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두 번째 시시콜콜

<생활 편>

by 늘봄유정

호모 앵셔스( Homo Anxious)

호모 원더스(Homo Wanders)

아무것도 안 하면 불안, 초조해지고 무언가를 하기 위해 방랑하는 사람...

새로운 학명을 지어본다.


"사는 게 재미없다. 신나는 일이 하나도 없어."

얼마 전 지인과의 술자리에서 남편이 한 말이다. 마치, 세상 사람들은 모두 행복하고 즐겁게 살고 있는데 나만 뒤처지고 되는 일 없고 그래서 기쁠 일이 없다는 것...

"나도 그래~ 어떻게 매일매일 즐거운 일이 있겠어~ 그냥 사는 거지~ 살다 보면 즐거운 일도 생기고 그러는 거지~"라고 말해주었다. 상대는 위로라고 받아들였을지 모르겠으나 본심은 질책에 가까운 말이었다. 위의 학명은 여기서 출발했다.


정체되어있는 것, 가만히 있는 것을 참지 못하는 사람인데 특별히 바쁠 것 없이 반복되는 삶이 무료할 만도 할 것이다. 두 아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아이들을 데리고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하면 어떻겠냐는 내 제안에 남편은"왜 아무것도 안 하려는 건데?"라고 반문했다. 아무것도 안 하기 위해 제주도에 가겠다는데 왜 아무것도 안 하냐고 물으니 아무것도 안 하려는 사람이 아무것도 안 하려는 이유를 어떻게 말해야 할지 난감했었다. 그때는 그랬다.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은 본디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태생적으로, 태고적부터 가만히를 못 있는 게 인류인 것 같다. 최근 읽고 있는 <총, 균, 쇠>만 보더라도 인류는 참 번잡스럽다. 수렵채집에서 농업 식량 생산으로 넘어갔으면 그 자리에 버티고 살 것이지, 인구가 너무 과밀해서 새로운 영토가 필요하네 어쩌네 갖은 이유를 만들어가며 이웃을 침략하고 일을 벌인다. 저자는 그 모든 것이 자연, 생태 환경의 영향이라고 설명하지만 불필요한 확장과 이동에 대한 충분한 설명은 아닌 것 같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인간의 습성은 그렇게 멀리에서 찾을 것도 없다. 코로나로 집콕하면서도 우리는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마스크를 만들고 달고나 커피를 만든다. 아무노래 챌린지, 아무놀이 챌린지 등등 뭐라도 해서 영상을 찍어 올린다. 귀찮을 법 도한데, 엎어진 김에 쉬어갈 만도 한데 좀처럼 쉬지를 않는다.


물론,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은 드러나는 행동에 불과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생물학적인 본능이나 자아성취 등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욕구 등이 인간을 가만히 있지 못하게 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더 많은 식량이 확보되는 곳을 찾고 싶고, 더 안전한 곳에 살고 싶고,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고, 놀고 싶고, 지배하고 싶고, 행복하고 싶고... 다양한 욕구를 가졌기에 욕구 충족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일 테다. 유희하는 인간을 뜻하는 '호모 루덴스'나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이라는 '호모 파베르', 정치적 인간이라는 '호모 폴리티쿠스'등 다양한 학명으로 드러나는 인간의 욕구. 하지만 이 역시 결국 가만히를 못 있어서 생긴 학명들 아니겠는가... 뭘 그리 하고 싶은 게 많은지... 그냥 살다 죽는 법이 없다.


남 얘기할 것도 없다.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걸 제일 좋아한다고 말하는 나지만, 아무것도 안 하기 위해 제주도에 가고 싶다던 나지만, 집에 있으면 된장을 만들고 김치를 담그며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수업이 없으면 없어서 불안해하고 일이 없으면 일을 찾아 방랑하며 일이 많으면 일 사이사이를 또 다른 일로 메우느라 정신없다. 편히 누워 TV나 보면 될 것을 남편의 말 한마디에 생각에 꼬리를 달아 쓸데없이 학명까지 지어내고 있는 것 하며...


그래서 오늘의 Topic은...

< 인간은 가만히 있는 것을 싫어한다. >


* '태어난 김에 사는 남자'라는 별명이 붙은 기안 84라는 만화가도 가만 보면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우리는 모두 태어난 김에 아주 열심히 산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가만히 있게 되면 참지를 못하고 '인생이 재미없네, 즐거운 일이 없네' 하며 스스로를 들볶는다... 가만히 있기보다는 들볶기라도 해야 하나 보다.


매거진의 이전글마흔한 번째 시시콜콜 - 긴급재난지원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