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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Dec 12. 2019

D-100 프로젝트 < D-17 >

< 세상에 이런 일이 >


소문난 똥손이었다.

우리집에서 살아남은 것은 인간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물을 너무 많이 주어서 죽었던 산세베리아.

한겨울에 베란다에서 호스로 물을 신나게 뿌려주어 얼어 죽은 해피트리.

가지를 너무 쳐서 죽어버린 벤자민.

웬만하면 번식도 잘하고 잘 산다는 구피는 물이 말라죽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죽은 것이 아니라 내가 '죽였다'.

그 이후로 오랫동안 '키운다'라는 책임이 따르는 것들을 집에 들이지 않았다. 베란다 한편에 잔뜩 쌓여있던 화분들도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평생 식물은, 키우지 않 방법으로 죽이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던 1년 전, 교습소 오픈과 함께 선물 받은 화분들이 여럿 되면서 부담감과 책임감을 다시 리셋했다.

작년 겨울이 시작되면서 교습소에 있는 화분들을 집으로 옮겼다. 해도 들지 않는 곳, 사람이 늘 있지 않아 온기가 없는 교습소에서 쓸쓸히 죽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집으로 3개의 화분을 옮기고 나니 이제는 욕심이란 게 생기기 시작했다. 보란 듯이 잘 키워보고 싶었고 친구들도 많이 만들어주고 싶었다. 봄이 되니 꽃도 키우고 싶었고 덩굴식물이 하나쯤은 있어도 좋겠다는 계획도 세워보았다. 분갈이를 한다고 아파트 장 화분 아저씨를 찾아갔다가는 선인장과 몬스테라도 함께 입양해 왔었다. 식물에 일가견이 있는 친구가 '율마'라는 식물을 산다기에 따라갔다가 키우기 어렵다는 걸 덜컥 7천 원에 또 사 오고...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화분 욕심을 부렸던 한 해였다.

올 한해 울집 식구가 된 초록이들...

그러던 오늘...

무럭무럭 왕성한 성장을 하는 우리 식물이들 중 가장 잘 자란 몬스테라를 친한 친구 두 명에게 꺾꽂이해주었다. 한 줄기에서 3,4 갈래로 마구마구 자란 몬스테라의 줄기를 잘 잘라내 물에다 꽂아두면 잔뿌리가 생겨난다고 했다. 잔뿌리가 잘 자란 줄기를 흙에다 옮겨심으면 또 하나의 화분이 완성된다고... 그 신기한 전 과정은 식물에 일가견 있는 그 친구가 집도해주었다. 새 생명이 태어날 때 탯줄을 자르듯...

꺾꽂이를 해준 두 친구가 식탁 위에 물꽂이 해둔 인증샷을 보내왔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날이던가...

늘 죽이기만 하던 똥손이 금손으로 거듭난 날...

잘 키워서 분양까지 해주다니...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다...


아무런 노력 없이 이루어진 일은 아닐지니...

과습과 물마름으로 죽이고 싶지 않아서 휴대폰에 주기별로 알람을 해 물을 주었다.

한쪽면만 해를 받지 않도록 수시로 방향을 돌려주었다.

바람을 많이 받도록 창가로 옮겼다가, 날이 추워지면서 따뜻한 집안으로 옮기기도 하고...

썩거나 시든 잎들은 수시로 잘라주었으며, 마른 잎들은 가위로 끝을 잘라주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1년 내내 정성을 들인 것이다.

정성을 들인 만큼 잘 자라준 식물들에게서 작은 성취와 만족, 행복, 위안을 얻었다.

올 한 해, 내 삶의 어느 한 부분도 정성을 기울이지 않은 부분이 없다.

그러니 모두 만족과 행복으로, 큰 성취로 다가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소망해본다.

식물을 들일 때처럼, 욕심내어 본다.

모든 일이 한결같이 잘 풀린 한 해가 되는, '세상에 이런 일이' 한 편을 찍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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