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봄유정 Aug 16. 2024

그럼에도, 만세

광복절이었다. 광복절은,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광복된 것을 기념하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경축하는 날"로 정의되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두산백과)


대한민국 독립유공자와 그 유족, 그리고 후손들이 모여 만든 단체 광복회가 1965년 설립 이후 59년 만에 처음으로 정부의 광복절 경축식에 불참했다. 독립기념관의 광복절 경축식은 79년 만에 처음으로 취소되었다. KBS는 79주년 광복절 자정 첫 방송으로 일본 배경의 오페라 나비부인을 편성하여 기모노를 입은 배우들이 일본의 국가 기미가요를 부르는 장면을 내보냈다. 독립기념관장 임명과 건국절 논란으로 촉발된 혼란스러운 정국. 역사가 준 숙제를 우리는 여전히 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난 하루였다. 답답함과 죄송한 마음이 가득했다.


우리 집 베란다에는 '만세 선인장'이 있다. 2018년에 선물 받았던 한 그루의 선인장이 이제는 스무 개 남짓한 대가족으로 불어났다. 삐쭉삐쭉 자라나 볼품없어지거나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해 몸체에서 뚝 떨어진 자구를 떼어내 물에 꽂아두면 금세 뿌리가 생겼다. 물꽂이 대신 땅에다 바로 심어도 어김없이 자리를 잡고 자라났다. 휘어질 것 같아 나무 꼬챙이로 고정해 놓으면 곧은 자세를 유지했다.


그 질긴 생명력과 강인함만큼이나 멋진 건 그 녀석들이 꼿꼿하게 들고 서 있는 양팔이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 년 365일 만세를 외치듯 양팔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절로 숙연해졌다. 생존을 위한 사투를 넘어선 기개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뿐 아니라 지금도, 우리나라뿐 아니라 인간이 사는 어디에든 자유, 독립, 평화를 향한 인간의 투쟁은 존재한다. 그 얘기는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억압, 속박, 권력 장악을 향한 인간의 욕망도 존재한다는 뜻 아닐까. 역사를 배우고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지금 여기의 나'는 욕망과 투쟁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결정하기 위해서다. 무엇이 내가 생각하는 정의에 가까운지, 무엇이 우리 모두에게 이로운 결정인지, 과거 선조들은 비슷한 순간 어떤 선택을 했으며 어떤 결과를 마주했는지...


만세 선인장을 매일 마주하는 나는 '만세'를 선택하련다. '만세'를 선택했던 수많은 이들의 생각과 행동이 정의라고 믿으며, 그들의 선택과 결정이 우리에게 더 이로웠다고 믿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집중 취미 활동 주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