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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Jul 22. 2024

엄카로 인형 뽑기에 3만 원을 쓴 아들

< 백 스물한 번째 시시콜콜 디베이트 >

새벽 다섯 시 반, 정적을 깨며 반복적으로 들리는 문자 알람에 눈을 떴다.

띵똥! 왕오락실 1,000원

띵똥! 왕오락실 5,000원

띵똥! 왕오락실 5,000원

띵똥! 왕오락실 10,000원

띵똥! 왕오락실 10,000원


이 자식이 미쳤나!!! 졸린 눈은 비비지 않았어도 번쩍 뜨였고 냉수 한 잔 들이켜지 않았어도 정신이 번쩍 났다. 잠시 후 비밀번호를 누르고 귀가하는 아들의 소리가 들렸지만 아는 체하지 않았다.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이 상황을 최대한 평화롭게, 하지만 필요한 메시지는 전하면서 넘어갈 묘책을 생각할 시간.


아들은 제대 이후 1년 반 동안 정기적으로 용돈을 받아 간 적이 없다. 아들은 필요한 물건이나 의복 구매부터 유흥비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버는 용돈으로 해결하고 있다. 가끔 용돈이 부족할 때 "엄마, 나 만원만~"하며 애교 섞인 문자를 보낼 때 외에는 용돈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학생 아들에게 공부에만 신경 쓰라며 아르바이트도 못 하게 하고 월 백만 원씩 용돈을 준다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배곯지 말라고, 유사시에 쓰라고 카드 하나를 전해주었다. 그저 마음 한구석이 조금은 든든해질까 싶어서였다.


아들은 엄마 카드를 철저히 공사 구분해서 사용했다. 통학비, 학교에서 먹는 점심값, 이 미용비에만 사용한 것이다. 아르바이트하는 학원 차를 끌고 다니는데, 학교에 차를 세울 때 드는 하루 1,000원의 주차비가 교통비의 전부다. 점심은 거르는 경우가 많다. 이미용을 할 때도 싼 곳을 찾아다닌다. 한 달로 쳐봐야 고작 10여만 원 정도 되는 돈을 쓰는 대학생 아들. 고맙고 대견했다. 그런데 며칠 전 새벽, 왕오락실이라는 곳에서 인형 뽑기로 순식간에 31,000원을 긁은 것이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좀 아니지 않나?' 하는 마음도 일었다. 


마침,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 자녀와의 소통법 >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강의 끝무렵에 이 소재를 즉석 디베이트 주제로 제시했다.

< 인형 뽑기에 엄카로 3만 원을 쓴 성인 아들을 이해해야 한다. >


찬성 측에서는 일회성이라는 측면을 강조했다. 매번 하는 행동도 아니고 처음 있는 일이니, 이해하고 넘어가자는 것이었다. 다 큰 성인이므로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며 술에 취한 상태라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도 젊었을 때 그런 실수 한 번쯤은 했으니 얼마든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반대 측에서는 성인으로서의 책임을 강조했다. 성인이라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부모에게서 독립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엄마카드로 인형 뽑기를 했다는 것은 성인으로서 할 행동은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인형 뽑기라는 사행성 짙은 행위는 반복될 수 있기 때문에 이해하고 넘어가면 안 된다고 했다. 술에 취했을 때 한 행동이라는 것도 이해의 근거로는 부족하다고 했다. 오히려 술을 이유로 이해하고 넘어가면 습관이 된다는 주장이었다.


양측의 주장을 정리해 보니, 아들의 행동이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며 심각하게 접근해 잔소리를 퍼붓고 관계를 망가트릴 일은 더더욱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청중들에게, 자녀를 키우는 내내 마음속에서 디베이트를 멈추지 말 것을 제안했다. 소통의 시작은 다름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자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에서 시작한다. 엄마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자녀의 망나니 같은 행동도 자녀의 입장에서 주장을 하고 변호를 하다 보면 이해하는 부분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목소리를 높이거나 잔소리 폭격을 가할 일이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디베이트는 자녀와의 소통에 유용한 도구다.


'인형 뽑기에 엄카로 3만 원을 쓴 성인 아들'과 나의 소통은 무사했을까?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엘리베이터에서 딱 마주쳤다.

일단 아들을 흘겨보았다. 아들은 해맑게 웃었다.

"엄마가 너한테 카드를 줄 때는 말이다, 인형 뽑기에 쓰라고 준 게 아니거든?"

따끔한 한마디에 아들은 말했다.

"쏘리쏘리~ 그런데 나, 여덟 개나 뽑았다?"

"헐!!! 어떻게 여덟 개나? 대단한데? 어쨌든 네가 쓴 3만 원은, 내 강의에서 널 소재로 활용한 대가로 퉁치겠어!"

"하하하하"


그리하여 오늘의 디베이트 Topic은,

< 인형 뽑기에 엄카로 3만 원을 쓴 성인 아들을 이해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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