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라크루 화요일엔 샛길독서 : 어린 왕자 8
( 라라크루에서는 화요일마다 윤병임 작가님이 독서의 샛길을 안내합니다. 함께 읽고 생각하여 글로 남기는 작업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별을 갖고 있어. 하지만 사람에 따라 별은 서로 다른 존재야. ...
당신은 다른 누구도 가지지 못한 별들을 가지게 될 거야.
All men have the stars, but they are not same things for different people. ...but all these stars are silent. You alone-will have the star as no one else has them.
(어린 왕자, 26장)
2026년의 첫 강의였지만, 학기로 따지자면 2025학년도의 마지막 수업을 마쳤다.
중학교 2학년, 종업식을 며칠 앞둔 학년말, 토론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모인 학급이 아니라 일반 학급 중 하나.
만만치 않은 조건이었다. 걷잡을 수 없는 속도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을 가진 무한동력 에너지가 교실을 가득 채우고 있을 것만 같았다. 촘촘한 수업 계획과 준비만이 살길 같았다.
다행히 수업은 원활하게 진행됐다. 1교시부터 4교시까지, 입안문 작성과 토론 실습에 이르기까지, 나는 전달해야 할 것을 다 전달했고 학생들은 해야 할 일을 다 해냈다. 하지만 만족스러웠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지속적으로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 한 명이 있었는데 나의 반복적인 협조 요청과 주의, 지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자기 갈 길을 갔다. 질문에는 엉뚱한 대답을 하고 글쓰기는 노골적으로 거부했으며 다른 팀이 토론할 때 거슬릴 정도로 시끄럽게 수다를 떨었다. 이미 다른 친구들은 포기한 상태인듯했다.
나는 내 할 일을 하고 있긴 했지만 그 학급을 특별하게 생각하며 교감을 나누지 못했다. 시간이 짧았다고 말하는 건 변명이다. 다른 상황에서는 짧은 시간이어도 특별한 케미를 느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학생들도 각자 맡은 바 역할을 다 해내고 있었지만 강사나 수업 자체에 열정을 보인 건 아니었다. 끊임없이 맥을 끊는 그 학생과 나 사이에서 시간을 견뎌내고 있는 듯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별이 되지 못했다.
"사람들에 따라 별들은 서로 다른 존재야. 여행하는 사람에겐 별은 길잡이지. 또 어떤 사람들에겐 그저 조그만 빛일 뿐이고, 학자인 사람에게는 연구해야 할 대상이고. 내가 만난 사업가에겐 금이지. 하지만 그런 별들은 모두 침묵을 지키고 있어. 아저씬 어느 누구도 갖지 못한 별들을 가지게 될 거야."
어린왕자는 이별을 앞두고 조종사에게 말한다. 밤하늘 별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올 거라고, 별을 볼 때면 그곳 어딘가에서 웃고 있을 어린왕자를 생각하게 될 것이고, 따라서 모든 별이 웃고 있는 듯 보일 것이라고 말이다. 어린왕자와 조종사가 함께했던 시간, 그들이 나누었던 대화와 교감이 서로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같은 별을 두고도 조종사는 여행자나 학자, 사업가가 보는 것과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라캉은 사랑에 대해 “내가 갖고 있지 않은 것을 타자에게 주는 것”으로 정의했다. 내가 갖고 있는 결핍을 인정하고 상대와 공유하는 과정에서 특별한 관계와 의미가 만들어지는 것이 사랑이다. 서로의 결핍을 애써 채워주지 않아도 된다. 그저 결핍을 함께 끌어안고 살아가 주는 것만으로도 상대는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별이 되는 것이다.
나이 든다는 건, 내가 모두에게 빛나는 별이 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렸을 때는 모두가 나와 특별한 관계,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게 있었다. 그래서 내 감정에 충실하지 못했고 내 결핍을 제대로 드러낼 줄도 몰랐다. 상대의 감정이나 결핍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도 못했다. 내 입장에서 해석하거나 해결하고 채워주려 애썼던 것 같다. 상대가 원하는 방식,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관계도, 삶도 점점 힘들어졌다.
이제는 힘을 빼고 사는 법을 조금은 알 것 같다. 특히 모든 관계가 특별할 수 없다는 것, 내가 모두에게 빛나는 별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아쉽고 찜찜하긴 하지만 그것조차 삶의 일부라는 걸 받아들이고 있다.
수업에 관심 없던 그 학생에게, 기계적으로 수업에 참여했던 학생들에게 나는 그저, 디베이트를 가르치러 왔던 어떤 강사일 뿐이었다. 내가 주고자 했던 디베이트의 가치, 주제가 갖고 있는 의미, 그로 인해 생긴 나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 같은 건 없었을 것이다.
오늘은 서로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제자들과 만났다. 떡볶이를 나눠 먹으며 한참을 즐겁게 떠들었다. 그들은 오래전 내가 했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까지 기억하며 나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아낌없이 전했다. 나 역시 그들 덕분에 행복했던 이야기, 도움 받았던 일화를 이야기하며 나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어준 그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는 수많은 별 중 하나, 캄캄한 하늘에서도 찾기 힘든 작디작은 별들 중 하나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특별하게 반짝이는 별이 될 수 있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관계가 덜 힘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