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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응급실

카테고리-어머니

by 김대머리

새벽 1시쯤 어머니에게서 급한 전화가 왔다. 머리가 아파 어지럽고 금방 쓰러질 것 같아 근처 병원 응급실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시는데 이 시간이면 아들이 며느리와 침대에서 뒹굴고 희희닥거릴 시간일 텐데 그걸 방해해서 미안해 하시는 목소리시다.
급작스런 벨소리에 이 야심한 시간에 누가 전화질이냐며 내 가슴을 부드럽게 쓰다듬던 와이프가 짜증을 내는데 내가 어머니라고 하니 짐짓 놀래면서 그 상황을 이해나 한 듯 아마 냉장고에 보관한 오래된 음식을 드셔서 그럴 거라 말을 하는데 굳이 병원까지 갈 필요 없을 거고 우리 집에 보관해 둔 상비약인 소화제를 드리면 아무 일도 아닐 거라며 소화제는 서랍장 두 번째 서랍에 있다고 어머니에게 갈 준비를 하는 나에게 침대에 누워있는 채로 그리 급할 것도 걱정스러울 것도 없이 태연스레 말해주었다. 지하 주차장으로 급히 내려가 차를 타고 며느리와 함깨 있으면 당신도 며느리도 당신 자식도 불편하다며 아버님과 사별 후 줄곳 홀로 계시는 어머님집으로 향했다. 12월 중순이라 매서운 찬바람이 차창밖으로 몰아치는데 가지고 있는 재산을 다 나에게 주시고도 더 많이 못주어서 안타까워 하시는 어머니가 고작 방 한칸 원룸에서 이 매서운 겨울 칼바람 소리를 듣고 독수공방 외롭게 주무신다는 생각을 하니 바로 얼마 전 이런 생각조차도 없이 와이프와 침대 이불속에서 희희닥거렸던 자신이 한심해 깊은 한숨을 허공에 쉬었다.
문을 열고 어머니를 부르니 힘없이 천천히 옷을 갈아입으시며 나를 기다리고 있으셨다.
편찮은데가 어디시고 어디가 많이 아프시는지 약은 드셨는지 우선 물어보고 빨리 병원에 가자고 말을 해야 하지만 막상 어머니를 보자 마치 내가 의사인양 혹은 와이프인양 어머니에게 저녁밥은 무엇을 드셨으며 약은 또 무엇을 드셨고 혹여 냉장고 속 일전에 집사람이 버리라고 했던 음식을 드셨는지 다그치듯 물어보는데 한편으로 어머니 모습이 그다지 심각하신 것 같지 않아 늦은 저녁 응급실에 가면 비용이 만만치 않게 나온다는 걱정이 아프시다는 어머니의 상태보다 앞섰다. 이제 갓 10세인 아들에게 비싼 자전거 하나는 거침없이 사주면서 고작 몆만원 안나올 어머니 병원비를 그 순간에도 계산하고 있다.
이런저런 나의 걱정 아닌 걱정이 정작 당신보다 병원비라는 것을 눈치채신 듯 호주머니에서 촘촘히 말린 지폐를 나에게 주시며 이걸로 병원비 하면 된다고 나에게 건네주셨다. 어머니를 차에 태우고 급히 병원 응급실에 들어가자 간호사가 다가와 어디가 불편하셔서 오셨는지 묻는데 젊은 의사가 선뜻 다가와 어머니를 부축하여 병원 침대에 눕혀드리고선 여기저기 검진을 하였다. 응급실의 젊은 의사는 친절하게 어머니를 안심시키면서 어디가 불편하는지 하나하나 묻고선 나에게 어머니 상태가 어떤지 짐작은 가지만 좀 더 확실하게 검사를 해봐야 하니 피 검사를 해야 하고 복부 X레이를 찍어야 한다며 그래도 되는지 보호자인 나에게 물었다. 나야 선뜻 내키지 않고 노인들이 외롭거나 혹은 그런 쪽의 스트레스로 잠시 몸이 불편하든지 아니면 저녁을 드시고 소화불량 같은 이유로 답답해하시는 것이라는 생각에 적당한 링겔이나 하나 맞고 갔으면 했는데 동의를 구하니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사실은 이 병원 의사가 그들의 수익을 위해 쓸 때 없이 안 해도 되는 검사를 한다는 불신과 그 불신 속에 쓰지 않아도 되는 비용이 든다는 불만이 가득이었지만 표현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 어린 간호사가 옆에서 나를 보며 어머니가 많이 불편하시는데 당연히 검사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내가 허락하는 대답을 하기도 전에 어머니가 누워있는 병원 이동식 침대를 끌고 가버렸기때문이기도하다.