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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Dec 04. 2019

D-100 프로젝트 < D-25 >

< 회복적 정의 >


작은 아이 학교의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마지막 정기회의가 있었다. 

큰아이 중학교 때 2년간 자치위원을 하고 두해 쉬다가 결원이 생기면서 올해 다시 들어가게 되었다. 이번 해에는 학폭위에 올라오는 사안 없이 모두 학교장 자체 해결로 처리되어 조용히 마무리됐다. 


큰아이가 중학생이던 3,4년 전 학폭위 때는 연간 10여 건의 학폭 사건이 발생해 심적으로 굉장히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속된 말로, 서로 치고받고 하는 싸움이라면 차라리 나았다. 학교폭력의 사안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심리적 영역이거나 성적인 부분, 언어폭력 등이 대부분이었다. 학폭 자치회와 자치위원의 전문성에 대한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고 같은 학교 학부모가 자치위원이라는 것에 대한 불만들도 많았다. 그러한 불만들 속에서 자치위원으로 활동한 학부모들의 고충은 묻혔다. 

회의가 시작되면, 학폭 관련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차례로 만나면서 사안에 대해 구체적 상황과 심경을 듣는다. 자치위원들이 궁금한 것을 묻기도 하지만 주로 관련 학생과 학부모들의 끝없는 성토 혹은 반성을 들어주는 것이 우리들의 역할이었다. 몇 시간 동안 이야기를 듣고 나면 몸은 굳어졌고, 간혹 많이 울기라도 한 날에는 머리까지 띵 했다. 게다가 학폭 사안으로 올라오면 가해학생에 대한 처분과 피해학생에 대한 조치까지 결정해야 했고 그 시간은 고역이었다. 


가해학생과 피해 학생 모두 나름의 사연과 이유가 있었다. 이해하지 못할 상황이란 없었으며 특별히 악한 학생이란 드물었다. 대부분 학폭까지 오는 이유는 학폭의 내용 때문이 아니었다. 사안을 대하고 처리하는 당사자들의 태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았다. 

자기 아이의 가해 행동을 최대한 축소한다거나 피해학생을 이상한 아이로 몰기.

피해 정도를 과하게 확대하거나 가해학생을 이상한 아이로 몰기. 

사과를 하고 싶었으나 상대가 안 받아줘서 기회가 없었다는 경우.

진심 어린 사과를 안 해서 더 화가 났다는 경우.


최근 불거진 어린이집 아이들의 문제를 보면서 마음이 착잡했다.

아무리 아이라지만 행동이 지나쳤던 것은 사실이나, 제삼자들이 양쪽으로 나뉘어 아이와 부모들을 비난하고 훈수를 둘 일은 아닌 것 같다. 피해 아이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피가 거꾸로 솟을 일임에 분명하지만 침착하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감히 말한다. 

법적인 문제는 어른들의 문제이지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 막 첫 사회를 경험한 아이들이다. 누군가에게는 100년을 따라다닐 주홍글씨가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100년을 따라다닐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다. 아직도 행복하게 살아야 할 날이 많은... 너무... 아이들이다.


용인 마을교사 중에는 <회복적 정의> 팀이 있다. 

그 분야에 배경지식이 없던 나는 그 팀의 수업 시연을 듣고 홀딱 반했었다. 

회복적 정의란,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별 짓기, 가해자에 대한 응징,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뛰어넘는 진정한 평화를 찾는 과정이라고 했다. 기존의 응보적 정의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불만과 분노로 종결되는 사안들을 용서와 화해로 종결되도록 도와주는 개념. 양보와 포기로 보여 손해 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만족을 주는 방법. 마냥 이상적이기만 하고 허황된 개념이 아님을 경험했다.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학폭 위원으로 활동하는데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어린이집 사건 아이들의 상황도 이렇게 해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두 아이 모두 가엽고 안쓰럽다. 

두 아이와 그들의 부모들이 분노로 이 사건을 마무리 짓고 평생을 증오에 치를 떨며 살지 않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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