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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Oct 06. 2019

D-100 프로젝트
< D- 84 >

사람은 '언젠가' 죽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죽을 수 있다.( 키키 키린 )

100일 후에 죽는다고 생각하고 살면 하루가, 세상이 달라 보일 것이다. 


생일인 친구. OO엄마김AABB

카카오톡 첫 화면에 생일 알람이 떴다. 평소엔 잊고 지내지만 늘 맘 한켠에 자리 잡고 있는 짠한 사람.

'김OO'라는 아이의 엄마이자 '김AA'이라는 이름에서 '김BB'라는 이름으로 개명한 사람이다. 기억하기 편하자고 적어놓은 나만의 연락처 저장법인데, 이 사람의 이름에는 사연이 있다.


9년 전 남편과 치킨집을 했었다. 카페형 치킨집이라 홀서빙 알바가 필요했는데 쉽게 구해지지가 않았다. 아르바이트하던 한 학생이 자기 친구를 소개해도 되겠느냐 물었고 인력난이 심했던 터라 고민할 여지가 없었다.

열심히 닭을 튀기고 있었던, 한창 바쁜 시간으로 기억한다. AA가 면접을 보러 왔고 나와 남편은 바쁨을 핑계로 아주 잠깐의 면접을 끝낸 뒤 주방 구석에 숨어버렸다. 대책 회의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얌전하고 밝은 표정에 묻는 말에도 야무지게 대답했다. 신체 건강한 20대 초반의 여학생이었고 아르바이트 경험도 많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한눈에도 알아볼 정도의 구순구개열을 갖고 있었다. 주방 직원도 아니고 홀서빙을 구하는 사장으로서 심각하게 고민이 되었고 쉽사리 판단이 서질 않았다. 그때 남편이 말했다.

"기회를 주자. 저 친구는 우리한테 오기까지 수많은 거절을 당해왔을 텐데, 기회도 줘보지 않고 외모만 갖고 거절하는 건 아닌 것 같아." 요즘 말로 존멋...

그날 이후로 그 친구는 우리가  치킨집을 그만두기까지 3년여 동안 함께 일했다. 손님에게 친절하고 맡은 바 일에도 성실했다. 믿고 맡길 수 있는 직원이었다. 최저시급이 4,500원에서 5,000원 사이였던 그 시절 8,000원까지 주면서 함께 했다. 평생 열 번 정도의 구순구개열 수술을 받았었고, 우리 가게에서 일하던 중에도 재건 수술을 또 받았다.

 대학생이었던 그 친구는 우리 가게에서 번 돈으로 학비에 생활비까지 모두 감당했다. 집안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던 그 친구 어머니의 교육철학 때문이었다. 엄한 어머니 밑에서 책임감 있고 성실하게 살던 친구였다.


그랬던 그 친구가 갑자기 아이 엄마가 되어 나타났다. 미혼모였다. 연락이 뜸해진지 반년만에 들은 소식이었다.

헤어진 남자 친구와의 재회에서 아이가 생겼으나 평소 생리가 불규칙했던 터라 임신을 의심하지 않았단다. 그저 계속 속이 안 좋아 약만 먹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날 만났던 날에도 잘 보는 내과를 물었었다. 임신 5개월이 되었을 때 임신을 확인하고 남자 친구에게 이야기했으나 출산도, 결혼도 거부하였단다. 함께 수술을 하려고 했으나 병원을 찾는 게 쉽지 않았고 결국 부모님들까지 알게 되었다. 대책을 논의하던 중, 임신 6개월 만에 조산을 하였다. 760g의 작디작은 아이. 태어나자마자 폐와 심장에 문제가 있어 수술을 했다. 입양을 보내려 했으나 수술한 아기라 입양마저 거부당했다.


결국, 그 친구의 어머니는 어린 딸, 미혼모가 된 딸의 인생을 위해 중대 결심을 하신다. 초등학교 교사를 퇴직하고 딸과 함께 고향인 춘천으로 내려가셨다. 딸의 이름을 AA에서 BB로 개명했다. 손녀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 당신이 살림을 책임지시겠다 하시며 구내매점을 인수, 운영하셨다. 덕분에 작고 약하게 태어났던 아기는 다른 아이들보다는 여전히 작지만 밝고 예쁘게 자랐다.


딸아이가 6살이나 된, 미혼모인 그 친구는 마카롱 집을 열었고, 춘천에서 꽤 유명한 집이 되었다. 육아도, 일도 열심히 하며 삶을 잘 꾸려가고 있다.


생일을 맞은 AA에게, 아니 BB에게 카톡 선물을 보냈다. 바로 답장이 왔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내내 궁금하던 걸 물었다.

"BB야~ 살면서 많은 편견, 선입견의 눈으로 널 바라보고 대하는 사람들, 분위기가 있었을 때, 넌 어떻게 극복했었니? 어떤 마음이라든지, 구체적인 방법이라든지..."


한참 뒤에 답이 왔다.

"음... 다른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받으면 그 상처를 보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힘들어할 것을 생각하니까 그게 더 힘들더라고요. 그리고 그렇게 상처 받은 마음으로 제 딸을 보면 딸에게도 좋은 영향을 못줄 거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행동하다 보니까 제가 먼저 숨기지 않고 당당해져야 다른 사람들도 이상하게 보지 않더라고요.

상처는 숨길수록 곪는다고 마음의 상처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얘기하고 아무렇지 않아져야 극복해지는 것 같아요."

그 친구다운 답변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많은 가르침과 깨달음을 주는 사람이다. 한없이 고맙고 행운을 빌게 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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