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심리상담의 '수술 도구'는 상담자다.

기술을 넘어 '나'를 사용하는 공감의 힘

"심리상담은 무엇으로 사람을 치유하는가?"



이 질문에 대부분의 전공 서적은 수십 년간 개발되고 검증된 '치료 기법'과 '이론'을 답으로 제시합니다.

인지행동치료의 합리적 신념 재구조화, 정신분석의 자유연상, 인간중심의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 등

우리는 내담자를 돕는 강력한 도구들을 배웁니다.


하지만 수많은 임상 경험 속에서 저는 조금 다른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글의 요지는 결코 이론이나 기법이 무용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모든 것이 효과적으로 사용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어떤 전제' 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공감의 '흉내'와 진짜 공감의 '체험'



상담의 기본 중 하나인 '공감'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내담자의 고통에 공감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하나요?



내담자: "이러이러한 일이 있어서 너무 슬퍼요."

상담자: "아, 그런 일을 겪으셨군요. 정말 우울하실 것 같아요."



얼핏 보면 이 대화는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하지만 감히 말하건대, 이것은 공감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공감의 '흉내'를 낸 기술적인 설명에 가깝습니다.


상담자는 내담자가 사용한 '슬프다'는 단어와 맥락을 조합해

'아, 이 감정은 심리학적으로 우울 범주에 속하겠구나'라고 판단하고, 그 판단을 되돌려준 것뿐입니다.

이 과정에는 정작 가장 중요한 상담자 '자기 자신' 이 빠져있습니다. 상담자 '자신'도 정말 함께 슬픔을 느꼈을까요?


말뿐인 공감에는 '자기'가 없습니다.

자신의 느낌을 관찰하고 반영하는 과정이 생략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진짜 공감이 아닌, '공감 같은' 답변일 뿐입니다.



상담자의 가장 정교한 도구: '나'의 느낌



초심 상담자들이 흔히 어려움을 겪는 지점입니다. "분명 공감을 표현했는데 왜 내담자는 위로받지 못하고, 내 말은 허공에 흩어지는 것 같을까?"


그 단서는 바로 상담실 안에서, 지금-여기서 상담자가 느끼는 생생한 '느낌' 에 있습니다. (저는 '감정'이라는 단어조차 지적인 분석의 여지를 남긴다고 생각하여, 보다 몸 전체로 다가오는 '느낌'이라는 단어를 선호합니다.)


상담실에서 내담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의도치 않게 내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내담자가 슬픈 이야기를 해서, 나도 슬퍼질 때

내담자는 담담하게 말하는데, 이상하게 내 마음이 슬퍼질 때

내담자가 끝없이 슬픈 인생사를 늘어놓는데, 나는 감정이 텅 빈 듯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을 때


바로 이 '상담자가 지금-여기서 느끼는 생생한 느낌' 이야말로 진짜 공감과 치유의 씨앗이 됩니다.



'나'를 드러내는 순간, 공명이 시작된다


44248699-tuning-fork-resonance-experiment-when-one-tuning-fork-is-struck-the-other-tuning-fork-of-the-same.jpg

치유는 상담자가 자신의 느낌을 솔직하게 알아차리고,

그것을 조심스럽게 내담자와의 관계로 가져올 때 일어납니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닌, 상담자 자신의 존재를 사용하는 '만남'의 과정입니다.


"OO님이 말하는 내용은 슬픈 것 같지 않은데, 이상하게도 말씀을 듣는 '저'는 조금씩 슬퍼지는 것 같습니다. 혹시 OO님의 마음에도 저와 비슷한 무언가가 있는지 궁금해지네요."
"잠깐만요, 말을 끊어 죄송합니다. OO님께서 힘든 이야기를 계속하고 계시는데, 이상하게도 '저'에게는 어떤 감정도 잘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마치 잘 정리된 설명을 듣는 듯한 느낌인데, 혹시 이 이야기를 저에게 하시면서 OO님의 마음은 어떠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이 순간, 상담자는 분석이나 판단이 아닌 '자신이 체험한 느낌' 을 전달한 것입니다.

이 진솔한 자기 노출이라는 진동에 내담자의 마음도 함께 공명(Resonance) 하기 시작합니다.

말과 단어를 뛰어넘는 깊은 소통이 일어나는 것이죠.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굳게 닫혀 있던 내담자의 진짜 내면이 요동치며,

스스로도 몰랐던 자기 세계의 문이 열립니다.

껍질을 깨고 진짜 '나'를 만나는 순간입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상담자는 '이론'이나 '기술'이 아닌 '자기 자신의 마음' 이라는 가장 정교하고 강력한 도구를 사용했습니다.


AI 심리상담 시대, 인간 상담자의 역할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AI 심리상담'이라는 화두로 이어집니다.

저는 업계 누구보다 과학 기술에 낙관적이며, AI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심리상담센터 청연 홈페이지 내에도 AI 기술을 접목하였습니다).

chungyeon.netlify.app


(여담으로 저는 GPT가 처음 출시한 이래로 2년 내내 유료 구독을 이어오고 있고 Gemini, Grok, Claude, Cursor 등 AI에만 수 백만원을 썼습니다...)


하지만 거대 언어 모델(LLM) 기반의 AI 상담에는 본질적인 아쉬움이 하나 있습니다.

AI는 언어 패턴을 학습하여 정교한 언어적 반향(Reflection) 은 할 수 있지만,

존재와 존재가 부딪힐 때 일어나는 공명(Resonance) 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는 점입니다.


아직은 '자기'의 생생한 느낌을 도구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AI에게 물어보아도 '나'라는 정확한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AI는 한계가 명확하니, 비싼 돈 내고 사람에게 상담받으세요"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인간 상담자의 역할이 더 명확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역할은 AI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AI의 사각지대인 '존재를 통한 만남'이라는 영역에 더 깊이 집중하고,

AI라는 강력한 도구와 손잡고 AI에게 부여할 수 있는 기능적 역할을 더욱 개발하여 더 많은 사람에게 마음의 평안을 선물하는 길을 고민하는 것입니다(싼 값에 모두가 심리치료라는 경험을 할 수 있다면, 더욱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겠습니까).

기술을 이해하고 활용하되, 우리의 가장 강력한 도구는 결국 '우리 자신' 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선택 앞에서 늘 괴로운 당신에게, 심리학이 말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