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빛은 우리를 눈 멀게하고, 어둠은 앞을 보이지 않게 한다.
항상 핀잔을 듣는 습관이지만,
저는 어두운 곳에서 핸드폰으로 전자책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웬지 밝은 곳에서 책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상한 저만의 느낌이 있습니다.
아무튼 저는 어두운 방에서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글을 읽습니다.
그러다 문득, 방의 불을 환하게 켭니다. 순간 모든 것이 하얗게 날아갑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분명 세상은 더 밝아졌는데, 저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장님이 되어버립니다.
우리 눈의 홍채가 조도를 조절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당연한 현상에서 삶의 중요한 진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주 밝은 빛도 볼 수 있고, 아주 희미한 빛도 볼 수 있지만, 그 둘을 동시에 볼 수는 없다는 사실 말입니다.
익숙한 세상이라는 눈부심
우리의 마음도 이와 같습니다.
매일 살아내는 현실이라는 강렬한 빛 속에서 우리는 익숙한 것들만 겨우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나의 방식, 나의 규칙, 나의 세계. 그 밝음 속에서는 결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꼭 어둡고 그늘진 감정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희미하고 고요해서, 현실의 소란 속에서는 결코 알아챌 수 없었던 마음의 소리일지도 모릅니다.
상담의 공간은 바로 이 강렬한 빛을 잠시 가려주는 암막 커튼과 같습니다.
익숙했던 세상의 빛을 차단하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내면의 희미한 빛들을 보기 시작합니다.
내 방식대로 살아가는 중에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아니 보려 하지 않았던 마음의 풍경들입니다.
고요함이라는 함정
반대의 경우도 존재합니다. 상담실의 고요함, 혹은 깊은 명상 속에서 발견한 내면의 평화.
그 어둠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보지 못했던 것들을 봅니다.
하지만 그 고요함에만 머무르려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다시 현실이라는 밝은 빛으로 나아갔을 때, 우리는 그저 눈이 부셔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내면의 심오한 진리가 현실의 사소한 문제 하나 해결해주지 못하는 무력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어둠 속에서 발견한 보물이 절대적 진리이자 궁극의 도달점이라 믿는 순간, 현실은 또다시 우리에게 극복해야 할 시련으로 다가올 뿐입니다.
시선의 이동, 그리고 통합
중요한 것은 시선의 이동입니다.
어둠 속에서는 어둠에 익숙해지는 법을, 밝음 속에서는 밝음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는 유연함.
상담실에서 발견한 깊은 통찰이 궁극적인 진리라고 믿으며 현실을 외면하는 것도, 현실에 발 붙이고 사느라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것도 온전한 삶은 아닙니다.
진정한 마음의 회복은, 어둠과 밝음, 그 양쪽을 모두 끌어안는 데 있습니다.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시선을 옮겨, 어둠과 밝음 모두를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는 능력.
그것이 바로 우리가 스스로에게 선물해야 할 진정한 통합입니다.
나의 내면 알아보기: https://chungyeon.netlify.app/inta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