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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Dec 11. 2019

D-100 프로젝트 < D-18 >

< 장사꾼의 똥 >


동네에 새로 오픈한 감자탕집을 지인들과 찾았다.

우리는 자리에 앉자마자 암행이라도 나온 본사 직원처럼 이것저것 지적질을 시작했다.

"의자가 너무 딱딱한데?"

"직원들은 친절하군..."

"김치가 너무 날김치다!"

"감자탕의 우거지가 너무 푹 익어서 흐물흐물하네..."

반찬가게 가서도 선뜻 아무것도 못 집고 나오는 까다로운 아줌마들이다...


오픈 둘째 날이라 모든 것이 새롭고 활기가 넘친다. 사장님은 밝았으며 목소리는 격양되어 있다.

나도 그랬었다. 장사라는 새로운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한 기대, 걱정, 열정, 희망 등이 혼재하던 시절이 있었다.

10년 전, 퇴사하는 남편들의 전형적인 루트대로 치킨집을 오픈했다.

브랜드를 결정하고 가게를 알아보러 다닐 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아니, 인테리어를 하면서 본사 교육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장사가 어떤 건지. 난 사장이니까 카운터에서 밝게 인사나 하고 계산이나 잘하면 되는 줄 알았다. 10살, 7살 아이를 키우는 삶에도 큰 변화나 어려움은 번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착각이었음을 알아차리는 데는 일주일? 아니 하루도 안 걸렸다.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1시에 마감하고 집에 귀가하면 새벽2시인 삶. 아직 엄마의 손길이 간절한 아이들이라서 하루에 3번씩 집과 가게를 오가던 삶. 3시에 잠들어도 7시에 일어나서 아이들 챙겨 학교 보내고 서둘러 가게로 출근하던 삶. 가정주부로만 살다가 급격히 변한 삶에 적응하지 못한 나는 오고 가는 차속에서 하게 울었다. 꼬박 3년간 장사를 하면서 '장사를 접는 그 순간'만을 고대하며 살았다. 그래서 더 힘들었는지 모르겠다.


카운터만 보는 치킨집 사장은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주방 직원을 못 구하거나 쉬는 날엔 남편과 내가 번갈아가며 닭을 튀기고 골뱅이를 무쳐야 했다. 오른쪽 팔뚝에 기름 튄 자국들은 훈장처럼 쌓여갔다. 마감을 할 때면 온몸에 밀가루가 튀어있고 얼굴엔 기름이 줄줄 흘렀다. 더운 여름날이면 아무리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도 주방은 한증막이었다. 장사가 잘되는 날은 몸이 힘들었고 손님이 없는 날은 마음이 힘들었다.


남편과도 치열하게 싸웠다.

둘 다 몸도 마음도 지치다 보니 상대를 챙겨줄 형편이 못됐다. 각자가 더 힘들다는 생각이 컸다. 자영업자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외로움이다. 조직생활에서 오는 즐거움이나 안도감이 있기 마련인데 자영업은 혼자 하는 놀이다. 함께 일을 기획하고 으쌰 으쌰 할 사람도 없고 책임을 나눌 사람도 없다. 온전히 혼자만의 고민으로 시작해서 혼자만의 자축 혹은 자책으로 끝나는 놀이다. 직장생활을 하던 남편에게 자영업은 힘든 길이었다. 아내는 직장동료로 여겨지지 않았을 테고... 그런 힘든 남편을 보는 것도 힘든 부분이었다.


손님을 대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배달을 하지 않는 카페형 치킨집이었고 테이블이 15개 정도 있었다. 치킨의 맛, 가게의 분위기, 직원의 친절함 등 모든 것에 신경을 써야 했다. 치킨은, 우리 가게가 제일 맛있었다고 자부한다. 아직도 생각난다. 새벽 2시마다 남편과 포장해 와서 먹었던 크리스피... 가게 분위기야 프랜차이즈이니 기본 이상은 했다. 남편의 손님 응대를 보고 직원들 역시 친절했다. 단골손님도 꽤 있었고 정을 나눌 만큼 각별해진 분들도 기억난다. 그럼에도 때때로 힘들게 하는 손님들은 있기 마련이었다. 먹튀 손님, 불륜 손님, 식중독 손님, 만취 손님, 막말 무례 손님 등등... 누군가에게 한없이 납작 엎드려 비위와 기호를 맞춰드리는 일을 난 하지 못했다. 그것 역시 힘든 부분...


가장 문제가 되던 것은 경제적 부분이었다.

분명 손님도 많고 잘되는 집이었지만 남는 게 없었다.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진다는 게 딱 맞는 표현. 살인적인 월세가 한몫했다. 신도시 대로변 코너 상가의 550만 원 월세. 왜 모두가 건물주를 최대 목표로 삼는지 절감한 시절이다. 3년 만에 큰 손해도 큰 이문도 없이 가게를 넘겼다.


아쉬움보다는 후련함이 훨씬 컸다.

다시는 남편과 장사를 하지 않을 것임을, 장사는 아무나 무턱대고 하는 것이 아님을, 인생에 크고 값진 경험 했음을 절절하게 배운 3년.

장사꾼의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속담이 있다. 인생의 쓰디쓴 경험을 압축해서 하는 사람이라 똥도 쓸 것이다.


맘에 없는 소리도 원래 맘에 있던 것처럼 해야 하고,

맘에 있는 말도 그런 맘조차 먹은 적 없는 것처럼 하지 말아야 하는 일.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이제 다시 장사를 한다면 굉장히 잘할 것 같다는 거다.

나이가 더 들어서인 건지, 아이들이 다 커서 내 손이 필요하다는 부담에서 해방된 탓인지는 모르겠다.

아니면 건망증이 심해진 것인지, 철이 덜 든 탓인지...

다양한 손님들과의 만남을 즐기면서 신바람 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가끔 든다.

그런 장사꾼의 똥은 먹을만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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