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 남과 여, 어른과 어린이, 여당과 야당....
세상을 둘로 나누는 수많은 기준에 하나가 추가될 지경이다. 두쫀쿠를 먹어본 사람과 안 먹어본 사람.
유행이 시작된 지 꽤 된 것 같은데도 인기가 사그라들기는커녕 더 거세지는 것 같다.
두쫀쿠를 먹어봤냐는 나의 질문에 가족 중 그렇다고 답한 사람은 큰아들뿐이었다. 입시학원 강사로 일하는 아들은 학생들 덕분에 먹어봤다고 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내 또래의 남자들한테 두쫀쿠를 먹어봤느냐 안 먹어봤느냐의 기준은 여자친구가 있느냐 없느냐인 것 같아."라며 여자친구가 있어서 먹어봤다는 티를 은근슬쩍 흘렸다.
두쫀쿠 경험 여부의 기준이 내 또래 아줌마들 사이에도 존재한다면, 자식이 아들뿐이냐 딸도 있느냐가 아닐까 싶다. 무조건적인 건 아니지만 대체로 그런 경향이 있었다. 고로 나는, 못 먹어봤었다. 며칠 전까지는 말이다.
자동차가 정비소에 들어가는 바람에 교육자원봉사자들과의 스터디 모임에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날이었다. 오가는 길목에 헌혈의 집이 있어서 예약을 해두었다. 빈혈과 한약 복용 등으로 작년 한 해 헌혈을 못 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린 탓이었다. 헌혈의 집에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문이 닫히자 안내문 하나가 나타났다.
"두바이 쫀득 쿠키 추가 증정 프로모션"
내가 헌혈 예약을 한 바로 그날부터 두쫀쿠를 증정하는 프로모션이 진행 중이었다. 헌혈을 하면 영화 예매권이나 문화상품권, 기프트 카드 등을 증정품으로 받게 되는데, 이번에는 두쫀쿠가 그중 하나였던 것이다.
혈압과 철분 수치가 정상인지를 검사하는데, 어느 때보다도 간절히 '통과'를 바라게 됐다. 세상이 떠들썩할 때는 분명 큰 관심이 없었는데, 눈앞에서 준다고 하니 기왕이면 먹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헌혈이 끝나면 부작용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15분 동안 헌혈의 집에서 대기를 하게 된다. 그때 작은 목욕 바구니를 하나씩 나눠주는데 거기에는 이온음료와 과자, 헌혈 증서, 기념품, 타이머가 들어있다. 이번에는, 작지만 영롱한 두쫀쿠가 들어있었다.
홈런볼보다 약간 큰 앙증맞은 두쫀쿠를 챙겨 와 여자친구가 없는 작은아들과 나눠 먹었다. SNS에서 남들이 먹던 것처럼 입안을 가득 채우고 씹을 크기는 아니었지만, 풍미와 식감을 느끼기에는 충분했고 꽤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그날 저녁 뉴스엔 혈액 수급난을 해소한 대한적십자사의 두쫀쿠 증정 이벤트 소식이 올라왔다. 소식을 듣고 헌혈의 집 오픈런을 한 시민들 덕에 혈액 보유량이 일시적이나마 증가했다고 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나도 한몫한 셈이다.
두쫀쿠 열풍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저 작고 끈적이며 모래알 씹는 것 같은 식감의 디저트를 도대체 왜 두 시간씩 줄 서서, 비싼 돈 주고 사 먹는 거지?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에게 나도 먹어봤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나만 유행에 뒤처지고 소외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FOMO 증후군, Fear Of Missing Out) 먹는 것 아닌가?'
정작 두바이에는 없는 정체불명의 간식이란다. 창의성을 높이 쳐준다 해도 크기와 맛에 비해 가격이 너무 비싸다. 브랜드나 전문점이랄 게 특별히 없다 보니 야식집이든 치킨집이든 너나 할 것 없이 만들어 팔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두쫀쿠 코인에 올라탄다'라는 말까지 돌 정도다. 1개의 열량이 400~600kcal 수준으로 고열량 디저트에 해당해 건강에 안 좋다는 우려도 있고, 과거에 열광했던 허니버터칩, 대만카스텔라, 탕후루처럼 들불처럼 번졌다가 순식간에 꺼져버리는 한국인 특유의 냄비 근성이 또 도졌다는 자조적인 소리도 나온다.
두쫀쿠 열풍은 맛이나 건강처럼 자신의 욕구나 필요를 위해서가 아니라 기분과 경험을 소비하는 트렌드에 불과하며, 이에 편승하고 흥분하는 건 소비를 부추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동적인 소비자가 되는 것이라는 비난도 있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라는 라캉의 말처럼, 나의 필요와 욕망이 아니라 사회의 언어와 상징들이 만들어낸 욕망에 따라 나의 욕망도 만들어지고, 우리는 그게 타인의 욕망인지도 모른 채 맹목적으로 따르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말이다. 이렇게 불편함을 느끼고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조차 두쫀쿠를 생각하며 살고 있다.
두쫀쿠를 좋아하건 싫어하건, 먹어봤건 안 먹어봤건, 먹어보고 싶건 안 먹어보고 싶건, SNS와 뉴스, 사람들의 대화에 온통 '두쫀쿠, 두쫀쿠, 두쫀쿠'뿐이다. 심지어, 학생이 준 두쫀쿠를 SNS에 올렸다가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신고당한 선생님의 이야기까지. 이쯤 되면 '두쫀쿠의, 두쫀쿠에 의한, 두쫀쿠를 위한' 두쫀쿠 공화국이다.
난 이런 열풍이 좋다. 한국인 특유의 이 감성도 좋다. 지루하고 고단한 일상의 문제, 골치 아픈 뉴스를 단숨에 수렴해 주는 달디단 이벤트랄까. 거창하고 진지한 이야기가 가득해 무게 잡고 의미를 따져가며 힘겹게 살아야 하는 게 인간의 삶처럼 느껴지지만, 그리고 삶의 대부분이 고단하고 지루하지만, 사실 삶이란 '하찮고 무의미해 보이며 출처 불분명한 사건들이 바글바글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지 않은가.
<글쓰기의 최전선>에서 은유 작가는 "인간에게 유용한 것은 대체로 그것이 유용하다는 것 때문에 인간을 억압한다"라고 말했다. 하찮고 무용하지만 우리를 흥분하게 하는 것들이 있어, 삶이 문득 재미있어진다.
이 광풍이 사그라들면 다음은 뭐가 될지 벌써 궁금해진다. 우리는 어떤 하찮고 무용한 것에 또 열광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