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7)
지구를 여행하는 어린 왕자는 이상한 어른들을 많이 만난다. 너무 바빠서 여기가 어딘지 알아볼 시간이 없다는 지질학자, 시간을 53분이나 절약해 주는 갈증해소제를 만들어 팔고 있지만 절약된 시간에 무엇을 할지 모르는 사람들.
요즘 세상도 그렇다. AI, 에듀테크, 첨단산업들이 인간에게 엄청난 편리함을 주지만 잉여시간을 얼마나 값지게 쓰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빠르게 급하게 최신식 기계와 설비로 인간은 편리해졌지만 그만큼 큰 공허함과 상실된 만족감에 불안과 위기를 겪고 있다.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으며 위협하지만 또 다른 곳에서는 현란한 영상과 게임에 빠져 첨단기술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즐긴다. 개인 맞춤형 서비스, 취향존중이 대세인 시대. 각자도생, 개인주의가 현대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핵심용어처럼 느껴진다.
기술이 우리의 일은 모두 대신해주고 나면 우린 남은 시간들을 어떻게 쓰게 될까. 결국 유희하는 인간만 살아남게 되지 않을까. 쉴 줄 알고 즐길 줄 아는 능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어린 왕자는 목마름을 가라앉혀주는 알약을 파는 장수와 대화를 한다.
어린 왕자: 아저씨는 왜 이런 것을 팔아요?
장사꾼: 시간을 크게 절약할 수 있으니까. 전문가가 계산을 했어. 매주 오십삼 분이나 절약된대
어린 왕자: 그러면 그 오십삼 분으로 뭘 하는데요?
장사꾼: 그 시간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지.
어린 왕자: 내게 오십삼 분이 있다면 천천히 샘으로 걸어갈 텐데...
(어린 왕자, 23장)
내게 53분이 주어진다면
시원한 강가를 걸을 것이고 좋아하는 노래를 부를 것이다. 보고 싶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밀린 이야기를 하거나 배고픈 아이들을 위해 저녁을 준비할 수도 있겠다. 아니면 엊그제 생각난 글감을 정리해 휘리릭 글을 쓸 수도 있다. 밀린 빨래를 돌리고 음식물 쓰레기를 치우거나 설거지를 할 수도 있고. 피곤한 오후라면 그저 잠시 누워 쉴 수도 있을 것이다. 빨간색 알림이 뜬 밀린 카톡에 답하면서.
53분일지라도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많다. 길고 긴 리스트를 끝없이 작성할 만큼. 무언가 새로운 일을 생각해 내고 즐거운 구상 하면서 좋은 사람들과 같이 할 생각에 안절부절 가슴이 쿵쾅쿵쾅 뛸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새로운 경험을 할 궁리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보를 찾아 인터넷 서치를 할 수도 있겠지. 해야 할 임무에 내가 원하는 것이 밀리지 않도록 단단히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 그것이 내 행복을 지키는 비법이다. 호시탐탐 뒷전으로 밀린 내 버킷리스트를 챙기는 것, 그것만이 살 길이다.
고속열차를 탄다면
친구들과 새로운 세상을 구경할 것이다. 열심히 수다를 떨면서. 피낭시에와 뜨거운 아메리카노의 맛을 음미하면서 기차여행을 즐기다 까무룩 잠들 수도 있겠다. 새로운 곳의 탐험,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 그것이 내 여행의 목적이다. 그리고 새로울 것, 움직일 것, 경험할 것. 그리고 생각하고 느끼고 배운 것을 나누고 쓰고 이야기할 것, 고속열차에서 나는 허둥대지 않을 것이다. 어디서 내릴지 어디로 갈지 무엇을 할지 나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친구야.
네 소중한 53분을 잃지 않으려면
네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언제든 잘 알고 있어야 해.
생각날 때마다
끝도 없이 긴 리스트를 작성해도 좋아.
그래야 주저 없이 시작할 수 있으니까.
고속열차라도 타면 말이야.
네가 원하는 곳에 더 빨리 도착해서
더 많은 곳을 볼 수 있잖아.
생각만해도 가슴이 뛰는 일이야~
#샛길독서
#라라크루1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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