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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Jul 05. 2024

아무 말없는 너라서

< 라라크루 수요질문 >

❓️ 여러분은 자신만의 힐링 공간이 있나요?       

그곳에서 어떻게 자신을 다독이고 있나요?


스물한 살에 면허를 따고 줄곧 운전을 했다. 26년 무사고 운전자다. 가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는 하지만 자동차가 없는 삶을 상상하기란 어렵다. 네 식구가 함께 쓰는 차라지만 내가 사용하는 시간이 90% 이상이며 남편 명의로 되어있지만, 남편은 바지 차주다. 지담 작가님의 글을 본 후 자동차에 붙여준 나만의 애칭은 "you go now~"다. '65나 OOOO' 번호 중 앞자리를 따서 만들어보았다. 


외출했다 집에 들어가는 길, 차를 주차하고 10분 정도 차에서 뭉그적거린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는 아니다. 완벽한 나만의 시간, 공간을 만끽하는 것이다. 듣던 음악을 마저 듣거나 쇼핑을 한다. 전해야 할 메시지를 보내고 하루 일과표 정리도 한다. 집에 가서 해도 되는 일들이지만 차에서 한다. 집중이 잘 된다. 


운전 중에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는다. 멜론 실시간 차트 100을 재생시켜 모르는 곡은 느껴보고 아는 곡은 따라 부른다. 그러다 보면 어디든 도착해 있다. 순간 이동을 한 것 같다. 


차 안에서 있던 일, 그날의 감정은 유난히 기억에 오래 남는다. 아들들의 대학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큰 소리로 엉엉 울다 웃었다. 환희와 감격이란 게 무엇인지 온전히 느꼈다. 남편과 싸운 후 여섯 시간 동안 차에 함께 있던 날엔, 라디오도 안 틀고 동승자와 한마디도 안 하면서 세 시간을 쉬지도 않고 운전할 수 있는 '내 안의 독한 나'를 발견했다. 속상한 일이 있을 때, 속 시원히 울기에 차만 한 곳이 없었다. 울다 지치면 잠시 눈 붙이기에도 아늑한 공간이었다. 


그렇게 위로가 되는 공간이건만, 나는 참 무심한 운전자여서 제때 차를 챙기지 못했다. 엔진오일이 말라붙었다고 정비소 사장님께 혼난 적도 있고 얼마 전 큰맘 먹고 간 손 세차장 사장님에게도 진심 어린 충고를 들어야 했다. 받기만 하고 주지는 못하는, 살뜰히 돌보기는커녕 방치한 채로 내내 받기를 기대하는 이기적인 운전자다.  


가까운 사람에게는 안 그랬을까. 남편, 자식, 어머니 아버지, 시어머니, 동생... 늘 내 편이 되어주고 힘들 때 기댈 언덕이 되어주는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표현이라도 제대로 하고 사는 걸까. 늘 거기에 있을 거로 생각하며 방치하지는 않았을까. 짜증 나네, 답답하네 하며 욕하고 그들 때문에 차 속에 틀어박혀 운 날도 있지만, 결국은 차 타고 향할 곳은 그들의 품일 텐데... 


그럼에도 여전히 내 힐링 장소는 어떤 이의 마음보다는 작고 아늑한 내 차 안이다. 적어도 차는 나를 평가하고 비난하거나, 답을 제시하고 강요하는 일은 없으니 말이다. 바닥까지 드러내는 나라는 사람의 모든 것을 온전히 지켜봐 주는 존재. 무생물이지만 이름을 붙여준 이유일지도... 


#라라크루

#라이트라이팅

#수요질문

#나만의 힐링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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