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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Jan 19. 2024

강매된 기부

백 스무 번째 시시콜콜 디베이트

일주일째 기분이 찜찜하다. 그날 그 건널목으로 건너지 않았더라면 이런 기분과 고민에서 자유로웠을 테다. 꽁꽁 언 손을 연신 비벼대며 얼어버린 입으로 정해진 대사를 간신히 토해내던 청년의 입을 바라보지 말았더라면. 교육, 의료, 식수 중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칸에 붙여달라며 건네는 작은 빨간색 동그라미 스티커를 건네받지 말았더라면. 마음을 독하게 먹고 앞만 보며 내 갈 길을 갔더라면. 그랬더라면...


청년은 어린이에게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는 권리를 내가 찾아줄 수 있다고 했다. 하루 천 원으로 말이다. 더러운 흙탕물을 길어다 마시는 아프리카 아이의 사진을 보여주며 작은 알약 하나면 식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후원자님의 기부로 아이들이 깨끗한 물을 마시면서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어요." 이미 청년에게 나는 '후원자'였다.


내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하던 해부터 한 명씩 결연하여 성인이 될 때까지 기부를 이어왔다는 이야기나, 지금은 보호 종료 아동(자립 준비 청년)을 위해 소액이나마 기부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청년이 권하는 기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이야기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니, 언변이 참 뛰어난 분이었다. 결국 나는 뭐에 홀린 듯 청년이 이끄는 대로 회원가입을 하고 월 3만 원 정기 후원 약정서에 서명했다. 서둘러 그곳을 떠야겠다는 생각과는 달리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깨어있어도 가위에 눌릴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나눔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기부, 사회봉사, 생명 나눔.

나는 지난해 매월 만 원씩의 기부와 연 100시간의 봉사, 연 3회의 헌혈을 했다. 모두 나의 자발성에 기초한 일이었다. 고민도 없었고 후회도 없다. 그런데 이번 기부에는 왜 이리 저항이 일어나는 걸까. 마음속에서 디베이트가 한창이다.


< 주제 : 기부단체의 길거리 홍보는 바람직하다 >

찬성 : 기부 문화 확산에 필요하며 결국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다.

우리나라는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공여국이 된 유일한 사례다. 짧은 시간 경제 대국으로 거듭난 데에는 해외원조의 힘이 크다. 그 힘을 아는 나라로서, 그 나라에 살고 있는 국민으로서 열악한 국가의 국민을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기부는 여전히 먼 나라의 이야기 같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부율은 2011년 36.4%에서 2021년 21.6%로 감소했다. 기부뿐 아니라 사회봉사도 줄어드는 추세인 걸 보면 나눔에 대한 인식이 점차 흐려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들의 문제를 국가가 복지 정책으로 해결하면 좋겠지만 여전히 사각지대는 존재하며 세금으로만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함께 사는 세상에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개인이 가진 것을 자발적으로 나누는 행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길거리에서 하는 기부단체 홍보는 단순한 영업행위라고 볼 수 없다. 영업의 목적이 해당 단체의 이익 창출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 지구적 문제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후원과 나눔의 필요성을 전하는 것, 개인의 작은 도움이 누군가의 생명과 직결되었다는 사안의 긴박함을 알리는 것이 길거리 홍보의 목적이다. 방법을 몰라서 기부나 나눔 실천을 못 하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으며 그들에게는 귀한 정보다. 기부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은 순전히 개인의 자유다. 강요라고 생각하는 것은 각자의 마음에서 일어난 거부감 때문이지 홍보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반대 : 타인의 선의를 이용한 강요다.

기부는 매월 일정 금액을 꾸준히 납부해야 하는 일이므로 가정 경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적은 금액이겠지만 정해진 날 통장 잔고에 그만큼의 금액을 채워 넣는 일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경제적 여유가 있더라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스스로 발동해 시작해야 가치가 있다. 감정에 호소하며 몰아붙임으로써 신중히 고민할 틈도 주지 않는 고도의 전략 앞에 속수무책으로 동의하게 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기부 참여가 아니다.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아 기부를 유도하는 건, 특히 소심해서 자기주장 제대로 펴지 못하는 사람들을 붙잡아 두는 것은 강매에 가깝다. 기부 자체가 나쁘다거나 기부 단체가 기부금을 잘못 유용하고 있다는 이유가 아니다. 선택에 있어서만큼은 충분한 고민과 자유로운 결정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부라는 선한 행위에 동참하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라고 낙인찍히는 것 아닐까?' 하는 죄책감을 자극하는 것. 그러한 방식은 절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래서 나의 결론은.

스스로 했건 상황을 피하지 못해 시작한 것이건 뭐가 중요할까 싶은 생각도 든다. 기부하게 됐다는 결말은 똑같은데 말이다. 한 달 3만 원 지출 부담 때문에 생긴 반감이 추운 날씨에 길거리에서 고생하는 청년들과 기부단체를 향한 비난으로 이어진 게 아닐까. 일단 이번 달은 납부해야겠다.



그래서 백 스무 번째 시시콜콜 디베이트 Topic은...

< 기부단체의 길거리 홍보는 바람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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