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겨울. 첫 가족 해외여행을 갔을 때 내 눈을 가장 사로잡은 것은 그랜드캐년의 웅장함도 수영장이 딸린 집도 아니었다. 고모네 집과 작은아버지 집 주방과 차고에 가득가득 쌓여있는 식료품이었다. 각종 통조림부터 시리얼, 파스타, 과자, 초콜릿, 여러 개의 냉장고 가득 채운 각종 주스와 드럼통 같은 우유통까지... 그렇게 먹거리가 가득 있는데도 코스트코에 가면 무언가를 잔뜩 쇼핑하시던 풍경...
최근 두 달간 집콕 생활을 하며 깜짝 놀랐다. 30년 전 미국 주방의 풍경이 우리 집에 고스란히 옮겨져 있었던 것이다. 평소에 주문 배달하던 온라인 장보기 쇼핑몰의 배달이 일주일 이상 밀리는 통에 장보기를 포기하게 되었다. 덕분에 구석구석 있는 걸 찾아서 먹게 되었는데, 무슨 화수분도 아니고 냉장고며 찬장이며 먹을 것이 끊임없이 나오는 게 아닌가. 우스개 소리로 "우리 집은 고립돼도 6개월은 버티겠어~"라고 했지만 그동안 무분별하고 무절제했던 소비 습관이 까발려진 것 같아 적잖이 창피했다. 끊이지 않고 제공했던 육류들도 종류별로 냉동실에 가득 있었고 각종 소스, 통조림, 과자, 라면들도 가득했다. 평소에 떨어지면 불안했던 식료품 삼총사인 김, 참치 통조림, 계란도 몇 주는 거뜬할 만큼 구비되어 있었다. 덕분에 3월 한 달 동안은 신선채소만 몇 번 동네 슈퍼에서 조금씩 구입한 것 외에는 장을 보지 않았다. 생활비가 상당 부분 절약된 것도 큰 소득이었다.
냉장고 파먹기와 식료품 바닥내기가 끝나갈 무렵, 냉장고 코드도 뺀 채 모든 걸 들어내고 싹싹 청소를 했다.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고 정리하고 나니 착착착 정리된 깔끔한 냉장고 내부가 드러났다. '이제 다시는 쟁여두는 삶을 살지 않으리라...'라는 과감한 다짐도 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또 한 달이 지났다. 여전히 쟁여두기를 피하기 위해 온라인 쇼핑몰 주문과 코스트코 방문을 자제하고 있지만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 불안감이 있다.
'이러다가 또 장을 못 보게 되는 상황이 되면 어쩌지?'
'만일을 위해 이 정도는 사놓아도 되지 않을까?'
그놈의 만일... 이 실제로 한번 터지고 나니 냉장고 내부와 비어 가는 찬장에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사놓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일종의 '유비무환 정신'같은 것 마저 생긴다. 여전히 먹을 것이 차고 넘치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오늘의 Topic은...
< 만일을 위해 식료품을 쟁여둘 필요가 있다. >
* 오늘도 잘 참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