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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Dec 03. 2019

D-100 프로젝트 < D-26 >

< 운칠기삼 >


"나는 왜 이리 운이 안 따를까? 홀짝도 못 맞춰... 세상사 다 운이라고 하는데 난 반반의 운도 못 맞추니..."

출장지에서 카지노에 들른 남편은, 지인이 준 칩 몇 개로 재미 삼아 홀짝에 걸어보았나 본데 한 번도 맞추지를 못했단다.

나 역시 그런운은 없다고 하니 "그래도 당신은 로또 4등까지 돼봤잖아~~"한다.

그랬다. 난 로또 4등 돼본 여자.


로또 판매 초장기, 로또가 2,000원이던 시절.

당시 살던 아파트가 불에 활활 타는 꿈을 꿨다. 급한 대로 아이만 안고 계단을 따라 내려오는데 아이 얼굴에도 불이 활활 타오르고 나와서 바라보니 살던 아파트가 활활 타고 있었다. 예사롭지 않은 꿈이라 생각해 로또를 샀는데, 숫자 4개가 일치해 4등에 당첨됐고 10만 원을 상금으로 받았다.

'꿈을 꾸고 나서 낮 12시가 지나기 전에 샀었으면 1등 아니냐~'는 시어머니의 아쉬움 담긴 핀잔을 받았지만 4등은 뭐 흔한 일인가... 그 이후로는 그마저도 한 번도 이루지 못했으니...


대학 시절, 집으로 귀가하던 지하철에서 옆에 앉은 할아버지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알고 보니 대학 선배셨던 할아버지는 수원역에서 헤어지면서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용돈 50,000원을 주셨다. 처음 만난 분에게 과한 호의를 받은 경험을 당시 사귀던 지금의 남편에게 전했더니 남편 왈.

"너 지하철 타고 자리에 앉을 때 깜짝 놀랐어. 옆에 앉은 어르신 뒷모습이 돌아가신 아버지랑 닮아서..."

여전히 그 행운은 돌아가신 시아버지가 전해주고 가신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 여름에는 즉석복권 10만 원에도 당첨됐었다.

그해 초, IMF로 아버지 회사는 부도를 맞으셨고 살던 집을 처분해야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부엌만 딸린 친척집 반지하 단칸방으로 들어가시고 나와 동생은 작은 아버지 댁에서 기거하게 됐다. 기약 없는 남의집살이였다.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 중, 고등학교에 다니던 사촌동생들 모두 불편함을 감수하고 우리를 살갑게 대해주셨다. 하지만 나와 동생은 아무도 주지 않는 눈치를 보며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며 하루하루 버텼다.

대학을 졸업할 당시만 해도 현실감 없던 나는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수업을 청강하면서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두어 달을 그렇게 다니던 중, 학교 갈 차비조차 없는 현실을 맞닥뜨렸다. 맏딸로서 이렇게 백년서생같이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그 길로 학원 영어 선생님으로 취직을 했다. 동네 보습학원이었지만 결혼 자금이라도 마련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다녔다. 게다가 하루 종일 작은집에서 집안일이나 도와주며 백수처럼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느 날 출근하려고 집을 나섰다가 지갑을 갖고 오지 않은 사실을 알고 다시 돌아갔는데 문은 잠겼고 열쇠는 없었다. 창문으로 넘어갈까 어쩔까 고민하다가 그냥 걸어서 학원으로 걸어가는데 주머니에 천 원 한 장이 들어있었다. 억수로 운도 없는 한해에 가장 재수 없는 하루였으니 상쇄할만한 무언가 있겠지 싶어 즉석복권을 샀고 큰 기대 없이 긁었던 복권은 10만 원 짜리였다.

그렇게, 최악의 상황에서 마주한 행운으로 다시 몇 달을 버틸 수 있었다. 다행히 반년만에 가족들은 다시 합칠 수 있었고 그 이듬해에 학원 월급을 모은 500만 원을 들고 결혼을 했다.


그런데...

어떻게 운이 좋았던 얘기를 하면서 꽁돈 생긴 이야기만 하게 됐을까?

정이 넘치시고 상식 있는 부모님을 만나 잘 자랐고,

자상하고 정 넘치며 성실한 남편을 만났으며,

건강하고 밝게 자라준 아이들이 있는데,

더 이상 운 좋은 삶이 어디 있다고?

세상에 돈 걱정이 가장 행복한 걱정인지라, 그 외에는 걱정거리가 없으면 대박 터진 삶이 아니던가?


여보!

당신은 진정 운이 안 따른 삶이라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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