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베이트 코치 생활을 한지 어느덧 8년이 되었습니다. 초등학생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대상에 제한이 없었습니다. 최근, 새마을지도자회에서 장년층을 대상으로 디베이트를 해보았는데 우려했던 바와 달리 적극적으로, 즐겁게 참여해 주시더군요. 토론해보고 싶은 주제도 다양하게 제안하셔서 중장년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습니다.
디베이트의 링 안에 들어오면 양측은 동등해집니다. 디베이트가 가진 독특한 장치 때문입니다. 디베이트가 일반 토론과 가장 다른 특징은 찬성과 반대를 자신의 소신대로 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동전 던지기나 가위바위보로 입장을 정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먼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사자성어로 '역지사지'라고 해요. 억지로 떠맡게 됐지만 그 입장에서 주장을 하고 그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를 고민하다 보면 '아, 찬성에게도 이런 이유가 있었구나', '반대팀에게는 이런 사정이 있었구나. 몰랐네...' 하면서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지요. 완전히 마음이 바뀔 수는 없겠지만 조금은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되고 그렇게 된다면 대화가 좀 더 평화로워지겠지요?
두 번째 이유는, 감정이 다치지 않고 논리에 집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디베이트를 하다 보면 상대팀이 말하는 것에 기분 나빠할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상대팀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그 팀이 맡은 입장의 '주장과 근거'일 뿐이거든요. 우리 팀의 주장을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가 공격하는 건 나와 우리 팀 '사람'이 아니라 우리 팀이 주장한 내용의 허점, 오류거든요. 서로가 서로의 논리적 허점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감정을 다칠 이유가 없습니다. 감정을 다치지 않는 안전한 장치를 제공받았으니 논리에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디베이트에서는 정치, 종교, 성적 지향 등의 문제 등 우리가 민감하게 생각하는 주제들을 모두 다룰 수 있습니다. 안전하고 평화롭게 말이지요. 제가 디베이트를 좋아하고 널리 알리고 싶은 이유입니다.
정치 생각만 하면 머리가 아파집니다. 정확히 말하면 정치 자체가 아니라 정치인들 때문이지요. 우리 좀 잘 살게 해달라고 뽑아놨는데 맨날 쌈박질입니다. 국민을 위해 싸우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점점 관심을 끄게 됩니다.
저는 정치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생활 속 모든 갈등이 정치의 소재이고 그 갈등을 잘 풀어나가는 과정이 정치입니다. 다수의 국민을 대신한 정치인들이 그 역할을 대신해 주는 것이고요. 문제는, 정치인이란 사람들이 소소한 일상의 문제를 마치 거창한 것인 양 포장해 국민들에게서 빼앗아 정치판이라는 공간 안으로 가두어두었다는 것입니다. 백번 양보해, 전문가의 영역이라고 칩시다. 가두어 두었다면 제대로 논의하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 하는데 이권만 챙기느라 논의는커녕 관심도 없습니다.
어쩌면 제대로 논의하는 방법을 몰라서 못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안의 핵심 쟁점을 파악하지 못하니 쓸데없는 이야기만 늘어놓게 되고 근거 없는 주장을 펼치다 보니 목소리만 커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 디베이트 교육이 시급한 대상은 마땅히 정치인입니다.
최근, 특별한 행보가 눈에 띄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정책디베이트를 실시하기로 한 것입니다. 첫 번째 주제는 < 금투세 시행이냐, 유예냐 >입니다.
금융투자소득세란 주식, 채권, 펀드 등에 투자해 연간 5000만 원 이상의 양도차익이 생기면 22~27.5%의 세금을 매기는 제도입니다. 금투세의 취지는 대다수의 개인 투자자를 보호하고 공정한 과세 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제도이지만 경제 상황과 주식시장의 불안정성, 개인 투자자들의 반발을 고려해 금투세의 즉각적인 시행이 과연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이 식지 않고 있습니다. 내년 시행될 예정이었지만,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가 시행 유예 또는 완화가 필요하다고 말해 당내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입법의 키를 쥔 민주당이기에 어떤 선택을 할지가 중요한 시점인데 이를 정책디베이트라는 링 위에 올려보겠다는 것입니다.
위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디베이트의 특성상, 시행팀과 유예팀은 각자의 생각과 의견을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각각의 입장을 변호하고 옹호하는 논리를 펼치는 것입니다.
민주당 정책 디베이트 준비 위원장을 맡은 민병덕 의원은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정책 디베이트의 목표는 청중과 시청자들에게 이 사안의 쟁점을 공유하고, 어떻게 결정하는 것이 좋을지 그 판단 자료를 제공하는 것으로 정책 디베이트에서 설득의 대상은 상대방 팀이 아니라, 청중과 시청자이며 시청자의 궁금증을 염두에 두면서 유예와 시행팀의 쟁점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우리 팀의 입장이 왜 옳은지 잘 부각하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투자자로서 금투세 시행 여부에 관심이 많은 국민에게는 찬반 주장과 근거를 명확히 전달해 핵심 쟁점이 무엇인지를 알려줄 수 있게 됩니다. 무조건 반대할 일만은 아니라는 '이해'를 끌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게 무엇인지 모르는 국민들에게는 경제정책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계기가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들만의 리그라고 여겨졌던 정치와 정책 결정이 우리 모두의 리그로 확장되는 것은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1회 정책 디베이트의 주제는 <행복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금융투자소득세 시행은 어떻게?>이며, 24일 10시 30분, 유튜브 '델리민주' 채널에서 생방송 될 예정입니다. 시청 전 기사 검색을 해보시면 쟁점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 전 지지하는 정당이 없습니다. 따라서 오늘 글 역시 더불어민주당을 옹호, 지지하는 것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디베이트'에만 관심을 가져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