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번째 시시콜콜

<학교 편>

by 늘봄유정

며칠 전, 작은아이의 온라인 개학을 앞두고 교과서를 받으러 학교에 갔다.

한 시간에 한 학급씩 정해진 시간에, 앞사람과 2m씩 간격을 두고 서서 교과서를 받아오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학생 입장에서는 간단한 그 일을 위해 선생님들이 하셨을 수고스러움이 느껴졌다.

담임선생님은 3월부터 얼굴도 본 적 없는 당신의 반 아이들과 단톡방을 만들어 이야기를 나누시고 공지사항을 안내하셨다. 온라인 개학을 준비하는 법, 읽으면 좋을 책 목록, 과목별 과제 등... 모든 아이마다 10분씩 할애해 전화로 인사도 나누셨고, 교과서를 건네주시면서 살갑게 첫인사도 나누어주셨다.

예전 같았다면, 몇 년 전 김영란법이 시행되기 전이었다면, 따뜻한 커피라도 한잔 전해드렸겠지만, 이제는 주는 이나 받는 이 모두에게 부담만 남아 피하고 싶은 일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스승의 날 꽃 한 송이도 부담스러워 재량휴업으로 학생들의 등교를 막는 학교도 있으니 말이다.


누군가는 서로 안 주고 안 받으니 편하다고 할 수도 있고,

월급 받고 자기 할 일 하는 건데 뭘 더 챙겨주냐고 할 수도 있겠다.

법의 취지대로 맘을 전하는 행동이 결국 어떤 불순한 의도를 숨겼을 수도 있다. 극성맞은 엄마와 그렇지 않은 엄마의 기준이라는 게 지극히 주관적이거니와 남에겐 엄격해도 자신에겐 관대한 경우도 많으니...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마따나 맘을 전할 여유의 있고 없음이 어떤 선생님에게는 차별의 잣대가 될 수도 있다.

생화는 안되지만 종이꽃은 된다거나, 스승의 날에 맞춰 촌지 관련 가정통신문을 내보내는 것 등이 선생님들에게도 유쾌한 일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모멸감을 느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마운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당연한 일을 아이들에게 가르칠 기회는 없어졌다. 가르치는 업이 전해주는 직업 이상의 감동을 선생님들이 느낄 기회가 적어진 듯도 하다. 인간 사이에 흐르는 '정'이라는 것 마저도 구시대의 유물로, 옛사람들의 '라떼는 말이야'로 전락해버린 듯...


몇 년 전부터 '스승의 날' 폐지와 관련된 목소리가 교사들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스승'이라는 특정 직종에 대한 날로 모두를 불편하게 하지 말고 교육의 모든 주체가 함께 교육의 본질을 생각해보는 날로 바꾸자는 의견이다. 그렇게 되면, 서로에게 감사하고 서로를 존중하게 될까?


그래서 오늘의 Topic은...

< 스승의 날을 교육의 날로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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