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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May 24. 2024

제 몽타주를 그립니다

< 라라크루 금요문장공부 >

⭕라라크루 [금요문장: 금요일의 문장 공부] 2024.05.24

[오늘의 문장] -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_류시화 

세상에 매몰될 때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 수행의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이 나를 붙들어 주었다. 포기하지 않고 길을 모색하게 하는 힘은 나 자신에게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나와 연결된 존재들로부터 온다. 그것을 인식할 때 우리는 안도하게 된다.


[나의 문장]

나를 조롱하는 사람에게 화가 날 때마다, 그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 나의 단점과 약점을 고민해 주고 진심으로 충고해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흥분했던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됐다.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힘은 나 혼자서는 키우기 힘들다. 나와 관계된 모든 사람의 눈과 말을 통해 가능하다. 나에 대한 주관적인 견해가 상호작용을 하다 보면 객관적인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나의 이야기]

송은이와 김숙이 진행하는 팟캐스트인 비보티비에는 <빌런의 마음을 읽는 자들>이라는 코너가 있습니다. 청취자가 자신을 너무 힘들게 하는 사람의 사연을 보내면, 프로파일러 권일용 씨가 빌런의 심리를 분석하고 진행자들이 대처법을 알려줍니다. 김숙이 그려주는 빌런의 몽타주가 압권인데, 각 사연에 찰떡같이 어울리는 몽타주를 그려냅니다. 


'나도 사연 한 번 보내볼까?' 싶은 빌런이 제 인생에도 등장했습니다. 수시로 저의 외모를 언급하는데, 여러 사람과 있을 때 장난처럼 얘기를 던집니다. 정색하며 받아치자니 전체 분위기를 망칠 것 같고, 개인적으로 얘기할 용기나 엄두는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자꾸 신경에 거슬리기 시작했습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자꾸 그러니 화도 났지요. 그러다 비보티비를 들으며 소심한 복수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사연을 보내는 일은 내밀한 사적 복수 같습니다. 불편한 감정을 상대에게 직간접적으로 전할 수 없을 때, 상황을 종료시킬 뾰족한 대책은 없을 때, 방송을 통해 널리 알리는 것만으로도 통쾌할 것 같습니다. 당사자는 모르는 광장에서의 평가, 한바탕 웃어젖히게 만드는 신박한 해결책, 거기에 묘하게 닮은 몽타주까지... 종합선물세트가 따로 없습니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집니다. 그 후련함이 오래갈까? 상대가 변할 리는 없고 상황은 반복될 텐데? 내 안에 평화는 찾아올까? 다시 불편함이 차오르면 그때는 어떻게 하지? 

이쯤 되니 사적복수를 꿈꾸기보다는 제가 바꿀 수 있는 단 한 명을 쳐다보게 됩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신속하고 간단하게 건드릴 수 있는 대상. 복수 따위 하지 않아도 내 안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대상. '나'


제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고 다독여줍니다. 상대의 말과 행동에서 내가 참고해야 할 것만 빼고는 모두 버리라고 말해줍니다. 근거 없는 말, 맥락 없는 행동처럼 보일지라도 이유가 있을 테니, 내 삶에 어떤 긍정적인 자극으로 활용할 것인지에만 집중하라고 조언을 해줍니다. 조롱은 자신이 자신에게조차도 하면 안 되지만 충조평판은 자신이 자신에게만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상대가 제게 던진 조롱을 충조평판으로 승화시킵니다. 


더는 상대 때문에 신경 쓰지 않으렵니다. 상대는 이미 외로움이라는 형벌을 받았으니까요. 그런 사람 곁에는 누구도 맘 편히 남아있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저는 빌런의 몽타주를 의뢰하기보다는, 저에 대한 모든 주관적 견해를 참고하여 객관적인 저의 몽타주를 그려 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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