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가 한 명 있다. 스무 살 때부터 알고 지냈으니 몇 년 있으면 30년 지기가 된다. 가끔 기분 상하거나 토라진 적은 있지만 아직까지 그럭저럭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친구를 처음 만난 건 대학 교정에서였다. 같은 과였던 친구와 겹치는 수업이 많아 우연히 자주 만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됐다. 공강 시간에는 오락실에 가곤 했는데, 나는 친구와 어울리고 싶어서 하지도 못하는 게임을 주야장천하곤 했다. 죽이 잘 맞았던 친구와 나는 매일 붙어 다녔다. 주말에도 만나고 같이 해외여행도 다닐 정도로 친했다. 크게 싸워 며칠씩 연락을 끊는 때도 있긴 했지만 며칠 못 가 다시 만나야 했다.
수십 군데 이력서를 냈지만 다 떨어지던 나와는 달리 친구는 졸업 전에 취업했다. 그때부터 우리의 길은 조금씩 벌어졌던 것 같다. 같은 학교 같은 학과를 나왔지만, 친구는 직장인이 되었고 나는 졸업 이듬해에 결혼을 했다. 친구가 정신없이 사회생활을 하고 있을 때 나는 정신없이 육아를 했다. 자주 서로의 안부를 묻고 애로사항을 나누며 조언을 구하기도 했지만 관계가 예전만 못하다고 느껴졌다. 몸은 함께 있어도 마음은 그렇지 않은 것 같을 때가 있었고 섭섭함이 쌓이기도 했다. 그래도 꿋꿋하게 관계를 유지했다.
몇 년 전부터 친구와 조금씩 다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나도 조금씩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시작했는데,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함께 나눌 수 있는 대화 소재가 많아졌기 때문인가 보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30년 가까이 쌓아놓은 추억이 많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많이 나눈 사이만이 알 수 있는 무언가가 우리에겐 있다. 무엇보다 우리에겐, 함께 낳은 아이들이 있다. 이제는 친구가 된 아이들을 스무 해 넘게 함께 키운 오랜 친구. 남편이다.
요즘 들어 부쩍 집에 둘만 있는 시간이 많아진 우리다. 여유롭게 각자의 시간을 보내다가도 문득 대화할 상대가 있다는 것은 참 좋다. 물론 가끔은 말이 안 통할 때도 있지만 대체로 괜찮다.
다정다감한 남편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아이들과 스킨십을 자주 했다. 아들들이 크자 스킨십의 대상이 나로 바뀌었는데, 난 그게 참 귀찮고 싫다. 아무리 거부 의사를 밝혀도 소용이 없다. 그러니 매일 하는 대화의 팔 할이 "하지 마!"다.
며칠 전 수업을 간 교실 칠판에 이런 문구가 쓰여있었다.
"친구가 원하지 않으면 하지 말자" 친구의 하지 말라는 말에도 계속하면 수학 활동지
남편에게 보여주니, 수학 활동지를 얼마든 풀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친구가 원하지 않아도 제 갈 길 가겠다는 고집쟁이 친구에게 미적분 수학 활동지를 왕창 안겨줘야 할 판이다.
親舊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을 뜻한다.
立: 설 립
木: 나무 목
見: 볼 견
친할 친자를 이루는 한자를 조합해 "나무 위에 올라서서 지켜봐 주는 사람", "항상 그 자리에 서 있는 나무처럼 지켜봐 주는 사람"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단다.
앞으로 얼마간의 시간 동안 함께 할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그 자리에 서서 지켜봐 주는 친구가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