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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Jul 18. 2024

간장계란밥 한 술에 살아나는 게 인생

< 라라크루 수요 질문 >

❓ 여러분의 솔푸드(soul food)는 무엇인가요?


밤새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쏟아지던 폭우가 잦아들었다. 비 오는 아침, 평소보다 차들이 많았다. 오늘따라 차들이 다 내 앞에서 끼어든다. 평소 20분이면 갈 거리를 40분 걸려 도착했다. 곳곳에 물웅덩이가 생긴 운동장, 복도 우산 꽂이를 가득 채운 색색의 우산... 비 오는 날, 학교는 다른 곳보다 더 눅눅하게 느껴진다. 날씨 탓일까, 학기 말이라 긴장이 풀린 탓일까, 수업 시작과 함께 두통이 밀려왔다.


오전 일정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 출간한 책 몇 권을 들고 아들들이 졸업한 학교에 갔다. 도서관에 기증하기 위해서였다. 중앙 현관 입구에 우산을 잠시 세워두고 로비를 지나 도서관으로 갔다. 굳게 닫힌 문에 안내문 한 장이 붙어 있었다.

금일 도서관 이용 시간을 단축합니다.
이용 가능 시간 : 오전 9시~오후 1시 30분
사유 : 출장

스마트폰 시계를 보니 1시 50분. 아쉽지만 발길을 돌렸다. 우산을 세워두고 도서관 입구에 도착했다가 바로 유턴을 해서 왔으니 채 1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을 텐데, 우산이 없었다. 근처 어디선가 황급히 문 닫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지만 우산 하나 찾겠다고 이방 저 방 문을 열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속절없이 로비 쪽을 한 번 쳐다봤다가 휑해진 현관을 한 번 둘러봤다가 포기하고 주차장까지 내달렸다. 집에서부터 걸어왔다면 꽤 난감할뻔했다.


축축해진 마음과 몸으로 집에 오니 머리가 깨질 듯했다. 진통제 두 알을 입에 털어 넣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까무룩 잠들었다가 속이 쓰려 일어났다. 4시. 그때까지 한 끼도 먹지 못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배는 텅텅 비고 영혼은 탈탈 털린 것 같은 지금. 든든하면서도 맛있는 음식이 필요했다.


밥솥을 열었다. 딱 한 그릇 분량의 밥이 남았다. 기분이 좋았다. 기름을 두르고 예열한 프라이팬에 계란을 하나 톡 깨뜨렸다.  "취~~~"하는 소리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좋아하는 그릇에 밥을 담고 치즈를 살포시 얹었다. 반숙 프라이를 치즈 위에 얹었다. 간장을 살짝 두르고 깨를 한 꼬집 뿌렸다. 그 위에 참기름을 한 바퀴 둘렀다. 숟가락으로 달걀노른자를 터뜨린 뒤 쓱싹쓱싹 비볐다. 숟가락 한가득 퍼서 입안 가득 넣었다.

'그래. 이 맛이야!'

며칠 전 담근 겉절이 한 젓가락 얹어 한 숟갈.

짭조름한 백명란 한 조각 얹어 한 숟갈.

감태가 있었다면 더없이 좋았겠지만, 김에 싸서 한 입.

기분 좋게 한 그릇을 싹싹 비우고 나니 절로 나오는 한 마디...

"이제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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