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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Dec 02. 2019

D-100 프로젝트 < D-27 >

< 어떻게 기억될까...>


디베이트 수업을 하면서 뜨는 시간이 있거나 좀 지루해한다 싶을 때를 대비해 준비해 놓는 Plan B들이 있다. 스피드 퀴즈,  일상 4글자 단어 이어 말하기, 인물퀴즈 등이 그런 것들이다. 물론 수업과 관련 없는 흥미 위주의 문제를 내지는 않는다. 주제와 관련된 용어들이나 인물들로 준비를 해간다.

오늘 있었던 중학교 영재학급에서도 4팀으로 나누어 스피드 퀴즈를 했다. 매번 진지하게 디베이트만 하던 아이들은 활기를 띠며 팀별로 신나게 문제를 내고 맞혔다. 아쉬워하며 다음 시간에 또 하자고 졸랐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그랬다.

친목회에서 가족 야유회를 갈 때마다 아버지는 스피드 퀴즈뿐 아니라 가족 오락관을 방불케 하는 게임들로 온 가족들의 혼을 쏙 빼놓았다. 참가자들을 위한 경품까지 꼼꼼히 챙기셨다.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걸 보기 위해 이것저것 준비하면서 즐거워하는 것.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 중 하나구나 싶다.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 아이들은 엄마의 어떤 모습이 자신들에게서 발견됐다고 느꼈을까?

두 아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엄마한테서 배웠다 싶은 것이나 닮았다고 생각하는 게 뭐가 있니? 행동이나 생각,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문자를 기다리며 이런저런 답변들을 예상해봤다.

긍정적이다?

유머가 있다?

뭐든 열심히 한다?

도전적이다?

온갖 좋은 것들은 다 갖다가 붙였다.


작은 아이의 답변.

"뒤끝 긴 거."

헙... 정확했다. 특히 작은 아이에게는 그랬다.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그냥 쿨하게 끝내지 않고 질질 끌며 기분 나쁜 티를 냈는데, 본인도 가끔 그런 모습이 나오더란다.


큰 아이의 답변.

"얼굴이랑, 거절 못하는 거. 근데 지금은 거절 잘함.'

얼굴은 당연히 닮았을 테고...

거절 못하는 것도 정확했다. 크게 손해보지 않거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하는 게 거절하는 것보다 맘 편하다고 생각했다. 그걸 배웠다니...


그리 만족스러운 답변은 아니지만 나를 정확하게 보여주어서 놀랍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좀 더 긍정적인 영향력을 주는 엄마였다면 좋았을 텐데... 

갑자기 궁금하다.

아빠는? 아빠 하고는 뭘 닮은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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