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과의 식사 후 계산을 하기 위해 카운터에 갔다. 인원수대로 나누어 각자의 몫을 내게 보내기로 한 지인들은 먼저 밖으로 나가 있었다. 내 카드로 계산을 마친 사장님은 카드와 영수증을 건네며 머뭇거리셨다. 뭔가 할 말이 있으신 듯했다. 나는 궁금한 마음에 카드를 지갑에 넣으며 뜸을 들였고 사장님은 기다렸다는 듯 기어이 한 말씀을 하셨다.
"음식값 계산하는 사람은요, 반드시 복이 들어와요. 누군가에게 밥을 사준다는 건 내 덕을 쌓는 거거든요. 옛날부터 그랬어요. 마을마다 부자 양반들은 가난한 사람들 거두어다 먹을 거 줬잖아요? 그게 좋은 마음 때문이기도 했지만 덕을 쌓아서 후손들 잘되라고 비는 마음 때문이 더 컸어요."
계산만 내 카드로 했을 뿐 밥값은 똑같이 나누기로 한 터라 그냥 듣고 있을 수만은 없던 나는 해명을 했다.
"아... 그런데 사장님. 계산은 제가 하지만 똑같이 나누어서 받을 건데... 그러면, 소용이 없는 거죠? 하하하"
내 말에 사장님은 당황하신 듯 딴청을 하셨다. 하지만 가게를 나서는 나를 기어이 뒤따라 나와 지인들을 만나고 헤어지는 장면을 끝까지 지켜보고 서 계셨다. 얼마 나왔냐고, 얼마씩 보내면 되냐고 묻는 지인들을 향해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나중에 톡방에서 얘기하자고 할 수밖에 없었다.
톡방에서 사장님과의 대화를 얘기한 후 나는 말했다.
"오늘은 덕을 쌓지 않겠습니다~ 만 오천 원씩 보내주시면 됩니다~"
덕을 쌓는다는 건 무엇일까.
어떤 행동을 하면 복이 들어올까.
운이 들어오는 인테리어라며 사람들은 집안에 해바라기 그림, 부엉이 장식을 놓기도 한다. 가족 모두 건강하고 하는 일 다 잘 되고 부자 되게 해 달라며 절에 가서 등불을 달거나 교회에 가서 헌금을 한다. 산행길에 우연히 발견한 돌탑 앞에서는 태연해지기가 쉽지 않다. 기도를 하며 조심스럽게 돌멩이 하나를 얹어놓아야 마음이 놓인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하면서도 기본적이며 쉽고 간단하고 심지어 돈도 안 드는 방법을 나는 안다. 사실은, 우리 모두 안다. 유치원, 초등학교 때부터 배웠기 때문이다.
친절, 배려, 감사, 이해, 존중...
타인을 대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배웠다.
상냥한 말투, 따뜻한 눈빛, 예의 바르고 친절한 태도, 겸손한 마음....
어떤 것이 나를 빛나게 하는지에 대해서도 다 배웠다.
다만, 배운 대로 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얼마 전, 학부모의 악성 민원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셨던 한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학부모이던 시절의 일들이 떠올랐다. 우리 학교는 교육과정 편제표가 왜 이 모양이냐며 바꿔 달라는 사람, 우리 학교는 왜 영어 부교재를 안 쓰냐는 사람, 시험 기간이 짧다는 사람, 길다는 사람, 주말을 껴야 한다는 사람, 주말을 포함시키면 안 된다는 사람... 학부모 회의를 하면 건의 사항이 차고 넘쳤다. 대화와 타협 따위는 없었다. 건의사항이 관철되지 않으면 하루가 멀다 하고 학교에 전화해서 악다구니를 떠는 사람도 있었다. 교감 선생님에게 한 시간 동안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같은 학부모인 게 선생님들께 죄송했다.
시간이 지나니 그들이 걷어찬 복은 아이들의 성적에서 드러났다. 학교의 모든 것을 자녀의 기준에 맞추려고 안달이 났던 그들은 본인이 원하던, 자녀의 의대 합격 꿈을 이루지 못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자녀의 성적은 떨어졌다. 자녀가 고3이 되었을 때, 그 학부모들은 수면 밑으로 자취를 감췄다. 일반화할 수 없는 논리라는 건 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모든 건 연결되어 있다.
그들이 평소에는 온화할까.
평온함보다는 불안과 초조를 달고 살지 않을까.
불안과 초조는 날카로운 말과 굳은 표정으로 드러나지 않을까.
그런 부모의 모습을 보는 아이는 안정된 마음으로 공부에 집중할 수 있을까.
그러니 덕을 쌓고 복을 부르는 것은 일상의 문제다.
사람들에게 밥을 사주거나 보시, 헌금을 해서 들어오는 복에 기대기보다는, 일상의 나를 관리하는 것이 복을 부르는 데 더 이롭다.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을 갖고 상대를 바라보며 무엇이 나를 편안하게 하는지, 어떤 말과 행동이 나를 빛나게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한다면 안 풀릴 일이 없다. 배 곯던 시절에는 한 끼 배부르게 뜨신 밥 내어주는 게 덕을 쌓는 일이었다면, 마음이 허한 시절에는 상대를 할퀴는 말과 행동을 꿀꺽 삼키는 것이 덕을 쌓고 복을 부르는 일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