여튼 멀뚱멀뚱 그 상황을 지켜보고 필요한 검사를 하고 나오기만을 기다릴 뿐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이윽고 어머니는 검사를 마치고 돌아오시고 방금 그 간호사가 팔에 링거주사를 놓아주자 집에서 나올 때의 근심이 없어지신 듯 한층 안정되어 보였고 손수 양말을 벗으시고 담요를 가슴까지 덮었다. 차분해진 어머니 얼굴은 더 이상 아들인 내가 필요 없는 듯 당신을 치료해 줄 의사를 바라보며 언제 당신에게 와서 어떤 말을 해줄지 기다리는 눈치셨다. 아마 아들인 나보다 의사를 더욱 신뢰하시는듯하다. 어머니는 늦은 당신의 전화에 짜증과 귀찮음 그리고 병원비와 빨리 진료받게 하고 돌아 가고픈 아들의 속마음을 알았기 때문일 거다. 어머니가 누워있는 침대옆 간이 의자에 앉아 링겔 주사액이 다 흡수되기를 기다리며 스마트폰 검색에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와이프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는 괜찮으신지 묻는데 일말의 걱정은 추호도 없는듯하고 예의상 혹은 립서비스 차원의 물음처럼 들렸지만 이런 와이프에게 당신은 어머니가 걱정도 안 되는지 지금 당장 병원에 와야 되는 게 아니냐며 큰소리를 칠 수 없는 게 나 역시 장모님의 건강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기 때문이었다. 졸림과 잠결에 하는 와이프의 전화에 어머니는 괜찮으니 걱정 말고 난 좀 더 어머니를 보살펴드린 후 집에까지 모셔다 드리고 돌아가겠다고 말해주었다. 응급실 들어온 후 피검사 결과가 1시간 30분 정도 걸린 다했는데 드디어 결과가 나왔는지 젊은 의사가 어머니와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와 피검사와 X레이 검사결과 별 문제는 없고 혈압이 높고 기력이 약하셔서 그런 것이니 혈압약 잘 드시고 음식도 잘 드신 후 가볍게 동네 산책이나 운동을 하면 문제가 없을 거라며 하루치 약을 주고 집으로 가셔도 된다고 했다.
병원비를 계산하고 남은 돈을 어머니께 드린 후 어머니를 차에 태워 집까지 모셔다 드렸다. 어머니는 이런 나에게 고맙다며 내가 문을 닫고 나갈 때까지 서서 바라보는데 그런 어머니를 홀로 두고 가는 내 마음이 머랄까 안타깝고 속상하고 별의별 생각에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돌아가는 차속에서 홀로 나의 노년은 도대체 어떤 모습이 될까 궁금하기도 하고 마치 결정된 운명인양 방금까지 함께 했던 어머니의 모습이 내 모습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불쌍하신 어머니의 모습이 내 모습이다.
세상은 각자도생이고 이건 부모자식 간에도 적용되는 게 현실이다.
집에 들어가서 추울세라 이불을 덮어주고 나온 어린 내 아들도 장차 가정이 꾸려지면 그 자식들이나 와이프가 우선이 될 것이다.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가 이미 잠들어있는 와이프 옆에 누워 잠시동안 컴컴한 허공을 바라보았다. 사는 것은 허무하고 시간은 유속과 같이 빠르며 기쁨은 잠시이고 즐거울 것도 슬플 것도 괴로울 것도 순간이고 이 순간 늙어진다는 것이 나를 슬프게 하였다. 어머니도 젊은 날이 있었을 것이고 누구나 같은 패턴의 삶을 살 것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어머니는 좁은 방 속에서 나처럼 어두운 천장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실까? 홀로 남겨두고 먼저 가버린 아버지를 그리워하실지 아니면 욕을 하실지 그것도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살아있지만 아무런 의욕도 감정도 없이 누워 계실까? 어머니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홀로 하시며 이 춥고 긴 밤을 보내고 계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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