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라크루 혜윰 작가의 <주말은 십(詩) 니다> 2025.11.22
<아름다운 관계> 박남준
바위 위에 소나무가 저렇게 싱싱하다니
사람들은 모르지 처음엔 이끼들도 살 수 없었어
아무것도 키울 수 없던 불모의 바위였지
작은 풀씨들이 날아와 싹을 틔웠지만
이내 말라버리고 말았어
돌도 늙어야 품 안이 너른 법
오랜 날이 흘러서야 알게 되었지
그래 아름다운 일이란 때로 늙어갈 수 있기 때문이야
흐르고 흘렀던가
바람에 솔 씨 하나 날아와 안겼지
이끼들과 마른풀들의 틈으로
그 작은 것이 뿌리를 내리다니
비가 오면 바위는 조금이라도 더 빗물을 받으려
굳은 몸을 안타깝게 이리저리 틀었지
사랑이었지 가득 찬 마음으로 일어나는 사랑
그리하여 소나무는 자라나 푸른 그늘을 드리우고
바람을 타고 굽이치는 강물 소리 흐르게 하고
새들을 불러 모아 노랫소리 들려주고
뒤돌아본다
산다는 일이 그런 것이라면
삶의 어느 굽이에 나, 풀꽃 한 포기를 위해
몸의 한편 내어준 적 있었는가 피어본 적 있었는가
글을 쓴다는 것은, 오래오래 꾸준히 쓴다는 것은, 쉽지 않다.
아무리 쓰는 일이 좋다고 해도 그렇다. 소재는 고갈되고 의욕은 떨어진다. 쓰지 않는 날이 하루 이틀 쌓이다 보면, 써야만 하는 이유와 쓰지 않아서 생긴 죄책감보다, 쓰지 못한 변명과 쓸 수 없었다는 떳떳함이 커지는 날이 온다. 급기야 '굳이 써야 하나'라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이미 글에서는 상당히 멀어진 후일 것이다.
2019년 9월부터 글을 쓴 이후로 일주일 이상을 멈춘 적이 없다. 글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달라서가 아니었다. 누구보다도 글을 일사천리로 잘 써서가 아니었다. 시스템을 잘 활용했기 때문이다. 쓸 수밖에 없는 환경을 잘 찾아냈던 과거의 나를 칭찬하는 대목이다.
처음 글을 썼던 200일 동안은 카카오프로젝트 100에서 깔아줬던 판을 이용했다. 글을 제대로 써본 적도 없으면서 <100일 동안 내 책 쓰기> 프로젝트에 지원했다. 보증금 10만 원을 넣어두고 글을 쓰지 못한 날마다 1,000원씩을 기부하는 방식이었는데, 얄짤없이 10만 원 전액을 환급받았다. 두 번째 프로젝트까지 성공했지만 글쓰기가 느슨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2021년부터 2023년 초까지 <보글보글>이라는 모임에 참여해 동화, 시 등 다양한 방식으로 글쓰기를 이어갔다. 2023년 하반기부터는 라라크루 6기에 참여해 2025년 12월 현재 13기에 이르기까지 글 쓰는 삶을 이어 가고 있다.
글쓰기에 있어서 '글쓰기가 지속가능한 환경, 글쓰기의 재미를 놓치지 않는 장치'를 두는 것은 중요하다. 글쓰기가 내 삶의 의미와 재미를 발견하게 해 주고 나를 더 나은 인간이 되도록 사유하게 한다는 효용도 글을 쓰게 하는 장치다. 하지만 글을 계속 쓰는 데 제일 중요한 것은, 글쓰기를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글이 나를 구원해서가 아니다. 글이 내게 뭘 해줘서가 아니다. 글쓰기라는 행위가 마냥 좋은 것. 작가라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 내 이름으로 출간된 책이 있는 것보다, 쓰고자 하는 마음을 간직한 사람이라는 것. 그게 참 좋다.
지난 토요일에 만난 사람들은 그런 이들이었다. 글을 통해 엄청난 무엇을 이루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저 글쓰기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 바쁜 연말, 궂은 날씨를 무릅쓰고 모여 서로의 글과 글 쓰는 삶에 관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고기를 구우면서, 술잔을 기울이면서, 노래를 부르면서도 내내 글과 연결시키는 사람들.
인생에 고민이라고는 또 어떤 새로운 기획으로 글을 쓸지밖에 없어 보이지만 우리들이라고 왜 삶의 고난이 없겠는가. 글밖에 모른다고 어떻게 삶의 무거움을 외면하겠는가. 속으로 썩고 곪아가는 수십수백 가지의 번민을 껴안고 함께 울 수 있는 대상이 글이라는 것을 알 뿐이다. 글을 쓰고 나면 또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 뿐이다.
그게 내가 아는 사랑이다. 서로를 살게 하는 것.
#라라크루13기합평회
#라라크루2025년송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