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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Dec 09. 2019

D-100 프로젝트 < D-20 >

< 집착, 강박 혹은 불안장애 그 어디쯤...>


김장김치를 넣을 자리를 마련하느라 냉장고 정리를 했다. 주기적으로 치웠다고 생각했는데 안 먹고 쟁여두었던, 버려야 할 음식이 차고 넘쳤다. 냉동실은 손도 못 댔지만 안 봐도 훤하다. 각종 육류가 넘쳐난다.

차돌박이, 삼겹살, 다진 소고기, 스테이크, 돈까스, 닭가슴살... 고기에 집착하는 타입.

그때그때 장봐다 먹여도 될 것을 이렇게 종류별로 구비해 놓아야 맘이 놓이니...

나 먹자고 채워 넣은 것도 아니요, 1,2주 안에 모두 소진될 양이기는 하다.

미대 준비하는 고등학생들은 물감이나 각종 미술 도구 등의 재료 구입에 끊임없이 재료비가 쓰인다면, 체대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재료는 '고기'라고 믿는 사람이다.

밤 10시가 넘어 집에 들어온 아이에게 "뭐 줄까?"라고 형식적으로, 최대한 무미건조하게 물어봐도 아이는 최대한 간절하게 "고기~~"라고 답하니 저리 채워놓지 않을 수 없다고 변명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시 집착증 내지는 강박증, 혹은 불안장애가 분명하다.


고기 이전에는 어떤 것에 집착했는지 기억을 더듬어보니...

아이들 어릴 때 유기농 식품과 달걀에 집착했고, 스팀청소에 대한 강박이 있었다.

어린아이들에게 농약이나 식품 첨가물이 함유된 음식을 먹여서는 안 된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었겠지... 유기농 채소에 '자연방사유정란'만 사다 먹였다. 무농약 내지 유기농은 그렇다 치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대목일테니...자연방사유정란에 대한 고집은 우리 '아들'들이 건강한 성인 남자로 자라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일반 무정란을 먹이면 정자수가 감소한다거나 불임되는 게 아닐까 하는 무식한 발상을 했다. 뚜렷한 근거는 없다. 그러고 보니, 요즘엔 GMO식품을 최대한 먹이지 않고자 하는 것과 맥이 닿아있긴 하네. 특히 카놀라유는 절! 대! 안 먹는다.

청결에 대한 집착도 있던 그때, 아이들이 잠들기만 하면 스팀 물걸레 청소기를 끌고 나와서 온 집안을 뽀드득하게 닦아놓아야 잠이 왔다. 아침에 일어나 맨질맨질 반짝반짝거리는 마루를 보는 것이 행복이었다니... 미친 게 맞는 것 같다.


그 이전엔...

지금의 남편에게 집착했다. 결혼 전 다이어리를 보면 내 머리에 꿀밤을 100번은 때리고 싶을 정도로 '오빠'얘기밖에 없다. 근 3년 반을 '오빠'때문에 울고 '오빠'때문에 웃은 이야기밖에 없던 다이어리를 보면서 우리 아들들이 그런 여자와 결혼 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발, 자기 삶을 사는 여자를 만나기를... 딸이 없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내 딸의 삶이 '어떤 놈' 하나로 인해 흔들리는 꼴을 보면 속상할 것 같다.


고등학생 시절엔...

제목도 기억 안 나는 드라마 한 편을 보고, 그 드라마의 주인공이 했던 행동을 따라 하기 시작한 것이 심각한 강박이 되었다. 형광등을 껐으면서도 불안해서 켰다가 다시 끄기를 수십 번. 서랍장이 다 닫혀있는데도 열었다 닫기를 또 수십 번... 이상한 강박증은 몇 달이나 지속됐었다. 수험생 스트레스였던 건지, 나도 모르는 심리적 불안이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이유를 알 수도 없고, 누구에게 털어놓기에도 창피하고,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도 모르던 강박. 어쨌든, 서서히 없어지긴 했다.


형광등이 켜져 있어도 잠만 잘 자고, 서랍이 열려있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는다. 남편에 대한 집착은 결혼 후에도 어느 정도 지속되다가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이젠 남편이 나의 집착을 갈구하다 못해 오히려 그가 나에게 집착하는 것 같기도...

아이들이 청소년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유기농, 친환경으로 먹이는 게 감당이 안 되는 양이라 포기했다. 배고파할 때 먹고 싶은 것으로 빠르게 배불리 먹이는 것을 지상 최대의 과제로 설정하고 수행했다. '자연방사유정란'도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간헐적으로 먹이는 수준...

청결은 손을 놓았다. 그렇게 쓸고 닦고 해 봐야 내 몸만 축나는 일이고 적당히 지저분해야 더 건강하다는 논리를 펴기 시작했다. 티없이 깔끔한 것도 아니고 지저분하다고도 볼 수는 없는 어중간한 상태, 사람 사는 집 같은 상태라고 위안하며 적당히 하고 산다.


자식에 대한 집착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는 한 어머니 얘기를 건네 들었다.

아이의 학업에 대한 집착으로 평소 아이를 심하게 잡았고 따라주지 않으니 분노조절과 우울증이 심각한 상태...

상황이 심각해서 남편, 아이와 분리할 것을 권고받았고 온 가족이 함께 치료받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아이가 조금만 더 열심히 해주면 과학고를 갈 수 있지 않겠느냐, 아이가 아빠랑 따로 나가면 지금 다니는 학원들은 어떻게 하냐... 의 고민을 놓지 못하고 있다고...


따라서... 고기에 대한 집착은, 귀엽다...


다들, 한두 가지씩 장착하고 있지 않을까?

근원을 알 수 없는 집착, 강박, 불안... 그 어디쯤에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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