가장 먼저, 흐르는 피를 닦아주는 것부터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요.
그 아픔의 신호는 당신을 끝내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더 건강하게 살려내기 위한, 당신 자신만의 소중한 비상벨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