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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선택은, 왜 항상 찝찝함이 남는 걸까?

마음 편한 선택 하는 법


선택 후 남는 찝찝함의 정체: 내 안의 두 욕구를 끌어안는 법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합니다.

어떤 선택은 후련하지만, 어떤 선택은 두고두고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이 불편함, 이른바 ‘찝찝함’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아주 간단한 선택의 순간, 시끌벅적한 동네 중국집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마음 편한 선택: 짬뽕을 고른 당신이 짜장면 때문에 괴롭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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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고민 끝에 당신은 얼큰한 국물이 있는 짬뽕을 시켰습니다.

잠시 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짬뽕이 나왔고, 당신은 맛있게 식사를 마칩니다.

이때, ‘아, 짜장면을 먹었어야 했는데…’라며 식사 내내 괴로워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왜일까요? 짜장면을 먹을 기회를 ‘상실’한 것은 명백한 사실인데도 말입니다.


이는 ‘마음 편한 선택’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이 선택의 순간, 당신은 ‘지금 나는 얼큰하고 따뜻한 국물을 원한다’는 자신의 현재 욕구를 명확히 알아차렸습니다.

외부의 기준이나 타인의 평가(“짜장면이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래”)가 아닌, 내면의 감각과 욕구에 충실했던 것이죠. 선택의 주체가 온전히 ‘나’였기 때문에, 선택받지 못한 짜장면에 대한 미련은 힘을 잃고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그 선택은 나의 일부로서 온전히 통합된 경험이 됩니다.


인생의 무거운 문 앞에서: 짜장면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선택들

하지만 인생은 중국집 메뉴판처럼 간단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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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때로 훨씬 더 무겁고, 한 번 열면 되돌리기 어려운 문 앞에 서게 됩니다.

이때의 선택은 짜장면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무게감으로 우리를 짓누릅니다.


가령 이런 문제들입니다.


모두가 인정하는 대기업의 안정적인 정규직과, 성공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내 심장을 뛰게 하는 스타트업 합류 사이에서의 선택.

결혼을 약속한, 착하고 조건 좋은 오랜 연인과, 이 관계가 과연 나를 성장시키고 있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 사이에서의 선택.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익숙한 고향에 남을 것인가, 아니면 모든 것을 뒤로하고 낯선 도시에서 새로운 기회를 잡을 것인가에 대한 선택.


바로 이런 선택들 앞에서, 우리의 내면은 비로소 진짜 전쟁을 시작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내면에는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그러나 둘 다 너무나 타당한 욕구를 가진 두 개의 목소리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는 ‘안정과 소속’을 추구하는 목소리입니다.


이 목소리는 대기업의 복지와 정년을, 오랜 연인이 주는 편안함을, 고향의 익숙함을 대변합니다. 우리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소속된 집단으로부터 인정받게 하려는 깊은 욕구에서 비롯됩니다. 이는 생존을 위한 지혜이며,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나 자신의 중요한 욕구입니다.


두 번째는 ‘성장과 자기실현’을 추구하는 목소리입니다.


이 목소리는 스타트업의 비전과 열정을, 새로운 관계가 줄 수 있는 영감을, 낯선 도시에서의 무한한 가능성을 이야기합니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나 자신을 표현하며 잠재력을 펼치고 싶은 욕구에서 나옵니다.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려는 나의 진솔한 에너지입니다.


찝찝함은 이 두 목소리 중 하나를 ‘틀렸다’고 규정하고 억누를 때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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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의 목소리를 따라 대기업에 입사하며 ‘성장’에 대한 갈망을 애써 무시하면, 그 무시당한 욕구는 사라지지 않고 ‘미해결 과제(Unfinished Business)’가 되어 “네가 진짜 원했던 삶은 이게 아니잖아?”라며 계속 마음을 두드립니다.


반대로, ‘성장’의 목소리만 따라 스타트업에 뛰어들며 ‘안정’에 대한 불안을 억누른다면, 그 불안감 역시 월급날마다 “우리 괜찮은 거 맞아?”라며 찝찝함과 후회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문제의 핵심은 어느 한쪽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안정을 원하는 나’와 ‘성장을 원하는 나’가 모두 ‘진짜 나’임을 인정하는 것이 시작입니다.


‘진정한 어른의 선택’이란, 이 두 목소리를 싸우게 두는 대신,

내가 그 둘을 모두 품는 더 큰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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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인 삶을 원하는구나. 그건 나를 지키려는 소중한 마음이지.”

“새로운 도전을 통해 성장하고 싶구나. 그건 내 삶을 빛나게 하려는 에너지구나.”


이렇게 내 안의 양쪽 목소리를 모두 알아주고 그 타당성을 인정해 줄 때,

비로소 우리는 통합된 ‘나’로서 선택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 선택은 ‘안정’과 ‘성장’ 사이에서 최적의 균형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선택 후의 찝찝함은 당신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신호가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 안의 소외된 욕구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귀중한 나침반입니다.

둘 중 하나를 고르려 애쓰지 마십시오.

대신, ‘안정을 원하는 나’와 ‘성장을 원하는 나’를 모두 가진 온전한 당신으로서,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내리면 됩니다.


그럴 때, 당신의 선택은 더 이상 찝찝한 미련이 아닌,

나의 모든 부분을 끌어안는 편안하고 충만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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