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라크루 화요일엔 샛길독서 : 어린 왕자 7
( 라라크루에서는 화요일마다 윤병임 작가님이 독서의 샛길을 안내합니다. 함께 읽고 생각하여 글로 남기는 작업입니다.)
사람들은 급행열차에 숨어들지만 자신들이 무얼 찾는지도 모르고 있어요. 그래서 불안해하며 맴도는 거예요.
Men set out on their way in express trains, but they do not know what they are looking for. Then they rush about, and get excited, and turn around and around. (어린 왕자 25장)
2026년 1월 1일 밤, 라라크루 14기 OT를 하던 도중 화들짝 놀랐다. 돌아가면서 새해 계획을 말하는데, 나는 아직 어떤 새해 계획도 세우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이었다. 매년 12월 31일이면 루틴처럼 행하던 의식을 하지 않은 것이 말이다. 매년 마지막 날 밤이면 그해의 탁상 달력과 다이어리, 다음 해 달력과 다이어리를 준비했다. 올해의 다이어리를 뒤적이며 새해의 다짐대로 살았는지, 어떤 것을 지키지 못했는지를 확인했다. 새 다이어리를 펼쳐 맨 앞장에 새해의 다짐과 대여섯 가지 세부 계획을 적었다. 올해 달력과 새해 달력을 나란히 펼쳐놓은 뒤 1월부터 한 장씩 넘기며 가족, 친척, 지인들의 생일과 양가의 기일을 꼼꼼히 기록했다. 그 일을 마무리해야 새해를 맞이할 자격을 갖춘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작년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올해는 새해를 맞이한다는 감흥뿐 아니라 한 해가 저문다는 아쉬움도 없었다. 그저 숱한 날 중의 하나로 흘려보냈다.
자신이 있는 곳에서 만족할 줄도 모르고, 그렇다고 자신이 찾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급행열차에 서둘러 올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기만 하는, 어린 왕자 속 승객과 같은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일까?
"오늘이 마지막 날이구나?"라는 내 말에 "그저 1년 중 하루인 거지 뭐."라며 무심하게 답하던 남편 때문이었을까?
과거 어느 시상식에서 가수 김창완이 했다는 새해인사 영상을 봤기 때문일까?
"새해에 특별한 기대를 걸지 않겠습니다. 새해를 마치 처음 태양이 뜨는 것처럼 맞지 않겠습니다. 새해에 갑자기 내가 착한 사람이 된다거나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는 망상도 접겠습니다. 새해에는 돈을 많이 번다던가 건강이 넘치길 바라는 터무니없는 꿈을 꾸지 않겠습니다. 다만, 새해에는 잘 보고 듣고 말하겠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나의 2025년 12월 31일은 고요했고 2026년 1월 1일은 평범했다. 바쁜 여러 날 중의 하루였을 수도 있고 세월의 감각을 잊을 만큼 무료한 날 중의 하루였을 수도 있다.
아침에 일어나 전날 잠들기 전 적어두었던 할 일 목록을 확인하고, 완료할 때마다 하나씩 목록에 체크 표시를 하며, 잠들기 전 내일의 할 일 목록을 적는 그런 하루.
한껏 여유를 부리며 뒹굴뒹굴하다가 "내가 이럴 때가 아닌데..." 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 꼼지락거리는 하루.
희망과 기대의 옷을 입고 의욕이 넘치는 하루.
절망과 불안의 옷을 입고 체념하는 하루.
1월 1일은 그 모든 날이었다.
새해에는, 새해에도, 이전과 같은 모든 하루로 채우는 것이 새해 계획이다. 어떤 날은 어린 왕자 속 장사꾼이 파는 알약을 먹은 것처럼 매주 53분의 여유 시간을 만들기도 할 것이며, 어떤 날은 급행열차에 오른 듯 일분일초를 아껴가며 살 것이다. 어떤 날은 우울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기도 할 것이며, 어떤 날은 한껏 격양된 채로 살 것이다.
2026년도 잘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