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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Nov 30. 2019

D-100 프로젝트 < D-29 >

< Dialogue in the Dark >


애정해마지않는 예능프로인 신서유기에는 좀비게임이라는 코너가 있다. 암전된 방안에 멤버들 전원이 갇히고 한 명의 멤버만 좀비로 지정된다. 좀비 멤버가 시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에 의지해 다른 멤버들을 찾아 괴롭힌다. 좀비의 공격에 '항복'이라는 소리를 지르면 공격당한 멤버 역시 좀비로 변한다. 제한된 시간 동안 살아남은 멤버가 있다면 인간이 승리하는 게임.

승자에게는 기껏해야 식후 디저트나 약간의 용돈이 주어질 뿐이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잡히지 않기 위해 용을 쓰는 그들의 모습에 배꼽이 빠져라 웃는다.


"에이... 아무리 빛을 다 차단해도 조금만 지나면 보이지~"라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들을 위해 전시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 Dialogue in the dark - 어둠 속의 대화 >라는 전시다.


5년 전, 겨울방학을 맞아 아이들에게 보여줄 전시를 찾아보던 내 눈에 띈 것은, 완벽한 어둠 속을 로드마스터와 함께 100분 동안 체험해보는 전시였다.

한 명의 로드마스터와 8명 정도의 체험자들이 한 팀이 되어 100분간 어둠 속에 꾸며진 테마공간을 돌아다녔다. 앞사람을 잡고 벽을 더듬어가며 발도 떠듬떠듬 딛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공간마다 다른 소리와 냄새, 촉감, 로드마스터의 설명을 들어가며 내가 알고 경험했던 것들을 총동원해 공간의 그림을 머릿속에 그려야 했다.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칠흑 그 자체인 시야.

난 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어 계속 눈을 떠보아도 전혀 달라지는 것이 없는데서 오는 절망감.

앞사람도 없고 벽도 없고 로드마스터도 없다면... 갑자기 비상상황이 되어서 출구를 찾아야 한다면 난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모른다는 두려움.

로드마스터가 "여긴 시장이에요~"라고 하거나, "여긴 고택의 정원이에요. 고택의 마루에 모두 앉아보시겠어요?"라고 하면 그런가 보다... 하고 믿어야 하던 상황.

처음에는 낯섬과 신기함이 재미로 다가왔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견디기 힘들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공포와 슬픔이 온몸을 감싸던 전시였다.


전시가 끝나갈 무렵, 카페 공간에서 음료를 주문해 테이블에 앉아 마시며 소감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자신이 마신 음료가 무엇인지를 맞추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콜라, 사이다 등 늘 마시던 것, 아는 맛인데도 어둠 속에서는 전혀 다른 맛으로 느껴지던 순간.

우리가 가진 시각적 정보라는 것이 얼마나 우리를 편견에 내모는지를 절감했다.

100분간 우리를 이끌던 로드마스터가 실은 시각장애인이라는 말을 듣던 순간.

전시 내내 '나는 앞이 보이는 사람이라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이면서도 무력하고 염치없는 인간인지를 통감했다. 또한 눈에 보이는 것이 만들어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서도...

<눈먼 자들의 도시>라는 책, 동명의 영화가 생각났다.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눈이 멀어버리는 전염병에 걸린 도시에서 유일하게 눈이 보이던 여자의 눈에 비친 절망적인 세상의 모습... 눈이 안보이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본성에서 기인한 이기적이고 악마 같은 행동들... 앞이 안 보인다는 설정은 인간이 가진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결과를 낳았다. 마치 타조가 땅속에 머리를 박고 몸 전체를 숨겼다 생각하듯이 내 눈에 안 보인다고 내 모든 것이 드러나지 않을 거라는 속 편한 생각.


'전시'라는 말과 '어둠'이라는 말은 서로 상충하는 개념임에 분명하다.

볼 수 없는 상황에 던져놓고 보라니... '눈에 보이는 건 없겠지만 한번 봐~~~~'

그런데 보였다.

내가 살아오며 경험하고 느꼈던 것들이 보였고 사랑하는 아이들의 숨소리가 보였다.

간절하고 소중하게 살아야 하는 내 삶이 보였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보였다.

그렇게 어둠 속에서 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고 대화하던 시간을 보냈다.

그러느라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썼는지 밤새 몸살로 끙끙 앓았지만, 이후로도 많은 이들에게 강추했던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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