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라크루 화요일엔 샛길독서 : 데미안 1
( 라라크루에서는 화요일마다 윤병임 작가님이 독서의 샛길을 안내합니다. 함께 읽고 생각하여 글로 남기는 작업입니다.)
여기 우리 집에 평화와 질서, 안식이 존재한다는 것, 의무와 거리낌 없는 양심, 용서와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은 경이로웠다. 그리고 그 모든 다른 것들, 소란하고 요란한 것, 음침하고 폭력적인 것이 존재하며 그래도 그런 것들로부터 한 걸음이면 어머니한테로 피신할 수 있다는 것도 경이로웠다.
그리고 가장 기이했던 것은, 그 경계가 서로 닿아있다는 사실이었다. 두 세계는 얼마나 가까이 함께 있었는지!
(데미안, 12쪽, 민음사)
* 여러분은 언제 익숙한 세계를 너머 새로운 세계를 경험해 보았나요?
* 그때의 두려움, 그로 인한 사건과 감정을 기억하나요?
* 그런 기억이 지금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고등학교 3년 동안 내내 반장을 했다. 뛰어난 리더십이나 압도적인 카리스마가 있어서가 아니라, 입학하자마자 담임선생님의 지목으로 임시 반장을 한 것이 관성에 의해 쭉 이어졌다는 게 더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적당히 상위권에 머무는 성적, 선생님과 학생들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첩자인 듯 친구인 듯 균형을 잘 맞추는 성격 같은 것이 선거 때 표심을 자극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나름 모범생이었다. 독서실에서 열심히 공부한 것보다 침 흘리며 잠들었던 기억이 더 많지만, 수업, 성적, 석차 같은 것에 꽤 신경을 썼다. 상위 몇 등까지만 들어갈 수 있는 교내 자율학습실에 들어가기 위해서 기를 쓰고 공부했던 기억이 있다. 모의고사가 끝나면 방송으로 전교 30등까지의 이름을 불러주던 야만적인 문화가 있었는데, 이름이 불리는 그 짜릿함을 맛보고 싶어 애태우던 기억도 있다.
선생님들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반장은 수업 시간마다 교탁 위에 물을 준비해 두라는, 그것도 뚜껑 있는 투명한 유리컵이어야 한다는 담임선생님의 요구사항을 성실히 이행했다. 성적이 좋았던 영어나, 관심 있게 집중해서 들었던 사회 과목 선생님들은 진로를 정할 때 각별한 관심을 써주기도 하셨다.
동시에 나는 틈틈이 일탈을 즐기는 학생이었다. 쉬는 시간이면 선생님 성대모사나 할리퀸 로맨스 소설 낭독으로 지친 학우들의 피로를 풀어주었다. 야간 자율학습이 시작되기 전 저녁 시간에는 체육복을 입고 담을 넘어 시내로 나가 친구들에게 주문받은 간식거리를 사 오기도 했다. 당시 김일성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수위아저씨의 감시망에 한 번도 걸린 적이 없다.
그중 최고의 일탈은 방송실 부스에 숨어 레몬 소주를 먹었던 일이다. 외부인을 방송실에 들인 것은 방송반이었던 친구에게도 일탈이었다. 점심시간에 그곳에서 몰래 소주 한 병을 먹고 나와 자율학습을 했던 토요일 오후, 그때의 나른하고 몽롱했던 햇살, 그 사이를 부유하던 먼지, 내 책상 위에 놓여있던 모의고사 시험지, 이런 것들이 모두 생각난다. 그걸 일탈의 단맛으로 기억하는지도 모르겠다.
이후에는 더 대담해졌다. 독서실 근처 공원 벤치에서 친구와 소주 한 병을 나눠 마신 날도 있고, 축제가 있던 날엔 만취해 집에 들어가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혀 꼬인 목소리로 자초지종을 설명한 날도 있다. 그날, 단단하게 둘둘 만 벽걸이 달력으로 아버지에게 허벅지를 얼마나 맞았는지 모른다. 울었던가? 아니면, 웃었던가?
정직과 원칙을 강조하며 늘 완고하던 아버지에게 저항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시절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부모님을 흔드는 것으로 내 세계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내 모든 불만과 불행의 근원이 부모님이라는 생각을 했고 그렇게 그들을 흔들면, 고등학생에게도 나름의 힘든 삶이 있으며 가까스로 버티고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땐, 그랬다.
"너랑 똑 닮은 딸 낳아서 키워봐라!"라는 어머니의 소망은 반이나 이루어졌다. 딸 대신 아들이라는 것만 빼면 큰아들은 나만큼이나 일탈의 단맛이 인생을 풍요롭게 해 준다고 믿는 녀석이었다. "나한테는 공부로 성공할 걸 기대하지 마!"라는 말을 당당하게 내뱉고는 친구들과 어울려 담배 피우고 술 마시고 당구장을 다니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늦은 귀가의 이유는 늘 친구 생일 파티나 인생 상담이었다. 대한민국에서, 고등학교 시절이 제일 재미있었다고 말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일 것이다.
나는 아들의 흡연과 음주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체했다. 나도 똑같이 떳떳하지 못하다는 자책 때문이 아니었다. 그게 우리 인생에 큰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아니 오히려 우리를 더 넓은 인간으로 만들어준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두 세계를 맛본 자는 경험치만 넓어지는 게 아니라 마음과 생각의 여유까지도 얻게 된다. 게다가 그도 같은 시절의 나처럼 학교에서의 평판이 나쁘지 않았던 것도 여유 있게 바라봐줄 수 있던 이유다. 공부에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지만, 다행히 기본적인 도리나 사람에 대한 예의까지 내려놓지는 않았던 것이다.
안전하고 평온한 내 세계를 뚫고 나가 다른 세계에 발을 담가보는 것, 즉 일탈은 자발적이다. <데미안>에서 싱클레어가 프란츠 크로머를 만나고 자신의 거짓말 탓에 협박당하는 일련의 사건은 싱클레어가 기존의 세계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자신의 욕망 때문이었다. 욕망에는 대가가 따른다. 협박과 갈취를 당하면서 허우적대는 싱클레어의 고난이 그것이다. 그것은 아버지뿐 아니라 자신을 위한 최초의 칼자국이 되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권위에 내가 새긴 최초의 칼자국이었고, 내 유년 시절을 이루는 기둥에 가한 최초의 칼질이었다. 그것은 모든 이가 각자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스스로 무너뜨려야 하는 기둥이었다. 누구도 감지하지 못한 이런 체험으로 우리들의 운명에 내면적이고 본질적인 선이 그어져 간다. 그런 칼질과 균열은 점점 늘어나고 아물다가 잊혀져 가지만, 우리 마음속 가장 비밀스러운 암실에서는 여전히 살아남아 계속 피를 흘린다." (p29, 더스토리 출판사 버전)
큰아들과 나에게도 여러 개의 칼자국이 남아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절멸의 칼날이 아니라 두 세계를 알기 위한 시도 덕분에 생긴 흉이다. 자신을 향했던 칼날, 그 칼끝에 베인 상처를 꿰매면서 내가 알던 세상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어쩌면 세상은 두 개로만 나눠진 게 아닐 수도 있다. 그 다층적이고 복잡한 틈에서 또 다른 세계를 마주하게 된다면 난 호기심에 또 발을 들이고 새로운 칼자국을 만들지도, 수없이 베이고 피 흘리면서도 아문 상처를 보며 흐뭇하게 웃을지도, 모를 일이다. 일종의 마조히즘적인 시도가 가능한 이유는 다른 한쪽 발로 이쪽 세계에 무게중심을 단단히 두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