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에서 내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기로 했다는 김준정 작가님의 글을 읽고 감동받은 나머지, 작가님이 계신 곳이 어딘지도 모른 채, "제가 가겠습니다!!!"라고 댓글을 달았다. 아무리 브런치에서 오랜 인연을 맺고 글을 통해 신뢰를 쌓아왔다지만, 얼굴도 본 적 없고 대화를 해본 적도 없는 작가님에게 들이대다니... 나답지 않은 행보였다.
북토크는 일사천리로 추진되었다. 추석 전까지 남은 3주 동안 내가 가능한 날짜를 알려드렸더니 김준정 작가님이 조율된 일정을 알려주셨다. 불과 일주일 만에 일정이 확정됐고, 처음 이야기가 나온 후 2주 만에 우리는 만났다. 군산에서...
나의 첫 북토크 소식을 들은 전 업무담당자는 휴가를 내고 따라나섰다. 함께 머리 맞대고 고민했던 교육자원봉사 이야기가 책으로 나온 것만도 신기한데, 북토크를 한다고 하니 본인 일처럼 기뻐하며 동행해 주었다.
북토크는 김준정 작가님이 진행해 주었다. 북토크에 참여해 주신 분들은 작가님과 군산에서 함께 읽고 쓰는 분들이었는데, 대부분이 브런치 작가였다. 질문의 흐름이 교육자원봉사에서 디베이트로, 디베이트에서 글쓰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북토크는 식당과 카페로까지 이어졌다. 살면서 네 시간 동안 쉴 새 없이 나를 향한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던가. 교육자원봉사와 디베이트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들을 만나본 적이 있던가. 교육자원봉사, 디베이트, 글쓰기의 재미와 의미를 실컷 이야기해 본 적이 있던가. 질문과 대답이 이어졌던 네 시간이 황홀함과 행복으로 가득 찰 수밖에 없었다. 작가님들은 우리의 대화를 'B급 유퀴즈'라고 농담 삼아 말씀하셨지만 내게는 늘 꿈꾸던 유퀴즈 그 자체였다. 그것도 엄청난 환대 속에 진행된...
여러 이야기가 오갔지만, 김준정 작가님이 던져준 큰 테마는 '경력단절여성의 길 찾기'였다. 나는 가사와 육아에 전념했던 내가 어떻게 가르치고 나누고 쓰는 길에 들어설 수 있었으며 경력으로 연결할 수 있었는지를 공유했다. 여전히 큰 수입을 벌어들이지는 못하지만, 경력과 경제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꾸준히 즐겁게 할 수 있는 나만의 콘텐츠를 찾는다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이야기했다.
북토크가 끝난 늦은 오후, 동행한 업무담당자와 군산 시내를 여행했다. 더위를 무릅쓰고 시간여행코스를 돌아다녔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에 갔을 때, 안내자의 권유로 군산에 관한 영상을 시청했다. 영상 속에 등장하는 등대가 인상적이어서 어디이며 얼마나 가야 하는지 물었더니 어청도 등대이며 15분쯤 걸린다는 답이 돌아왔다. 우리는 그곳에서 일몰을 감상하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가벼운 마음으로 15분 후에 도착한 곳은 군산연안여객터미널이었다. 안내자의 말만 믿고 길을 나선 것이 잘못이었다. 어청도 등대는 군산연안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2시간 30분, 선착장에서 2km 산길을 걸어 30분을 더 가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여객터미널 근처에서 일몰을 감상할 곳을 찾아 헤맸다. 지도상으로는 바다가 손에 닿을 듯 가까이에 있었지만 군산항은 서해 중부권의 관문이라는 별칭답게 물류 시설로 가득 차 있었다. 내비게이션으로는 도저히 일몰 감상지를 찾을 수 없었다.
지도를 무시하고 오로지 감에 의지해 20여 분을 달린 끝에 다다른 곳에서 우리는 그림 같은 일몰을 마주했다. 재난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희망에 찬 수평선을 발견한 주인공들처럼,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생존자가 된 듯 사뭇 웅장해지는 마음으로 일몰을 감상했다.
수줍게 세상에 내놓은 책이 어떤 이들의 마음에 가닿은 날, 우연히 발견한 일몰. 그것이 주는 감동은 여느 때와 달랐다. 한참을 헤맨 후라 더했을 것이다. 내 책이 혹여 어떤 이에게 부족한 정보를 전달해 준 박물관 안내자의 멘트 같은 것은 아닐지 염려가 됐다. 나로 인해 엉뚱한 길에서 헤매게 되면 어쩌나, 나 때문에 길이 아닌 곳에 닿으면 어쩌나...
하지만 길을 찾는 것은 결국 각자의 몫이다. 내 책이, 내 이야기가 어떤 이에게 유용한 내비게이션이 되어주기를 바라기보다는 혹여 길을 잃더라도 멋진 풍경을 발견하는 순간까지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빅데이터 전문가 송길영은 <그냥 하지 말라>에서 '발견되다'라는 단어를 이렇게 정의했다. "그저 내 삶에서 건실하게 구현하고 있었는데 비로소 대세가 되는 것." 그러면서 '발견'되기 위해서라도 먼저 해야 하고 오래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니 발견되는 그 순간까지 우리 모두 멈추지 말았으면 한다. 그게 무엇이든.
* 이웃 작가님들 중, 제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고 싶어 하는 모임이 있다면 부담 없이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교육자원봉사와 디베이트,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이 걸음을 멈추고 싶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