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세 번째 시시콜콜

<가족 편>

by 늘봄유정

사교성이 좋은 큰아이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친구가 많았다.

공부 잘하는 친구, 운동 잘하는 친구, 소극적인 친구 가리지 않고 두루두루 친했다. 그중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스무 살이 된 지금까지도 친하게 지내는 아이들이 몇 있는데 그중 유독 신경 쓰이는 한 아이가 있다. 아들과 그 아이의 고등학교가 서로 다르니 소원해질 만도 하건만 10년 넘는 동네 친구이다 보니 격의 없이 오고 가다 만나기도 하고 일부러 짬 내서 만나기도 하는 사이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그저 놀기 좋아하고 까불까불 하던 그 아이는 중학교 졸업 즈음부터 사춘기 반항끼가 듬뿍 들더니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학교를 대표하는 문제아가 되었다. 학교폭력 가해자로 여러 번 회의가 소집되었고 급기야는 졸업을 며칠 앞둔 시점에 강제전학 처분이 내려지기도 했다. 동네 아이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이웃동네 친구들이나 형들과 어울리며 좋지 않은 소문으로 회자되기도 했다. 들려오는 여러 소식들의 진위를 확인하고자 아들에게 물어보면 아이는 최대한 무심한 척 "잘 모른다."고만했다. 친구의 흠을 들키기 싫었던게지...


고위공무원 아버지에 자상한 어머니, 살가운 누나가 셋이나 있고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집의 늦둥이 막내아들이건만 마음에 어떤 결핍이 있기에 저리 방황하는지 안타까웠다. 어려서부터 가까이서 보아온 아이라는 까닭도 있지만 세상에 나쁜 아이가 있겠냐는 생각인지라 늘 측은지심이 발동했다. 그래서 그 딱한 아이에게 우리 아이가 믿고 의지할 친구가 돼주어 둘 곳 없는 마음을 잠시 맡길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내 아이가 그 아이와 조금은 거리를 두었으면 하는 마음도 고개를 들이밀었다. 근묵자흑, 유유상종... 옛말이 신경 쓰였고, 그 아이와 우리 아이가 친하다고 하면 우리 아이도 비슷한 성향이겠거니 하는 주변의 시선도 신경이 쓰였다.


'우리 아이는 여리고 착한데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요'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 아이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같이 놀면 같은 놈이다'라는 게 평소의 내 지론이었는데 돌이켜보니 나의 오만함을 깔고 내뱉은 말이었다. 내 아이는 해당 안된다고 여기는 오만방자함. 남에게 피해를 준 적도 없고 지금까지 크게 속 썩 인적도 없다고... 학교생활도 잘하고 선생님들의 칭찬도 많이 받는다고... 그렇게 선긋기를 한다고 그 둘의 우정에 금이 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며칠 전, "OO이가 해병대 뽑혀서 한 달 후에 군대 가게 됐어. 가서 정신 차리고 온대~"라는 아이의 말에 안도감에 젖었다. 제대할 즘이면 성숙해져 있을 아이의 친구 때문인지, 당분간은 둘이 만날 일 없겠다는 마음인 것인지...


그래서 오늘의 Topic은...

<내 아이는 그 아이와 다르다.>


* 엄마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두 가지였다.

일단, 내 아이의 심지를 키우는 일. 누가 보건 안 보건 도덕적이지 못하거나 남에게 피해가 가는 행동은 하지 말라며 '신독'의 가치를 강조했다. 결국은 잔소리다.

두 번째는, 간섭은 안 하지만 알고는 있기.

자기 소신이 강하고 독립적인 아이이기도 하고 엄마의 잔소리는 독이자 이쪽 귀에서 저쪽 귀로 흘러나갈 뿐이다. 잔소리를 줄이고 은밀한 뒷조사 내지는 정보수집을 했다. 정당 한척하지만 이게 '사찰'과 뭐가 다르겠는가.

잔소리와 불법사찰을 그만둔 채 온전히 내 아이를 믿고 기다리는 일이 여전히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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