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센터 청연, 개원 이야기>
오랜 시간, 제 마음속에서만 조용히 지어지고 허물어지기를 반복하던 공간이 있습니다. 오늘, 그 공간의 문을 현실에 조심스럽게 엽니다.
까먹고 내어놓지 못한 진심이 있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글을 미루다, 오늘에야 '심리상담센터 청연'의 개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솔직한 고백으로 시작해야겠습니다. 정신건강임상심리사로서의 첫걸음은, 지금 돌이켜보면 꽤나 미숙했습니다. 전공에 대한 학문적 호기심, 그리고 한 사람의 전문가로서 먹고 살아가야 한다는 현실적인 이유. 처음에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국립의료원과 법무부 공공기관, 정신과 병동의 차가운 복도를 걷고, 수많은 사연이 담긴 문을 열고 들어가 그 안의 마음들을 만나면서, 제 안의 무언가가 아주 조금씩, 하지만 분명하게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공헌'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변화를 일으키는 건 제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조심스럽게 내어놓은 진심에 내담자들이 반응해주었고, 바로 그 순간들이 오히려 제가 '공헌'이라는 단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였습니다. 그분들이 건네는 고맙다는 말에, 제가 오히려 더 큰 고마움과 행복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마주한 '공헌'은 숭고한 희생 같은 거창한 단어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누군가의 곁에서 진정한 도움이 되기 위해, 나 스스로를 더 단단하고 맑게 갈고닦아야 하는 치열한 자기 성찰의 과정이었습니다. 내 주변이, 내 곁의 사람이 평온해질 때, 그 평온이 파문처럼 나에게도 스며들어와 나 또한 행복에 들 수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진리를 몸으로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일'은 그렇게 저에게 '업(業)'이 되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길이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공감'이라는 것의 깊은 아이러니와 마주해야 했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고개를 기계적으로 끄덕이는 행위로는, 단 한 사람의 진짜 마음에 닿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언어라는 것이 얼마나 빈약한 도구인지,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그 실낱같은 단어들에 의지해 서로에게 가닿으려는 인간의 노력이 얼마나 애처롭고 아픈지를 먼저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토크 테라피를 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언어의 한계를 절감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언어를 넘어서는 길을 찾고 싶었습니다. 한 사람의 내면이 울릴 때, 상담실에 앉아있는 제 안의 무언가도 함께 울리는 '공명(共鳴)'. 한쪽 현이 진동하면 곁에 있는 다른 현도 미세하게 함께 떨리는 '공진(共振)'. 그런 살아있는 관계, 살아있는 만남 속에서만 비로소 치유의 문이 열린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이 '맑고 깨끗한 연결'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담아, 센터의 이름을 '청연(淸緣)'이라 지었습니다.
왜 굳이 저만의 공간이었냐고 묻는다면, 이 연약하고 소중한 '연결'을 온전히 지켜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목소리와 방향성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오직 제 앞에 있는 한 사람의 마음에만 모든 감각을 열고 집중할 수 있는 저만의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이제 이곳 '청연'에서, 저는 당신의 길을 함께 걷는 '도반(道伴)'이 되려 합니다. 정답을 알려주는 현자가 아니라, 당신의 이야기를 당신의 언어로 함께 듣고, 당신의 침묵을 당신의 호흡으로 함께 느끼는 동행자가 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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