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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Dec 01. 2019

D-100 프로젝트 < D-28 >

< 무릇, 부부란...>


남편의 출장... 

ㅋㅋㅋㅋㅋ 며칠간은 귀찮게 느껴지던 스킨십과 저녁 밥상 고민에서 해방된다.

ㅠㅠㅠㅠㅠ 널따란 침대에서 편하게 혼자 자는 것이 어색해 불면의 밤을 보내게 된다.


3박 4일간의 출장이다. 간만의 해방감을 느끼면서 그리움이 차오를 때쯤 다시 만나게 되는 시간...

있으면 귀찮고 없으면 허전하다고 하더니, 남편이 없는 주말은 더 허전하고 쓸쓸하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부부'라는 이름으로 묶이게 되면 묘한 감정이 생긴다. 흔히들 '정'이라고도 얘기하는 그것. 함께 살아온 시간만큼 끊고 싶어도 쉽게 끊을 수 없고 아이라도 있다면 더 찐득하게 달라붙는...

물론 모든 부부가 그렇지는 않다. 다양한 부부의 유형들은 주변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남편을 경제적인 도구로만 생각하는 아내, 아내에 대한 집착이 심한 남편,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 남편을 공공연하게 무시하는 아내 등등... 정 이전에 기본적인 예의조차 차리지 않는 이들도 많다. 


40여 년을 지치지도 않고 싸우던 한 부부가 있다. 여행을 가도 싸우고, 주차를 하다가도 싸우고, 밥을 먹다가도 싸웠다. 누가 있어도 싸우고 없어도 싸웠다.

아내는, 남편의 집안 사정이 딱해 도와줘야겠다는 '측은지심'에 결혼했다고 했다. 의사와의 결혼을 포기하고 건설회사에 다니던 청년을 택했다. 그의 우직함과 곧음에 끌렸다. 일찍 돌아가신 시어머니를 대신해 시아버지와 시동생 두 명, 중학생 시누이 한 명을 건사해야 했지만 자신이 선택한 길이었으니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우직함과 곧음의 다른 말이 답답함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걸 꼭 말해야 아냐'는 남편에 대한 답답함에 아내는 잔소리로 대응했고 남편은 입을 더 닫았다.

남편은, 아내가 고마웠다. 자신의 형편을 알고도 결혼해주고 알뜰한 살림 솜씨를 가진 것에도 감사했다. 자신 때문에 고생하는 아내에게 한없이 미안했다. 하지만 자신의 맘을 헤아리지 못하고 잔소리에 악다구니를 뱉는 아내에게 지쳐갔다. 버럭 소리를 지른 적도 있고 침묵으로 일관해보기도 했지만 상황은 더 악화될 뿐이었다. 

그렇게 악화일로를 걸으며 이혼 혹은 졸혼까지 생각해보던 부부에게 한 사건이 터진다. 

건설업을 하는 남편이 현장 일꾼들을 잠시 돕던 중 일어난 사고... 잠깐 일손만 도우려던 참이라 안전화도 신지 않고 있던 게 화근이었다. 무게를 이기지 못한 인부들이 무거운 철근을 놓치는 바람에 남편의 손과 발이 그대로 깔려버렸다. 양쪽 중지가 잘려나갔고 오른발도 절단 직전까지 가는 바람에 발등뼈가 내려앉았다. 왼발은 큰 위기는 모면했지만 충격으로 부어올랐다. 접합을 위한 긴급수술을 했다. 

갑작스러운 사고 소식에 아연실색해진 아내는 병원으로 향했고 이후 2달 동안의 병원 생활이 이어졌다. 

병간호에 지친 아내가 단잠을 잔다...아내의 단잠을 깨우기 싫은 남편도 낮잠을 잔다...

사지를 쓰지 못하는 성인 남자의 간호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전, 오후 하루에 두 번씩 휠체어로 옮겨 소독과 치료를 받으러 가야 했다. 연약한 아내가 성인 남자의 몸을 들어 휠체어로 옮기는 일이 힘들 거라는 것을 헤아린 남편은 통증을 이 악물고 참으며 부은 발과 팔꿈치를 이용해 휠체어에 앉았다. 평소 깔끔한 성격의 아내는 남편이 휠체어에 앉은 김에 세면대를 이용해 매일 머리를 감겨주었다. 

아내는, 매운 것을 못 먹는 남편을 위해 집에서 먹던 반찬들을 구비해두었고 매 끼니 질리지 않게 돌려가며 준비해주었다. 남편은, 힘들어하는 아내가 딱해 아내 몰래 깽깽이로 화장실을 다녔다. 

그렇게 두 달간의 병원생활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부부는, 평소대로 다시 싸웠다.

언젠가는 또 졸혼을 할까, 이혼을 할까 고민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들은 현재 부부이다.

손주들 얘기를 반찬삼아 저녁을 함께 먹고 각자의 방에서 드라마를 보다 잠든다. 

아침에 일어나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고 아픈 데는 없는지, 옷은 잘 입고 나가는지, 술 먹고 운전을 하지는 않는지 체크한다. 그러다가 또 맘에 안 들면 싸우지만 그래도 여전히 부부다.


'무릇, 부부란...'

이라는 건 없다.

행복하려면 이래야 한다거나 저래야 한다거나 그런 건 없다고 본다.

그런 덕목을 만들어 지키겠노라 다짐하기엔 부부의 삶이란 너무 다이내믹하다.

그냥 가보는 거다.

잘 모르는 사람이랑 살아보는 거다. 힘들 땐 위로도 되고 짐이 되기도 하지만 함께 겪어보고, 기쁜 일에는 서로 껴안고 방방 뛰기도 하면서... 아파하며 끙끙 앓을 땐 약이라도 챙겨주고 잠자리라도 봐주면서... 미울 땐 욕도 하고 각방도 쓰면서... 

그러다 정 안 되겠으면 졸혼이든 이혼이든 하면 된다. 그게 뭐라고... 

그게 뭐여서 힘들 것 같으면 그냥 또 살면 그만... 

이제 20년 살아본 나는 부부를 정의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출장 간 남편에게서 톡이 왔다.

몸이 너무 아파서 잠을 못 잘 것 같단다...

집에서도 목디스크와 무릎 염증 때문에 앓다가 간 사람. 

내 몸이 아니니 옆에 있어도 특별히 해줄 건 없지만... 그래도 내가 필요한가 보다. 

이번 출장은, 그리움이 빨리 차오를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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