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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Oct 07. 2019

D-100 프로젝트
< D-83 >

사람은 '언젠가' 죽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죽을 수 있다.( 키키 키린 )

100일 후에 죽는다고 생각하고 살면 하루가, 세상이 달라 보일 것이다. 


『지식인을 위한 변명』

장 폴 사르트르 지음.

책 정리를 할 때마다 버리지 못하는 책이다. 볼 때마다 부채의식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식인'의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거창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 책을 산지 23년이 되도록 제대로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학 1학년 때 같은 과 학우들과 스터디를 하자고 모여서 처음으로 선정한 도서가 이 책이었다. 만나기만 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술만 퍼먹던 시절이라 결국 이 책은 읽지도 못하고 스터디는 쫑났다. 살면서 가장 공부 안 하던 때가 대학 때가 아닐까 싶은데, 지금 생각해도 너무 마시고 놀았다. 그러면서도 책은 꾸준히 사고, 옆에 끼고 다닌 걸 보면 대학생이랍시고 현학적 허세를 부리고 싶긴 했나 보다. 


나 스스로를 '지식인'이라고 말하기엔 한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토론을 가르치며 "사회적인 이슈들에 대해 상식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의 눈을 갖도록 하자"라고 하는, 디베이트 코치라는 업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사회적 책임이라는 부분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는 시국이다. 


같은 과를 졸업한 남편과 시국에 대해 왕왕 이야기 나누는데 남편이 내게 묻는다.

"당신은 진보야, 보수야?"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기준이 뭐야?"

당황스럽다. 사실 답을 모르겠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자 경선에 나온 앤드류 양이라는 사람은 자신을 가리켜 "No Left, No Right, Forward"라고 설명했다. "좌도 우도 아닌 앞으로."

나 역시 그렇게 답하고 싶다. "진보도 보수도 아닌 상식과 개념"


'상식과 개념'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고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까지가 나의 역할이자 책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실천 방법에서 막히게 된다. 그저 학생들에게 각종 이슈들을 어떤 상식과 개념으로 혹은 어떤 객관적 자료를 근거로 판단할 것인지를 가르치는 미온적 수준에서 머물 것인가? 아니면 내가 생각하는 상식과 개념에 근거해 광화문에든 서초동에든 결정해 촛불 들고 나가야 하는가? 

생을 마감할 때, 반드시 후회할 일인 것 같다. 지금의 이 복잡한 시국에서 상식과 개념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지 않은 것. 그 고민의 결과대로 행동하지 않은 것.


23년 전, 『지식인을 위한 변명』을 읽었다면, 지금의 나는 달라졌을까? 지금이라도 읽는다면 나는 달라질까?

한번 읽어봐야 하겠다. 후회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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