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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바웃해봄 Jul 30. 2021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그 길 위에


 요즘 사람들은 어쩌다 길을 잃었을 때 제대로 주의를 기울지 않아서, 그리고 돌아갈 길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혹은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아서 길을 잃는다. (p.25)


<월든>에서 소로는 이렇게 말했다. “숲에서 길을 잃는 경험은 언제나 놀랍고 기억에 남고 더군다나 값진 경험이다. 우리는 길을 완전히 잃은 뒤에야, 더 간단히는 뒤로 돌아선 뒤에야(이런 세상에서는 눈을 질끈 감고 한 바퀴만 뒤로 돌아도 쉽게 길을 잃으니까) 자연의 방대함과 이상함을 진정으로 음미할 수 있다. 우리는 길을 잃고 세상을 잃은 뒤에야 비로소 자신을 찾기 시작한다. 자신이 있는 곳을 깨우치고, 자신과 세상이 무한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깨닫는다.”(p.32)


울프에게 길 잃기는 지리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체성의 문제, 열렬한 욕망의 문제, 심지어 다급한 필요의 문제였다. 아무도 되지 않는 동시에 아무나 될 수 있어야 한다는 필요성,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들이 생각하는 나를 상기시키는 일상의 족쇄를 떨치고 싶다는 필요성의 문제였다. 이런 정체성의 용해는 낯선 장소나 외딴 은거지를 찾는 여행자가 빈번히 겪는 일이지만, 울프는 의식의 미묘한 뉘앙스를 예리하게 인식하는 능력이 있었기에 낯익은 도시의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안락의자에서 잠시 고독을 누리는 것만으로도 알아낼 수 있었다. (p.34)


삶은 늘 위험한 법이니, 조금이라도 덜 위험한 삶은 이미 무언가를 상실한 것이기 때문이다.(p.154)


 리베카 솔닛의 <길 잃기 안내서>를 독서토론으로 만나게 되었다. 토론의 장점은 함께 읽기도 있지만, 절대 읽지 않을 책을 읽고 운이 좋으면 인생 책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이 인생 책이 되면 좋았겠지만 나에겐 많이 어렵다. 유미의 세포처럼 작가의 세포가 아닌 이상 하나하나 다 공감하진 못하고 읽을수록 책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다. 그럼에도 이 책을 잃으며 많이도 설레었다. 날것의 감정이 어휘로 발현되고, 수많은 사유들이 문장으로 표현되어, 훔치고 싶은 문장들로 넘쳐난다. 질투 난다 이 작가.


독서토론을 하신 분은 매끄럽지 않은 단락의 연결로 번역에 대한 이슈를 제기한다. 원서를 읽으면 책의 내용을 더 깊이 이해하겠지만 능력치 부족이기에 한국어만으로 충분히 만족한다. 


이 책의 작가는 길을 잃고 새로운 곳에서 발견되는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해 보라고. 길을 잃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게 아니라 잃기 위해 노력해 보라 한다. 길 잃기 예찬론자이다.  


소로처럼 지리적 길 잃음은 별로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작정 버스를 타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끝없이 갔던 기억. 왜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녁이 되어 같은 버스를 타고 다시 돌아왔다. 해외여행을 가도 지도를 조금만 벗어나도 곧잘 지도 안의 길을 찾고자 안간힘을 썼다. 나의 길 잃음은 아마도 울프에 가까우리라.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도 삶의 큰길에서 벗어난 적은 없다. 학교를 나오고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암묵적 삶의 도로를 걸어왔을 뿐이다. 그런걸 보면 길이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위험을 감수하는 길 잃음은 애초부터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함께 독서 토론한 분의 마지막 발제가 인상적이다. '길'을 잃고 싶은가? 잃고 싶지 않은가? 의 논제였다. 대부분은 잃고 싶지 않다고 했다. 놀랍고 용기 있는 대답들이었다. 작가는 길을 잃지 않는 덜 위험한 삶은 무언가 상실을 한 삶이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꺼이 상실의 시대를 선택하리라. 


독서토론을 통해서 길을 잃고 안 잃고의 의미보다. 과연 '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원론적인 고민을 먼저 해본다. 삶의 안전한 큰 틀이 '길'이라면 불안전하고 보장되지 않은 '길'을 선택한 것은 길 잃음인가? 만약 그 길이 성공하면 그건 다시 안전한 '길'이 되는 것인가? 길 잃음에 대한 개인적인 정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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