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글이요 글은 산이다

< 라라크루 하나만 투어 #2 >

by 늘봄유정

"그런데, 산에는 왜 가는 거야?"


남편의 물음에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산이 거기에 있으니 오른다는 답은,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할만한 답은 아니었다. 그러게? 나는 왜 선뜻 함께 간다고 한 거지?


정확히 말하자면 등산이 아니라 '하나만 투어'였다. 지난 7월 '뮤지엄 산'에 이어 라라크루의 두 번째 하나만 투어 장소가 산이었던 것이다. 마침 장소가 산이니 오를 수밖에 없었다고 하면 납득이 됐으려나?


아마 남편의 질문은 글 쓰는 사람들이 모여서 글은 안 쓰고 왜 산에 가냐는 물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게? 산에 올라가서 자연을 벗 삼아 백일장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산에 함께 간 거지?


아무튼, 어지럼증이 도져 종일 누워있어야 할 것만 같은 컨디션인데도 짐을 챙겨 길을 나섰다. 청계산을 향해 신나게 오고 있을 작가님들에게 당일 아침 결석 통보를 해서 김 빠지게 하고 싶지가 않았다. 버스와 지하철에서 식은땀이 났지만 되돌아가지도 않았다. 정 힘들면 등산로 초입 카페에서 쉬자는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청계산 입구에 집결한 우리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원터골 입구부터 옥녀봉까지 다녀오는 가장 쉽고 빠른 코스를 택했지만, 평소 산을 자주 다닌다는 몇 분을 제외하면 만만한 산행은 아니었다. 워낙 등산객이 많아서 등 떠밀리듯 오르기는 했지만, 온몸은 땀에 절었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비가 온 후라 질퍽해진 산길은 미끄러웠고 소방대원이 말벌집을 제거하는 구간을 조심스럽게 통과하기도 했다. 다행히 어지럼증은 나아졌지만 평상에 누워 한숨 자고 싶을 만큼 피로가 몰려왔다. 누군가는 거의 다 왔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아직 3분의 1밖에 안 왔다고 했다. 그렇게 한 시간 반 만에 옥녀봉에 도착했다.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산이란 무엇일까. 함께 글을 쓰는 사람들이 함께 산을 오른다는 건 어떤 맥락일까.


함께 산을 오른다는 것은 함께 글을 쓴다는 것과 동의어였다.

선발대와 후발대의 차이가 점점 벌어지면 선발대는 적절한 장소에서 후발대를 기다렸다. 혼자 쓰기 힘든 이들을 위해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두고 그들을 기다려주는 호스트, 부호스트 작가님을 닮았다. 기다려주는 선발대를 만나면 후발대는 고마운 마음에 다시 힘을 냈다. 글쓰기가 힘들어졌을 때 함께 쓰는 이들과 보폭을 맞춰보려고 마음을 다잡는 우리와 닮았다.


허리 통증이 심해진 한 작가님은 3분의 1 지점쯤에서 멈췄다. 책도 읽고 글도 쓰며 우리를 기다리기로 했다. 남들과 속도를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만의 속도를 찾는 것이 중요한 글쓰기와 닮았다.


내려오는 길에 무릎 통증이 심해 절뚝이는 작가님을 위해 자신의 무릎보호대를 풀어 직접 묶어주는 작가님을 보았다. 글태기를 겪거나 오랜 공백기 후 다시 돌아온 작가님들을 격하게 환영하고 응원하는 우리와 닮았다.


여덟 명의 작가 한 명 한 명의 이미지를 생각하며 고른 책 여덟 권을 대구에서부터 지고 올라온 작가님.

여덟 개의 쿠기를 준비해 한 명씩 골고루 나눠준 작가님.

마음을 나누는 것에 인색하지 않은 이들에게서 글이 사람을 저렇게 만드는구나, 생각했다.


산을 오르고, 배불리 밥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글 쓰는 사람들이 글 쓰는 것과는 아무 관련 없어 보이는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 모든 시간이 글이었고 글 속에서 하루를 보낸 우리였다.


"그런데, 산에는 왜 갔다 온 거야?"

남편이 또 물었다.

난 그저 씩 웃었다.



#라라크루

#라라크루 하나만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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