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책과 함께 지내지만 빨리 읽지도, 많이 읽지도 못합니다. 읽고 싶은 책은 쌓여가고 마음엔 묵직한 돌덩이가 쌓여가는데 어쩌지 못합니다. 그러니 한 책을 여러 번 읽는 것은 꿈도 못 꿉니다. 그런 제가 최근에 여러 번 읽은 책이 있습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좋아질 줄 알았는데, 읽고 또 읽으니 우울해지던 책, 읽을수록 자존감이 낮아지던 책, '겁도 없이 어떻게 감히?'라며 작가를 욕하게 되던 책.
바로 제가 쓴 책입니다.
투고한 당일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던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지인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낯선 이의 전화를 받았지요. 원고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던 출판사 상무님의 말씀에 도취해 그날 이후로 며칠간 꿈길을 걷는듯했습니다. 출간 계약이 너무 순조로워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지요. 마냥 좋아만 해도 되나 싶었던 제게 남편은 말했습니다.
"좀 누려도 돼. 세상 어느 일 하나쯤은 막힘없이 술술 풀리기도 해야지."
퇴고의 시간도 그리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조금 타이트하게 진행했다면 출간을 한 달 정도 단축할 수는 있었겠지만, 바쁜 일정 사이사이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읽어 내려갔습니다. 출판사에서 교정한 파일에 제가 이어서 교정과 수정을 한 번, 그러기를 두 번, 세 번, 네 번 반복했습니다. 분량이 적다는 게 감사한 순간이었습니다. 한 번 더 볼까 하던 때, 더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글이 점점 싫어지고 덜컥 겁이 났습니다. 제 이름 석 자 걸린 책이 갖고 싶다던 소박한 소망이 탐욕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정도의 글로 출간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세상에 이런 글을 내놓아도 되는가 회의가 들었으며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더 품고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출판사에 오케이 사인을 보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