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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Dec 10. 2019

D-100 프로젝트 < D-19 >

< 송상병 >


"송상병! 그것밖에 못하나?"

"송상병! 똑바로 허자~~~"


갑자기 웬 송상병이냐고?

'송상병'은, 자칭인 듯 자칭 아닌 자칭 같은 별명이다.

남편이 내게 하는 말들 중 상당 부분이 앞머리에 "송상병"이라는 말을 빼고 말한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던 순간, "내가 송상병이야? 당신은 이 병장이고?"라며 시작된 농담에서 기인한 별명이다.


"(송상병!) 호O가 왜 이리 늦지?"

"(송상병!) 고등학생이 이제 들어와야 하는 것 아냐?"

"(송상병!) 시험기간인데 저렇게 놀아도 돼?"

"(송상병!) 그 성적으로 괜찮겠어?"

"(송상병!) 다른 학원 알아봐야 하는 것 아냐?"

"(송상병!) OO이 방이 너무 더러운데?"


나에게 쏟아내는 이 말들을 들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군기가 들고 알아서 긴다.

늦게 들어오는 아이에게 전화를 걸어 소재를 파악하고 귀가시간을 파악해 보고를 한다.

"(이병장님!) 오는 중이래..."

그 외의 상황에 대해서도 나는 이유 없이 변명을 하고 있다.

"(이병장님!) 공부 많이 하고 잠깐 쉬는 거야."

"(이병장님!) 이 학원에서도 열심히 해주고 있어. 다른 학원이라고 별 수 있나?"

"(이병장님!) 내일 방청소 좀 해줘야겠네..."


정작 아이들에게는 한마디도 못하는 이병장님...

"아이구~~ 우리 아들 왔어~~~? 힘들지?"

"아이구~~ 우리 아들, 시험기간이라 힘들지?"

"아이구~~ 우리 애기~~~"


아이들과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나 아이들이 관심 가질만한 이야기만 나눈다.

어떤 때는 너무 얄밉고 비겁해 보이기까지 한다.

자신은 멋진 아빠, 친구 같은 아빠, 얘기 잘 통하는 아빠로 남고 싶다고 대놓고 말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어떤 때는 그래 줘서 고맙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빠가 어렵고 말이 안 통해서, 혹은 무서워서 멀리하고 대면대면한 부자간이 얼마나 많던가...

아빠와의 대화가 자연스럽고 즐거운 일이 되도록 했으니 감사한 일이다.


게다가, 아무리 미워도 용서할 수밖에 없고 나약하고 짠한 존재인 '엄마'. 그 엄마인 내가 모든 총대를 메고 "돌격 앞으로~~~"를 외치며 각종 잔소리며 핀잔, 꾸중을 전담하는 것도 그리 나쁜 선택지는 아니다. 모든 악녀스러운 행동을 해도 "밥 먹어~~~" 한마디면 노골노골 풀어지는 게 아이들이니... 

그러고 보니, 송상병은 취사병이었구만...


상명하복이나 얼차려를 하는 의미의 '이병장님'도 아니니, 견딜만하다. 

실제로 남편이 날 "송상병!"이라고 부른 적도 없긴 하다. 어디까지나 내 느낌적인 느낌...


많은 '엄마'이자 '아내'인 분들은 공감할 듯하다.

딱히 내가 잘못하진 않았지만, 아이에 관련된 일로는 남편 앞에서 죄인이 된 것 같은 기분...

남편이 아이를 직접 혼내거나 싫은 소리를 하면 그건 또 듣기 싫고 꼴보기 싫은 것...

그래서 그냥 내가 앞에 나서서 쉴드 쳐줘야 될 것 같은...

세계평화를 지키는 것보다 더 의미 있고 값진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오늘도 군장을 메는...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이병장님이 한마디 하신다.

"(송상병!) 그런데 말이야... 글을 쓰는 컨셉이, 원래는 100일 후에 죽는다는 설정 아니었나? 왠지 방향을 잃은것 같아~~?"


우리 이병장님은 참... 예리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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