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라크루 수요질문(2024/10/23)
좋은 사람과 싫은 사람의 기준이 있나요? 뭔가요?
세상살이가 힘든 건 사람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생이 살만한 이유도 사람 때문이지요. 에이, 무슨! 사는 데 경제적인 고난이 제일 크지. 돈만 많아 봐라. 뭐가 힘든가. 싶으신가요? 절대 아니라고는 못 하겠지만, 그게 또 절대적인 기준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고난을 누구와 어떻게 헤쳐 나가느냐, 행복을 누구와 함께 만끽하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제가 누군가에게 늘 좋은 사람일 수 없듯이, 제가 만나는 사람들 역시 그러합니다. 마냥 좋지도 마냥 싫지도 않습니다. 어느 때, 어느 공간, 어떤 상황에서는 꽤 괜찮아 보였던 사람도 갑자기 불편해지곤 합니다. 변덕스러운 제 성격 탓도 있지만 어떤 이의 좋고 나쁨을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기 때문 아닐까 합니다.
그럼에도 제가 사람을 나누는 기준은 있습니다. 만나기 전에 피하고 싶은가, 만나고 난 후에 생각이 많아지는가입니다.
만남 전
어떤 사람은 만나기 전부터 생각이 많아집니다. 여러 상황을 시뮬레이션해 보게 되지요. A라고 물어보면 뭐라고 답하지? 상대가 B라고 말하면 어떻게 반응하지? 나의 말에 C라는 반응을 보이면 이번에는 화를 내볼까? 그냥 가만히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 끝에 다다르면 어떻게든 만남을 회피하고 싶어집니다. 제 기준, '싫은 사람'입니다.
반면 어떤 사람을 만날 때는 아무 생각 없습니다. 가정해 볼 상황도 없습니다. 웃기면 웃고 슬프면 울고 아무 말 안 하고 싶으면 둘이 침묵하고 있어도 불편하지 않습니다. 만남이 크게 흥분할 일은 아니지만 만남 자체가 스트레스로 다가오지도 않습니다. 제 기준, '좋은 사람'입니다.
만남 후
어떤 사람은 헤어진 후에도 생각이 많아집니다. 나에게 왜 계속 그렇게 말했지? 내가 그렇게 만만한가? 날 싫어하나? 싫어하면 그렇게 해도 되는 걸까? 내가 그렇게 이상한 사람일까? 나한테 무슨 문제가 있나? 상대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저라는 사람이 한없이 작아지고 나빠집니다. 제 기준, '싫은 사람'입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헤어진 후에도 다음을 기약합니다. 언제 어느 곳에서 또 즐거운 추억을 만들까를 고민합니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사람'에 대한 고민은 사라지고 만남 자체에 집중하게 됩니다. 제 기준, '좋은 사람'입니다.
어쩌면 기준은 아무 의미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과거의 좋은 사람이 오늘의 나쁜 사람이 되기도 하고, 오늘의 나쁜 사람이 언젠가 좋은 사람이 되기도 하니까요. 순전히 제 심보에 따라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의 리스트가 바뀝니다. 이런 제 마음의 널뛰기를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고 제가 하는 모든 넋두리, 험담을 들어주는 남편은, 좋은 사람일까요?
휴대폰을 내려놓고 제 얼굴을 보면서 진지하게 들어줍니다.
좋은 사람입니다.
왜 그랬어, 그 사람 싫구나, 등의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합니다.
싫은 사람입니다.
잘 나가는 듯싶다가 남편에게 불똥을 던진 저는, 싫은 사람입니다.
미안한 마음에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어 두었으니, 좋은 사람입니다.
상대의 말 한마디에 흔들리다가 생각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좋은 사람과 싫은 사람의 기준을 정확히 제시하지 않는 글을 써놓은 제가 싫습니다.
끊임없이 나와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좋고 싫음에 대해서도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제가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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