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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Dec 13. 2019

D-100 프로젝트 < D-16 >

< 모순 덩어리 >


"선생님~ 오늘 저희 애슐리 가나요?"

중학교 2학년, 남학생 4명 팀 수업 톡방에서 한 녀석이 질문을 했다. 

"엥? 왠 애슐리?"

"OO이가 옆에서 물어봐 달래서요..."

갑자기 팀 내 다른 녀석을 팔아 위기를 모면하는 녀석.


오호라... 요 녀석들이 기말고사도 끝났겠다, 수업을 어떻게든 파장 분위기로 만들어보려고 작당모의를 하나 보구나? 중간고사 끝났을 때 1인 1 치킨을 시켜주었더니 이제 애슐리를 사놓으라는 간 큰 녀석들...

하긴, 어른이나 애나 마찬가지로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 법이다. 필시, '살살 찔러보면 사줄 것 같은 만만한 쌤'이라는 틈을 보았을 것이다. 틈새를 발견해 공략하는 아이들을 탓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수업을 째고 밥이나 먹으러 갈 수도 없으니... 나의 고민이 시작된다...


고민의 핵심은...

어떻게 하면 신용을 잃지도, 호감도 잃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도 만족을 주고 수긍을 하도록 만들 것인가... 아닐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은 마음.

친구 같고 격의 없으면서도 카리스마 있게 휘어잡는 선생님.

아이들에게 끌려다니지는 않지만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따라주는 선생님.


매사가 늘 이런 식이다.

대학을 반드시 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원서를 낸 아들이 꼭 합격하기를 바란다.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고 싶지는 않지만 돈은 많았으면 좋겠다.

남편이 귀찮게 구는 건 싫지만 살가운 스킨십은 해주었으면 한다.

집안일 하기는 싫어하지만 살림꾼이라는 소리는 듣고 싶다.

살을 빼 날씬해지고 싶지만 맛있는 음식 먹는 낙을 잃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충돌하는 욕심 사이에서 갈등하고 갈팡질팡 하는 사이...

난 소신도 줏대도 없는 사람이 되어갔나 보다.

욕심만 넘쳐나고 결론은 없는...


창과 방패를 함께 팔던 초나라의 상인에게 한 구경꾼이 던진 날카로운 질문을 나에게 던진다.

대답은...

'선택과 집중'

수업을 하면서 밥을 먹을 수는 없다.

애초에 밥을 사줘야 할 이유도 없다.

밥타령하다가 안 먹히니 반항하는 십 대 모드로 돌변한 아이들을 상대로...

수업에... 집중했다. 카리스마 있게. 웃음기 싹 빼고...

카리스마를 선택하니 싸늘한 2시간이 돌아왔다. 

평소보다 10배는 됨직한 피로가 쌓였다.


창이든 방패든 하나만 팔아야 한다는 게,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살면서 무엇을 선택해도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라면 모순덩어리인 채로 살아가고 싶어 졌다...

두 가지 마음 모두 내 마음이니,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면서, 우왕좌왕하면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면서,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는 것 같아하면서... 앞뒤가 안맞고 줏대 없다고 손가락질받을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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