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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Jul 26. 2020

제 마음 날씨는, 몬스테라입니다.

"하늘 좀 보세요~"

요 며칠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세찬 비가 내린 후라 유난히 맑았던 하늘, 먹색 구름 사이 코딱지만큼 쨍하게 빛나던 하늘, 용암같이 검붉은 노을이 찢어놓았던 하늘. 직접 찍은 사진을 보내주며 지인들이 남긴 말도 하나같았다. "사진으로는 모두 담아낼 수 없어요~" 그때마다 나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가만히 보면 올해만큼 하늘을 많이 보았던 때가 있나 싶다. 집에 있는 날이 많아지고 여행도 힘들어지니 하늘이라도 한번 살펴보았던 것이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얼마 전 몸담고 있는 단체의 화상회의가 있었는데, 진행자가 참가자들에게 던진 질문 하나.

"당신의 현재 마음 날씨는?"

'내 맘을 내가 모르는 것'이 기상청도 못 맞추는 변화무쌍한 날씨와 닮았으니 신박한 질문이다 싶었다. 참신함과는 별개로, 추상적인 '마음'을 '날씨'로 구체화시키는 작업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너무 어렵다는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내 성실한 답변들이 돌아왔다.

"먹구름이 땅바닥까지 내려앉았어요."

"요즘 날씨 같아요. 맑았다가 갑자기 천둥 번개 치면서 소나기가 내리기도 하고. "

"안개가 자욱하게 꼈어요."

햇빛 쨍한 마음 날씨는 없었다. 같은 질문을 지인들과의 단체방에도 남겼지만 답의 결은 같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 "어딘가 해는 있는 것 같지만 밝지는 않고, 덥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것도 아니고... 뭘 하고 싶지도 않은 날씨네요."


모두가 힘들구나. 나만 답답하고 힘든 건 아니었구나. 그래서 그렇게 하늘을 많이도 올려다보았나 보구나...

이미연 주연의 1990년 영화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가 생각났다. 입시 지옥에서 타인도 자신도 돌보지 못하던 주인공이 주변인의 사고를 계기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게 된다는 전형적인 성장 스토리이다. 새벽별 보고 등교해서 새벽별 보고 집에 들어와야 대학 간다던 시절, 4시간 자면 떨어지고 3시간 자면 붙는다던 시절에 잠시 멈춰 서서 하늘 좀 보며 살자고 외치던 영화다. 지금이라고 다를 바 없지만 말이다.


가시적인 성과와 성공을 위해 정신없이 달리느라 주변을 살피지도 않던 인간은 어느 순간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 열광하기 시작한다. 무심코 지나치던 화단의 이름 모를 꽃 이름을 궁금해하고 앱을 이용해 기어코 이름을 알아낸다. 급기야 사진을 찍어 SNS 프로필 사진으로 올려놓기도 한다. 늘 그 자리에 서있던 나무 옆에 서서 빨갛게 변해가는 나뭇잎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그 사이로 드러난 맑은 하늘도 올려다본다. 집 근처 흐르는 개천에 줄지어 지나가는 오리 식구들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따라가고 동영상을 찍어 지인들과 나눈다. 말없이 우리를 보듬고 있던 자연에 감사하게 되고 겸허해진다. 어렸을 때 세뇌교육을 받은 것도 아닌데, 모두 그런 수순을 밟는 것 보면 신기하다. 이제는 주변을 둘러볼 마음의 여유, 경제적 여유가 생겨서일까? 아니면 그렇게 자연의 힘을 잠시 빌려서라도 버티고 싶은 걸까?


남들 다하는 거라면 나도 해보자 싶었다. 자연의 힘을 빌려 정신을 차려보자!

마침, 집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화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몬스테라'

1년 전 아파트 장에서 3만 원에 데려온 녀석이다. 이름처럼 무서운 속도로 자라고 번식해 5명에게 물꽂이 분양을 해주었고 우리 집 화병에도 새끼를 쳤다. 어쩌면 내게 식물 키우는 재미를 안겨준 녀석이기도 하건만 너무 무관심했다. 내친김에 폭풍 검색을 해봤다.


몬스테라                    
외떡잎식물 천남성목 천남성과의 상록 덩굴식물.                                                  
학명   Monstera deliciosa                                 
봉래초(蓬萊蕉)라고도 한다.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잘 자란다. 멕시코산이며 온실에서 재배한다. 몬스테라속(屬)에는 30종 내외가 있으나 이 종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잎은 어긋나고 성숙한 것은 둥글며 지름 1m 정도이다. 잎의 모양은 다소 깃처럼 갈라지고, 군데군데 구멍이 파여 있어 폭우와 강한 바람에 견딜 수 있는 구조로 발달하였으며, 밑에 달린 잎에 광선이 통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원줄기는 굵고 초록색이며 마디에서 기근(氣根)이 내리고 다른 물체에 붙어 올라간다.                                                               <출처 : 두산백과>


자라면서 잎에 구멍이 나고 찢어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강한 비바람에도 끄떡없이 살아가고 소량의 빛을 아래 잎에도 골고루 나누어 함께 잘살기 위함 있었던 것. 습한 정글에서 심호흡하던 버릇이 있어 유독가스를 빠르게 정화해주는 공기정화식물이기도 하다. 물을 많이 주면 스스로 잎에 물을 맺히게 해 토해내기도 하는 기특한 녀석이다. 조금은 건조해도, 조금은 습해도 그런대로 스스로 조절해가며 살아가고 주변도 두루두루 살피는 아이. 똥 손인 주인을 만나도 죄책감 드는일 없게 하는 '사랑과 배려의 식물'

그렇게 사랑과 배려만 실천하면 본인은 힘들 만도 할 텐데 힘들면 공중에 뿌리내려 영양분을 흡수하고 주변에 기대가며 계속 살아간다. 자기도 챙기고 남도 챙기며 씩씩하게 열심히 살아간다.


우리는, 힘들 땐 어떻게든 살아가는 자연을 보면서 배우고 버티라고 세뇌교육을 받은 게 아니었다.

태어날 때부터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우리 역시 이름 모를 꽃, 묵묵히 서있던 나무, 변화무쌍하던 하늘과 더불어 오늘을 살아가는 자연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난 척, 다른 척해봤자 그들 없이는 살지도 못하는 나약한 존재임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이다.


몬스테라처럼 살아야겠다.

비 오면 맞고 바람 불면 흔들리며.

힘들면 구멍 만들어 버텨가며.

그 구멍으로 다른 친구들과 해를 나누어 가며.

너무 지치면 뿌리 하나 만들어 지팡이처럼 집고 옆에 있는 무엇에든 기대가며.


내 마음 날씨는 몬스테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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